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앓이’ 중이라면 주목···‘프로 삼류’들의 이야기 ‘콰르텟’[오마주]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이제 며칠 뒤면 2023년도 끝이 납니다. 매년 이맘 때면 괜히 심란해집니다. ‘올 한 해 잘 살았나’ ‘목표하는 바는 다 이루었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거든요. 합리화가 특기인 저는 어떻게든 좋은 점수를 주고 넘깁니다. 그래도 연초 적어둔 체크리스트에 가위표를 치는 건 역시 속상한 일입니다.
일본 드라마 <콰르텟>의 주인공 4명이 처음 만났을 때 아마 비슷한 심정이지 않았을까요. 바이올린 연주자 마키(마츠 다카코)와 벳푸(마츠다 류헤이), 첼리스트 스즈메(미츠시마 히카리), 비올리스트 이에모리(다카하시 잇세이)는 어느 날 노래방에서 우연히 만납니다. 저마다 어깨에 악기를 멘 현악기 연주자 4명이 한날한시 같은 노래방을 찾다니, 대단한 우연이죠. 네 사람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들은 현악 4중주단 ‘콰르텟 도넛홀’을 결성하고 겨우내 가루이자와의 별장에 머물며 연주 연습을 하기로 합니다.
사실 네 사람의 실력은 모두 애매합니다. 프로 경험이 있는 것은 마키 뿐. 그나마도 3년 전 결혼하며 음악을 접었습니다. 벳푸는 도넛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온 가족이 유명 음악가인 집안에서 돌연변이 취급을 받습니다. 이에모리는 미용실 보조로, 스즈메는 길거리 연주자로 살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습니다.
그래도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콰르텟 도넛홀의 가슴에는 언젠가 음악 만으로 먹고 살겠다는 꿈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 눈에 이들은 ‘3류 연주자’입니다. 대책 없이 꿈만 좇는 베짱이, 의자뺏기 게임에서 탈락한 패배자 같은 존재죠. 이들의 연주를 본 누군가는 혹평의 편지를 보냅니다.
“여러분은 연주자로서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 훌륭한 음악이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에서 생긴 쓸모없는 것. 여러분의 음악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같은 거예요. 그런데 왜 그만두지 않으세요? 왜죠?”
보통의 드라마라면 주인공들이 노력을 거듭해 1류로 우뚝 서는 모습을 그릴 것입니다. 하지만 <콰르텟>은 이런 기대를 배반합니다. 구멍이 있어야 비로소 도넛이 될 수 있으니까요. 콰르텟 도넛홀은 기꺼이 3류가 되어줍니다. 마키는 무대에서 연주하는 척 해달라는 섭외자 요구에 단원들이 의기소침해지자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우리 실력이에요. 현실이죠. 그럼 해보자고요. 3류라는 자각을 갖고서, 사회의 낙오자라는 자각을 갖고서 온 힘껏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시늉을 하자고요. 프로로서 일하는 모습을, 콰르텟 도넛홀의 꿈을 똑똑히 보여주자고요.”
음악가로서의 성장이 핵심인 이야기지만 로맨스,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돼 있습니다. 한 데 모인 네 사람은 남에게 밝힐 수 없는 비밀을 하나씩 가지고 있거든요. 각 인물이 지닌 미스터리는 드라마 안에 따뜻함과 서스펜스가 공존하도록 만듭니다.
배우들의 호연, 가루이자와의 겨울 풍경 모두 매력적이지만 가장 큰 공은 각본가인 사카모토 유지에게 돌리고 싶습니다. 사카모토는 인기 드라마 <마더> <최고의 이혼>,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쓴 유명 각본가입니다. 현재 인기리에 상영 중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의 각본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사카모토는 이 영화로 지난 5월 열린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실은 이번주 오마주로 <콰르텟>을 선택한 것도 <괴물> 때문입니다. 올 들어 본 영화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저처럼 ‘괴물앓이’ 중인 분이라면 연휴 동안 사카모토의 필모그래피 ‘도장깨기’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총 10부작으로 한 편당 길이는 평균 45분입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와 왓챠,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3류도 괜찮아’ 지수 ★★★★★ 구멍이 없으면 도넛이 아니야!
‘대사 맛집’ 지수 ★★★★ 사카모토 유지가, 사카모토 유지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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