나는솔로·마라탕후루·쇼츠…세상 모든 자극을 ‘도파민’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와 고자극… 이번 회차는 도파민 파티다!”
<나는 솔로> ‘돌싱’ 특집에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대중은 ‘도파민’을 들먹였다. 사회면을 장식하는 사건에도 개인적인 이야기가 섞여 소비되며 “도파민 3종 세트” “도파민 터진다”라고 표현했다. 다디단 탕후루도 맵디매운 마라탕의 자극적인 ‘도파민 맛’도 인기다. 세상의 모든 자극과 흥미를 ‘도파민’으로 통칭하는 언어적 유행이 돌고 있다. 도파민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즐겁고 또 두렵기도 한 도파민
‘도파민’이란 단어를 우리는 언제부터 익숙하게 썼을까? 빅데이터 전문기업 썸트렌드(Sometrend)는 소셜데이터를 통한 키워드 언급량을 기준으로 올해의 트렌드 키워드를 선정했다. 그중 하나가 ‘도파민의 양극화’다. 대중들은 끊임없이 도파민이 터지는 콘텐츠를 찾고 있으나 이를 경계한 ‘도파민 디톡스’도 추구하는 양면적인 흐름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도파민이란 단어의 언급량은 2022년 초보다 현재(2023년 말) 약 15배 증가했다. 올해 가장 ‘핫한’ 간식으로 떠오른 탕후루의 언급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연관어를 바탕으로 살펴보면 도파민은 과거 운동과 음식 등 주로 라이프 관련 용어에 쓰였으나 현재는 유튜브, SNS, 짧은 영상(쇼츠), 소설, 영화, 음악, 연애, 드라마,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대중은 도파민을 찾으면서도 함께 ‘중독’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NHN DATA는 스마트폰 사용 제한을 위한 ‘디지털 디톡스 앱’의 설치 횟수가 올해 1분기 대비 4분기에 64% 상승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는 2023년 올해의 책으로 <도둑맞은 집중력>을 선정했으며, 교보문고 2023년 연간 베스트셀러 2위에는 <원씽>이 올랐다. 두 권 모두 말초 자극이 아닌 본질적인 것에 깊게 집중하는 연습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다.
NHN DATA 측은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을 돕는 상품의 인기가 갈수록 높게 나타나고 있다”며 “2024년에는 도파민 디톡스 관련 상품 및 서비스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우리를 즐겁게도, 또 두렵게도 한 도파민은 무엇인가. 도파민은 ‘기쁨의 화학물질’이다. 우리의 감각과 감정을 지배하는 대표적 호르몬으로 쇼핑을 하거나 단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보상기능을 하는 도파민의 분비로 찾아온다. 단 이후 같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더 큰 자극이 필요하다. 그래서 도파민을 자극 혹은 중독과 연결되는 호르몬이라고 불린다.
<뭉크씨, 도파민 과잉입니다>의 저자 안철우 교수(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는 도파민에 대해 “어떤 사람이나 사물 혹은 상황을 접한 뒤 4분 안에 도파민이 나오지 않는다면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뀐다”며 “호감이 지나치면 무언가를 충동적으로 격발시키기도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홈쇼핑 방송을 보다가 상품을 충동적으로 구매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도파민의 지배를 받은 것이다.
우리가 손에 쥐고 생활하는 스마트폰은 대표적인 도파민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각종 이벤트, 할인행사, 광고 알림은 온종일 울려 당장 사지 않으면 평생 구하지 못할 것처럼 쇼핑 충동을 일으킨다. 스마트폰으로 보는 소셜미디어 속 콘텐츠는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도무지 눈을 떼지 못하도록 알고리즘을 적용해놓았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도파민
최근 모 대학 교수와 학생 간 부도덕한 메신저 대화가 공개되면서 사회적 파문이 일었다. 다수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XX대 근황’ ‘XX대 불륜녀’라는 제목으로 글이 퍼지기 시작하고 당사자 ‘신상털기’가 도를 넘자, 해당 내용을 공개한 교수의 아내가 “더 이상 불륜사건 내용을 유포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나섰다.
해당 사건의 같은 대학 모 교수는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두고 “정의감 아닌 도파민 중독에 가까운 행동”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남의 사생활마저 뉴스로 공론화되는 시대다.
회사원이자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 김다연씨는 새벽배송 마니아다. 요즘에는 직접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어 요리를 만드는 것보다 반조리 식품이나 밀키트를 구입해 먹는 것이 공력은 물론 비용면으로도 유리하다. 게다가 아이가 ‘연어장’을 먹고 싶다고 하면 한밤에 시켜도 새벽에 도착해 아침상에 내놓을 수 있다. 얼마나 신통한 세상인가. 새벽배송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나 싶다. 이렇다 보니 이틀 정도 소요되는 택배조차도 체감상 너무 느리다고 느껴진다. 과일이나 채소는 농장 직거래 택배가 훨씬 값이 싸고 신선하지만 그 ‘이틀’을 기다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유기농 먹여 키웠는데 이제는 마라탕·탕후루만 코스로 먹어요. 속이 터져요. 속이….”
