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 아직 ML서 보여준 것도 없는데...' 왜 김하성 키운 SF 명장은 이미 주전을 보장했나

김우종 기자 2023. 12. 23.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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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 김우종 기자]
이정후. /사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 공식 SNS
밥 멜빈 감독의 샌디에이고 시절 모습. /AFPBBNews=뉴스1
메이저리그에서 데뷔 경기조차 치르지도 않았는데, 소속팀 사령탑인 밥 멜빈(62)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감독은 이미 이정후(25)를 주전으로 점찍었다. 김하성(28)과 지난 시즌까지 함께했던 밥 멜빈 감독은 세 차례(2007, 2012, 2018)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메이저리그 통산 1517승(1425패)을 거둔 명장이다. 그가 이제는 이정후를 어떻게 지도할지 관심이 쏠린다.

미국 매체 NBC 스포츠 베이에어리어는 22일(한국시간) "이정후가 내년 시즌 샌프란시스코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It's becoming clear what role Jung Hoo Lee will have on the Giants for the 2024 MLB season and beyond)"는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정후는 내년 시즌 샌프란시스코의 리드오프 겸 중견수라는 중책을 맡을 전망이다. 멜빈 감독은 최근 팟캐스트 '더 TK쇼'에 출연, "이정후가 팀의 리드오프로 나서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고 직접 말했다.

일반적으로 팀에서 가장 출루율이 높고, 빠른 타자가 1번 타자로 배치된다. 이정후는 이미 KBO 리그에서 이런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이정후에게 이미 1번 타자는 낯선 자리가 아니다. 이정후는 KBO 리그에서 활약한 7시즌 동안 1번 타순에서 총 1468타석을 소화했는데, 이는 3번 타순으로 뛰었던 2017타석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이정후는 1번 타순에서 통산 타율 0.328, 11홈런, 139타점, OPS 0.832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2023시즌에는 1번 타순에서 95타석을 소화하며 타율 0.286, 8타점, OPS 0.740을 마크했다. 2017시즌부터 3시즌 동안 리드오프로 출격한 뒤 2020시즌부터는 주로 3번 타자로 클린업 트리오에 배치돼 활약했다. 이정후는 아직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보여준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빈 감독은 KBO 리그에서 이미 보여준 이정후의 능력을 신뢰한 것이다.

멜빈 감독은 이정후의 리드오프 배치에 관해 "지금으로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As of right now, I don't see why not)"고 잘라 말한 뒤 "우리가 이정후를 영입한 뒤 몇 가지 라인업을 적어뒀다. 모두 이정후가 1번 타자로 출전하는 라인업이었다. 그것이 이정후를 편안하게 하는 방향이다. 또 그전에도 이정후는 그런 역할을 해냈다. 현재 나는 확실하게 그렇게 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2023시즌 샌프란시스코는 162경기 중 97경기에서 라몬테 웨이드 주니어(29)가 1번 타자 역할을 맡았다. 웨이드는 올해 135경기에서 타율 0.256, 17홈런 45타점 2도루 출루율 0.373 OPS 0.790의 성적을 올렸다. 그리고 2024시즌에는 이정후가 웨이드의 리드오프 명함을 가져올 예정이다.

이정후(왼쪽)가 MLB.com 공식 SNS에서 메이저리그의 개막을 100일 앞둔 사실을 알리는 게시물에 등장했다. /사진=MLB.com 공식 SNS
샌프란시스코의 이정후가 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후. /사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 공식 SNS
앞서 MLB.com은 이정후에 관해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설정하면서 때려낼 수 없는 공까지 칠 수 있는 콘택트 능력을 갖췄다. 타석에서는 약점이 많지 않은 편이다. '배드볼 히터(bad ball hitter)'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이는 이정후의 아버지이자 한국의 전설적인 유격수인 이종범으로부터 물려받은 능력"이라며 칭찬했다.

