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감독 "'노량', 할리우드서도 없던 굉장한 시도" [인터뷰]
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김한민 감독이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로 이순신 3부작에 화룡점정을 찍으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김한민 감독은 장장 10년에 걸쳐 이순신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그 첫 시작인 2014년 '명량'으로 1,761만 명이라는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작년 '한산: 용의 출현'으론 코로나19 팬데믹 시국임에도 726만 명의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성웅 이순신을 진정성 있게 담아내고 웅장한 스케일로 진일보한 K-블록버스터를 선사, 대한민국 영화 역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김한민 감독이다.
20일 개봉한 '노량: 죽음의 바다'는 김한민 감독의 집약된 노하우와 명품 배우 김윤석과의 시너지 효과가 터지며 절정에 이른 볼거리를 자랑했다.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를 그려 3부작 대장정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에 '노량: 죽음의 바다'는 개봉 단 3일 만에 누적 관객 수 62만 명을 돌파,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한 번 극장가에 이순신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김한민 감독을 만나 작품과 관련 뒷이야기부터 3부작의 여정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 감독은 최근 진행된 아이즈(IZE)와의 인터뷰에서 "'노량: 죽음의 바다'는 '이순신 정신의 리마인드'(remind)"라고 강조하며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졌다.
다음은 김한민 감독과 일문일답.
Q. '노량: 죽음의 바다'로 마침내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를 매듭지었다. 강산이 변할 시간 동안이나 오롯이 전념하였는데 소회가 어떠한가.
일단 10년이 벌써 이렇게 지나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님의 말을 빌리자면 '천행'이었다. '명량' 개봉 때는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고, '한산: 용의 출현'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국을 거쳤다. '한산: 용의 출현'은 촬영도 그렇고, 개봉을 못할 뻔했다. '노량: 죽음의 바다' 또한 그 시기라 마찬가지로 촬영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게 실로 천행이었다는 마음이다. 어찌 됐든 3부작을 마무리 지어 다행스럽다. 이번 무대인사 때 관객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다. 이순신 3부작은 만들어야 할 작품이었는데 운 좋게 제가 만들게 되었다고. 보여드려야 할 작품을 제가 보여드려서 감격스럽고 뿌듯하기도 하다.
Q. 거슬러 올라가 왜 3부작으로 고집했던 건지 궁금하다.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는 단지 '명량'의 흥행에 힘입어 속편을 만든 개념이 아니다. 3부작 하나하나 다 왜 존재하고, 왜 만들어져야 했는지 뚜렷한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다행스럽고 그런 지점에서 '노량: 죽음의 바다'가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극 말미 장군님의 '싸움이 급하다. 그러니 결코 이 전쟁을 이렇게 끝내선 안 된다'라는 마지막 대사는 온전히 기록에서 추출한 게 아니라 장군님의 전체적인 언행 속에서 제가 창조해낸 부분도 있다. '장군님의 전체를 요약했다' 이런 표현이 어울릴 거 같다. 3부작을 끝마치면서 제가 감히 그렇게 해도 장군님이 왠지 저를 나무랄 거 같지 않았다. 그만큼 확신을 갖고 만든 3부작이다. 그렇기에 '노량: 죽음의 바다' 속 100여 분의 해전도 다 설계가 되어 있었고 난관들을 잘 극복하며 만들 수 있었다.
Q.'노량: 죽음의 바다'에 녹여낸 그 '뚜렷한 의식'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다.
'노량: 죽음의 바다'가 왜 필요했는지 따지자면 그전에 이순신 장군님이 왜 적들이 다 돌아가고 전쟁이 끝나는 상황에서도 그렇게까지 고독하고 집요하게 이 전쟁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려 하셨는지가 매우 중요한 화두였다. 감독으로서 그것에 대한 답은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고, 전쟁의 완전한 종결이었다. 장군님의 그러한 뜻에 이르렀을 때 굉장한 전율을 느꼈고, 이를 전하기 위해서 '노량: 죽음의 바다'가 나온 거라 아주 큰 의미가 있다는 거다.