배우 이영애가 한 유튜브 프로그램에 출연해 ‘마라탕후루’만 찾는 아이 간식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2023년을 지배한 간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탕후루의 열풍도 도파민과 관련이 깊다. 강한 단맛을 경험하면 뇌의 쾌락 중추에서 도파민 분비가 활발해져 행복과 쾌감을 선사한다. 이런 쾌감은 반복될수록 도파민을 받아들이는 수용체의 기능은 점점 떨어지게 되니 더 강한 맛을 원하게 된다.
“<나는 솔로> 영숙이 상철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도파민 터져!”
TV 속 연애 예능프로그램의 출연자는 선남선녀부터 돌싱, 헤어진 전 연인, 동창 그리고 남남커플까지 그 형태도 다양하다. 한국의 조혼인율(혼인 건수)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 중이지만, 미디어만 보면 끊임없이 ‘남의 연애’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모순이 펼쳐진다. 시청자들은 이런 연애 리얼리티 예능을 두고 “도파민 파티”라고 부른다.
최명기 연구소장(청담하버드심리센터)은 “자극 추구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충동 조절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 관계를 발전시키고 지속하는 것이 지겨워진 것이다. 연애 예능으로 연애 감정을 충족시키고 빠르게 만족시키는 새벽배송과 탕후루를 끊을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시대를 반영하는 ‘유행’ 호르몬
과거를 돌아보면 시대에 따라 유행어처럼 언급되는 호르몬이 있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상구 박사가 웃으면 나오는 호르몬 ‘엔도르핀’이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유행이었다. 이 주제로 ‘웃음 체조’ 같은 것도 나왔다. 사실 엔도르핀은 웃는다고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체가 통증이나 충격적인 위협 앞에서 생존을 위해 분비되어 진통 효과를 주는 호르몬이다. 외환위기 사태가 발발하자 “억지로라도 웃자”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엔도르핀 유행어를 이끈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2010년이 되면서 정신의학계 권위자 이시형 박사가 강조한 ‘세로토닌’이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당시 한국이 ‘자살률 1위 국가’라는 화두가 있었다. 우리는 우울증도 심하고 또 급하고 격정적이었다.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르몬이 세로토닌이기에 이를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그는 세로토닌연구원을 운영하며 세로토닌 결핍 증후군에 대한 다양한 해법을 전파하고 있다.
그럼 지금 도파민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얼까? 최명기 소장은 ‘성인 ADHD’에 주목했다. 과거 성인 ADHD는 병의 범주가 아니었다. 그저 주의력이 조금 부족하고 충동성이 강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최 소장은 “전두엽에 일정한 수준의 도파민 레벨이 유지되어야 주의 집중력이 생기는데 도파민 시스템이 잘못되어 신경 전달 물질이 부족해지면 ADHD 증상이 나타난다. 성인 ADHD가 사회적으로 화두가 되고 그 원인인 도파민이란 호르몬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 소장은 도파민은 자극과 쾌락의 호르몬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야 자기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도파민 디톡스(도파민 단식)’의 유행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이다. 도파민은 인간의 목표 의식을 고취하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호르몬으로 중요한 것은 ‘균형’이라는 것.
SNS에 몰입되어 있다면 정해진 시간에만 하도록 일상의 작은 실천으로 도파민을 관리하며 자기 통제감을 키워나가는 것을 권한다. 자극적인 행위 대신 자연스럽게 적당한 도파민 수치를 높이는 건강한 관리법이 우선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안철우 교수의 도파민 관리에 좋은 5가지 생활 습관
① 중력에 반하는 운동
축 처진 어깨, 굽은 허리 등 위축된 자세로 생활하는 것은 도파민 분비에 악영향을 미친다. 도파민 문제를 겪는 파킨슨병 환자들은 대부분 중력에 억눌려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등산, 계단 오르내리기처럼 중력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면 도파민 분비가 촉진된다. 앉았다 일어나기, 여러 스트레칭 동작도 도움이 된다.
② 충분한 수면
수면 부족은 뇌의 도파민 감수성을 줄여서 과도한 졸음을 초래할 수 있다. 자연적인 도파민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밤에 취하는 숙면이 최고.
③ 음악 듣기
재밌게도 음악을 들으면 도파민 수용체가 풍부한 뇌의 영역에서 그 활동이 증가한다. 특히 전율을 느끼게 하는 음악을 들으면 도파민 수치가 9%가량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보자.
④ 명상하기
숙련된 명상 지도사를 대상으로 연구한 실험에서, 한 시간 동안 명상을 하고 나니 도파민 분비량이 6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⑤ 햇볕 쬐기
햇볕을 쬐면 기분이 좋아진다. 햇볕이 충분하지 않은 겨울철에 계절성 정서 장애(SAD)를 겪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햇볕은 도파민 분비에도 영향을 미치니 충분히 쬐어주는 게 좋다. 다만 피부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선블록을 바르고 자외선이 강한 시간대는 피할 것.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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