멜빈 감독은 이정후와 마찬가지로 내년 샌프란스시코 자이언츠에서 감독으로 첫 시즌을 맞이한다. 멜빈 감독은 1985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 입단한 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이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캔자스시티 로얄즈,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양키스를 거쳐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끝으로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이어 2002년 11월 시애틀 매리너스 감독으로 부임한 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감독, 뉴욕 메츠 구단 스카우트 감독,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감독대행 및 감독을 거쳐 2022시즌부터 2년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지휘봉을 잡았다. 그래서 한국 팬들에게 더욱 친숙한 감독이 됐다. 김하성은 빅리그 진출 첫 해인 2021년 주로 내야 백업 역할을 맡았으나, 멜빈 감독이 새롭게 부임하면서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무엇보다 2023시즌에는 내야에서 전천후로 활약하며 아시아 내야수로는 최초로 골드글러브(유틸리티 부문)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를 믿고 기용한 멜빈 감독의 공도 컸다고 할 수 있다.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 입단식을 치렀는데, 당시 파르한 자이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사장만 동석했다. 멜빈 감독은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멜빈 감독은 "기자회견 직전에 이정후와 영상 통화를 했다. 내가 지난 한 달 동안 베이 에어리어에 있었던 관계로 이정후의 기자회견에 함께하지 못해 대단히 아쉬움이 컸다"고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멜빈 감독은 "이정후는 개성이 뚜렷한 선수였다. 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일원이 된 것에 관해 매우 큰 기쁨을 나타냈다. 그런 점들이 내게 정말 깊은 울림을 줬다.(Ton of personality there, loves being a Giant and that really resonates with me) 또 우리 팀원들에게도 역시 커다란 울림을 줄 것"이라면서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가 뛰고 싶었던 곳이자, 그가 함께하고 싶었던 팀이었다(This is a place he wanted to be, a team he wanted to be with)"며 새로운 식구를 반겼다.

멜빈 감독은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색인) 검정색과 오렌지색이 잘 어울리는 선수다. 이정후가 우리 팀에서 뛸 수 있게 돼 정말 흥분된다.(Looks good in black and orange and really excited about having him on the team) 오프시즌 초반부터 자이디 사장이 정말 영입하길 원하는 선수라고 이야기를 했다.(We talked about him early in the offseason that this was a guy Farhan [Zaidi] really wanted to sign) 우리 팀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채워줄 수 있기에, 이번 오프시즌은 좋은 출발을 할 수 있게 됐다"며 흡족한 마음을 거듭 드러냈다.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주황색 원), LA 다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스카우트들이 지난 2월 7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 위치한 키움 캠프를 찾아 이정후의 훈련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지난 2월 17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키노스포츠 콤플렉스에서 타격 훈련을 하고 있는 이정후(오른쪽)을 지켜보고 있다./사진=뉴스1
이정후(왼쪽)와 피트 푸틸라 샌프란시스코 단장. /AFPBBNews=뉴스1, OSEN

이정후의 공식 입단식에서 자이디 사장 역시 이정후를 중견수로 기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현재 확실하게 주전 자리를 꿰찼다고 말할 수 있는 외야수가 사실상 없다. 베네수엘라 출신 21세의 루이스 마토스는 지난 시즌 중견수로 가장 많은 76경기를 소화했다. 그러나 타율 0.250(253타수 57안타) 2홈런, 2루타 13개, 3루타 1개, 14타점 24득점 3도루 20볼넷 33삼진 장타율 0.342 출루율 0.319 OPS(출루율+장타율) 0.661의 평범한 성적에 그쳤다. 또 다른 외야수인 브라이스 존슨과 오스틴 슬레이터 등도 중견수로 뛰긴 했지만 확실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이젠 당장 사령탑의 굳건한 신임 속에 루이스 마토스의 자리를 이정후가 대신 차지하게 됐다.

여기에 이정후의 엄청난 계약 규모 자체 역시 아무리 메이저리그에서 보여준 것 없는 루키라고 해도 이미 주전은 보장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많은 돈을 받는 선수가 그 팀의 선발 라인업을 차지한다. 큰 부상 등의 특별한 사유가 아니라면, 연봉이 높은 슈퍼스타들은 설사 부진이 길어지더라도 주전 자리를 보장받는 편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정후는 주전 경쟁에 있어서 매우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팀 내 최고 연봉자이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와 2027시즌 종료 후 옵트 아웃을 포함하는 1억 1300만 달러(한화 약 1484억원)의 6년 계약에 합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역대 아시아 야수로는 최고 대우의 금액이다. 그리고 4년 뒤인 2027시즌 종료 후에는 옵트 아웃(계약 기간 도중 FA 권리 행사 등으로 인한 계약 파기)을 통해 다른 구단으로 이적할 수 있다. 이는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굉장히 좋은 활약을 펼칠 경우, 더 좋은 대우를 받고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리한 조항이라 할 수 있다.