Q. 그렇다면 '명량', '한산: 용의 대첩'과는 또 어떻게 다른 관람 포인트가 있을까. 이순신 장군을 각기 다르게 표현함으로써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짚어준다면.
정리하자면 '노량: 죽음의 바다'는 '이순신 정신의 리마인드'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명량'의 경우는 장군님이 모두가 두려움에 빠졌을 때 용기를 전했다. 집단이 두려움을 겪는 상태는 (리더로서)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인데 그럼에도 용기를 발휘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필요한 정신이라고 본다. '한산: 용의 대첩'은 수세를 뒤집어 공세로 바꾼 지점을 조명했다. 이게 참 쉽지 않은 거다. 결정적인 전투를 수행하는 장군님의 모습을 담았다. 평소에 준비되지 않았다면 도저히 승세를 잡아낼 수 없었을 텐데 그런 정신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다.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부분이었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이 부당한 침략에서 '올바른 종결은 무엇인가'를 중요하게 보고 리마인드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제대로 종결이 안 되어 지속적으로 불행한 결과를 낳는 사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순신 정신, 대의는 특별하게 리마인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Q. 그 연출 의도는 충무로 대표 배우 김윤석의 어마무시한 존재감이 더해져 더욱 와닿았다. 가히 3부작의 피날레에 걸맞은 캐스팅이었는데. 특히 어떤 면에서 김윤석이어야 했던 건가.
'명량'에선 용장(勇將), '한산: 용의 출현'에선 지장(智將), '노량: 죽음의 바다'에선 현장(賢將)을 보여드리려 했다. 굉장히 지혜롭고 후대를 생각하는 혜안까지 가진 그런한 인물을 표현하는 데는 김윤석이 제일 적합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가장 치열한 전투, 장군님의 최후를 다루지만 눈물을 경계해야 했는데 그런 부분마저 납득이 되도록 완급 조절을 하기에 김윤석이라는 배우는 희귀한 존재였다.
Q. '명량' 최민식, '한산: 용의 출현' 박해일, 김윤석 모두 결과적으로 싱크로율 100%의 섭외였지만 이순신 장군을 찾기까지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거 같다.
사실 '명량'이 나올 당시엔 최민식이 이순신 장군님을 연기했으니까, 계속 (캐스팅을) 그렇게 가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니면 배우를 바꿔야 할까, 이 두 가지 생각이 공존했다. 근데 그때 최민식이 '한 편이면 됐지,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때부터 온전히 다른 이순신, 각 해전의 특징에 맞는 배우와 함께하면 좋겠다는 판단이 내려진 거다.
Q. 뿐만 아니라 '노량: 죽음의 바다'는 대망의 이순신 장군 최후의 전투를 다루기에 고민이 보다 깊었겠다.
모두가 아는 역사, 모두가 아는 결말의 느낌이 있지 않나. 그래서 오죽하면 장군님의 그 유언을 안 찍을까도 고민했다. 잘 연출해도 밑진다는 생각이 있어서. 근데 그걸 피해 갈 수는 없는 거 같더라. 장군님의 정신이 들어있는 대목이기에 안 찍어버린다 하면, 아무리 100여 분의 치열한 해전을 보여준다 한들 올바른 결론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그만큼 이순신 장군님의 진정성, 어떤 톤 앤 매너를 가져가야 진정성이 보일지 이 고민이 가장 컸다. 담백하게 나왔다고 하시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의도한 게 아니라 진정성 있게 표현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연기한 김윤석도 격한 공감을 하셨다.
Q. 또한 약 100분간 내리 휘몰아친 해전 장면들이 정말 압권이었다. 숨이 멎을 정도의 긴장감을 끌고 가기 위해 연출에 신경 쓴 부분도 들려달라.
노량해전은 역사적으로도 가장 치열하고,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가장 많은 배가 부서진 전투였다. 밤에서 이튿날 아침까지 이어진 전투로 이순신 장군님을 포함하여 가장 많은 지휘관급이 죽었다. 그래서 러닝타임 중 그만큼 길게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다. 전투를 따라가는 이해도, 명징성이 뚜렷해야 한다고 봤고. 전장의 한 중심에 이순신 장군님이 굉장히 고독하게 우뚝 서 있지 않나. 그걸 어떻게 표현하냐 했을 때, 롱테이크로 인물들을 따라가고 그 끝엔 이순신 장군님이 있게 하자 설계를 잡아나갔다. 어떤 분들은 해전신이 할리우드 영화 같다고 하시는데, 할리우드에서 이렇게 찍은 영화가 있었냐 제가 반문하기도 했다. '노량: 죽음의 바다'가 굉장한 시도였던 건 사실이니까.
Q. 아주 짧은 분량이었지만 '국민 배우' 안성기가 전편에 이어 어영담으로 등장, 해전신의 여운을 한층 짙게 했다. 혈액암 투병 중에도 '한산: 용의 출현' 촬영을 불사해 화제를 모았는데. 이번 '노량: 죽음의 바다' 작업은 어땠나.
안성기 선배님이 '한산: 용의 출현'과 '노량: 죽음의 바다'를 연달아 찍으셨다. '한산: 용의 출현' 촬영이 끝날 때쯤 선배님의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 걱정이다 했는데 선배님께서 워낙 건강한 체질이시라, '노량: 죽음의 바다'가 끝날 타이밍에 극복해 내셨다. 건강 때문에 촬영에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회복하셔서 소화해 주셨다.
Q. 요즘도 '난중일기'를 읽고 있나. 총 몇 번이나 정독했을까.
저한테 몇 번 읽었냐는 말은 전혀 의미가 없다. 지금도 수시로 '난중일기'를 보고 있으니까. 마음이 우울해지거나 할 때 '난중일기'를 뒤적거리면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된다. 심적으로 편안해지면서 잠도 잘 온다. 저는 장군님의 인간적인 모습이 제일 좋은데 외모적으로도 좋더라. 하하. 저는 장군님을 보낼 생각이 없다. 여력이 된다면 이순신 장군님이 나오지 않는 이순신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
Q. 이순신 3부작, 그중에서도 '명량'을 통해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기념비적인 성과를 냈다. 부동의 흥행 1위 감독인데 개인적인 성취감은 그것만이 다가 아닐 거 같다. 가장 크게 느끼는 얻은 점은 무엇인가.
영화 하나는 진실되게 만든다는 것. 무엇보다 이게 통했다는 점에서 오는 보람이 크다. 뿌듯함 이런 게 분명히 있다.
Q. 네티즌들 사이 '전생에 이순신이었던 거 아니냐'라는 의혹(?)이 나돌 정도로 이순신 3부작에 연출자로서도 인간 김한민으로서도 혼을 불태웠다. 마지막으로 푹 빠져 살았던 지난 10년을 돌아본다면.
정말 편집할 때마다 울었다. 팔불출도 아니고(웃음). '한산: 용의 출현' 때는 현장에서 눈물이 나더니, 편집본을 볼 때도 매번 눈물이 나서 혼났다. 그래서 제가 화장실에 가려 하면 스태프들이 감독님 휴지 챙기셨냐 하며 놀리기도 했다. 울음이 터지는 그 포인트도 매번 달라진다. 이번 '노량: 죽음의 바다'는 '아직도 모르겠느냐. 끝까지 일어나 기어이 항복을 받아야 한다'라는 대사에서, 또 어떨 때는 장군님의 장례식 장면에서 함께 울었다. 포인트들이 묘하게 그때그때 달랐다. 최후적으로 미싱을 하고 나니까 또다시 눈물이 나는 거다. 정말 팔불출 같은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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