자이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사장의 믿음은 매우 크다. 그는 이정후의 입단 기자회견에서 "우리 구단은 이정후가 KBO 리그의 최고 선수로 성장해 많은 상을 받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이정후가 우리 구단에 정말 딱 들어맞는 선수라 생각한다. 이번 오프시즌을 맞이하면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팀의 공격력 강화를 위해 콘택트 능력이 좋은 선수가 필요했다. 콘택트 중심의 야구는 최근 메이저리그의 경향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이번 오프시즌 동안 영입할 수 있는 후보를 봤을 때, 이정후를 제외하면 우리가 원하는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선수가 없었다"며 무한 신뢰를 보냈다. MLB.com은 "이정후의 합류로 마이크 야스트렘스키와 미치 하니거, 마이클 콘포토 등 샌프란시스코의 외야진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 했다.

이정후의 영입을 한글로 알린 샌프란시스코 구단 공식 SNS 대문. /사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 공식 SNS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공식 SNS를 통해 이정후의 반려견 까오를 소개했다. /사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공식 SNS
이정후(가운데)가 17일(한국시간) 미국프로농구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홈구장 체이스 센터를 방문해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MLB 컷4 공식 SNS
물론 고비도 있을 것이다. 현지에서는 이정후의 빠른 공 적응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MLB.com은 "이정후는 부상으로 시즌을 완주하지 못했던 2023시즌을 제외하고, 타율 0.318 미만의 수치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그런 이정후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빠진 툴을 하나 꼽자면 파워라 할 수 있다"고 한 뒤 "이정후는 '평균 이상의 수비형 중견수(above-average defensive center fielder)'라 할 수 있다. 다만 가장 큰 물음표는 이정후의 빠른 공 대처 여부다. 대부분의 KBO 리그 투수들은 시속 95마일(152.8km) 이상의 빠른 공을 던지지 못한다. 그랬기에 이정후가 2023시즌을 앞두고 특별히 준비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고 했다. 과거 롯데 자이언츠에서 현역으로 활약한 뒤 외국인 스카우트로 활동했던 라이언 사도스키도 "이정후는 KBO 리그보다 더 빠른 구속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단 이정후는 타격 폼 수정 없이 개막전을 맞이할 전망이다. 이정후는 귀국 현장에서 타격 폼 수정에 관한 질문에 "더 오랫동안 잘하고 싶어서 타격 폼을 바꿔본 적도 있다. 최고로 잘했을 때 변화를 주고 싶었는데, 미국에서는 그런 부분을 높게 평가해 주신 것 같다. 타격 폼은 당장 수정할 생각이 없다. 내년에는 우선 그대로 부딪혀보려고 한다. 일단 해보고 거기에 맞게끔 변화를 줄 생각이다. 나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 있어서 좀 더 빠르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정후는 한국에서 MVP를 차지했던 2022시즌 타율 0.349, 23홈런 113타점, 85득점, 2루타 36개, 3루타 10개, 5도루, 32삼진, 66볼넷, 장타율 0.575, 출루율 0.421, OPS(출루율+장타율) 0.996을 기록, 타율과 최다안타, 출루율, 장타율, 타점 등 타격 부문에서 5관왕을 달성했다. 특히 자이디 사장은 23개의 홈런과 32개의 삼진을 주목했는데, "어느 리그에서나 홈런과 삼진의 숫자가 비슷하게 나온다는 건 대단히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저는 우리 구단의 스카우트들이 원했던 기록뿐만 아니라, 선구안도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 이정후는 상대 투수가 투구할 때 정말 빠르게 구질을 인식한다. 그런 기술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에 관해 우리 역시 자신감을 갖고 있다"며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과연 이정후가 내년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벌써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이정후가 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이정후의 KBO리그 시절 기록을 요약한 그래픽. /사진=FOX 스포츠 공식 SNS
이정후. /사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 공식 SNS

김우종 기자 woodybell@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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