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약 40명 어르신과 함께 카페에서 일하는 부산 청년들
부산 사상구 모라시장 옆 골목으로 살짝만 들어서면 2층짜리 한 카페가 보입니다. 은은한 커피향과 함께, 연말 분위기가 풍기는 크리스마스 캐롤과 트리 장식,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겉보기엔 여느 카페와 크게 다를 것 없어보이지만 사실 이 카페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 유치원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동백베이커리는 예비사회적기업 ‘서양다과제작소’와 노인일자리 수행기관 ‘사상시니어클럽’이 손을 잡고 만든 세대융합형 카페입니다. 세대융합형 카페는 말 그대로 세대가 어우러져 카페에서 일하는 근무 형태를 말하는데요. 이곳에선 6명의 청년 직원과, 30~40명의 어르신 직원이 함께 카페를 운영합니다. 제빵 자격증을 가진 청년들이 빵을 만들면, 어르신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음료를 만듭니다.
[ 임은수 / 동백베이커리 대표 ] “어르신들은 하루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가 않아서 일주일에 두 번 4시간씩 3교대로 근무를 하고 있어요. 청년들은 안에서 빵을 만드는 직원들이 대부분이고 저희 점장님이랑 제가 카페 전반을 신경 쓰면서 어르신들 교육하고 뒤에서 문제 생기면 해결하고 있습니다.”
동백베이커리 청년 직원들은 28세 임은수 대표와 현재 군 복무중인 김성현 공동대표, 서양다과제작소 직원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청년들은 사업과 동시에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노인 일자리 문제 해결을 목표로 잡았던 것은 아니었다는데요. 처음 그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이주민 정착’ 문제였습니다.
[ 임은수 / 동백베이커리 대표 ] “이주민 정착을 도와주고 싶어서 저희가 디저트를 만들고 있으니까 이주민분들에게 우리의 디저트 만드는 걸 가르쳐주고 디저트를 그분들 나라의 특성을 가지고 와서 새로운 걸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일이 힘들거나 아니면 돈이 좀 안 된다라는 이유로 일을 하기 싫어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해결하고 싶었던 지역사회 문제는 해결하기가 힘들어진 거죠.
지역사회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계를 느낀 이들이 ‘실현가능성’에 다시 초점을 맞춰 문제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찾은 것이 바로 ‘노인 일자리 부족’ 문제였습니다.
[ 임은수 / 동백베이커리 대표 ] “저도 마찬가지이고 저희 직원들도 그렇고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컸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기들 자식을 돌보느라 시간이 없어지는데 그 자식의 자식인 저희까지 보느라 친구도 만날 시간도 없고 나가서 일할 시간도 없어지다 보니까 그러면 우리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노후에 심심할 때 나가서 뭔가라도 할 수 있는 거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자 하고 시작을 한 거예요.”
청년들이 노인 일자리 문제 해결이라는 사업 방향성을 잡은 후에는 함께 일할 노인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다행히 이 문제의 열쇠는 임은수 대표의 멘토가 쥐어줬습니다. 멘토는 과거 사회적기업 육성 사업 참여 당시 ‘서양다과제작소’ 운영에 많은 도움을 줬던 은인이라는데요. 그가 ‘사상시니어클럽’을 소개해주면서 동백베이커리의 목표, ‘세대융합’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청년과 어르신이 함께 일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각오를 하고 시작한 세대융합형 사업. 역시나 순탄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 임은수 / 동백베이커리 대표 ] “손님 분들한테도 반말을 하시는 분들도 종종 계셨고 아니면 저희가 가르쳐준 레시피보다 아껴서 넣다가 음료 맛이 바뀌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고 주방 안에는 청년들만 일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 일하는 게 위험하거든요. 무겁거나 뜨겁거나 막 하니까 그래서 어르신들이 최대한 못 들어오게 하는데 어르신들은 그냥 들어와서 어떻게든 바닥이라도 한 번 깨끗하게 닦아주고 설거지 할 거라도 하나 챙겨서 ‘설거지 내가 해줄게요’ 하려고 들어오는데 그러다 보니까 직원 분들이 다치고 어르신들한테 괜히 한소리 하고 이런 일은 있었죠.”
물론 어려움을 느낀 건 청년만이 아니었습니다. 동백베이커리 개업 때부터 쭉 함께한 64세 바리스타 서동환 씨는 카페에서 일하며 당황스러웠던 일화를 들려줬습니다.
[ 서동환 / 동백베이커리 어르신 직원 ] “처음에 와서 레시피를 외우고 메뉴를 외우고 했단 말이에요. 근데 젊은 손님이 오셔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아샷추 한 잔 주세요.’ 아무리 봐도 아샷추가 뭔지 모르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한 번도 그런 걸 들어본 적도 시켜본 적도 없는데 이게 뭐냔 말이에요. 할 수 없이 점장을 불렀죠. 점장에게 ‘아샷추가 뭡니까?’ 그랬더니 아이스티에 샷을 추가한 것이래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예요. 손님들이 주문할 때 메뉴 이름을 끝까지 다 말씀 안 하세요. 특히 젊은 분들은 줄여서 이야기해버리는 거예요. ‘아바라’ 한 잔 주세요. 못 알아듣는 게 처음에는 많았죠.”
그렇게 1년이 흐른 동백베이커리는 이제 세대융합이라는 이름에 딱 맞는 카페가 됐습니다.
[ 김시진 / 동백베이커리 점장 ] “저도 모를 수 있는 부분을 되게 많이 배워가거든요. 손님들한테 사소하게 할 수 있는 서비스 손님들을 어떻게 하면 더 기쁘게 해줄 수 있는지 부분과 제가 모를 수도 있는 놓치는 부분들을 어른들한테 많이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 임은수 / 동백베이커리 대표 ] “청년들은 밥을 제대로 챙겨 먹을 일이 없잖아요. 일을 하다 보면은 그러면 어르신들이 아침에 집에서 김밥 싸서 가져다 주시고 반찬이랑 밥이랑 따로 챙겨 와서 이거 점심에 몰래 먹어 하면서 밀어 넣어주시고 하거든요. 그러면서 알아서 그냥 저희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게 자기들이 일이 조금 익숙해지셨다 싶으면은 저희가 안에서 음료를 만들고 계산하고 이런 거를 안 보시려고 해요. 저리 나가 있어 내가 할게 이러면서 밀어가지고 쉬게 좀 만들어 주시죠.”
동백베이커리는 어르신들이 오시기 좋은 카페를 만들기 위해 아메리카노 한 잔을 2000 원에 파는가 하면, 요즘 카페에서는 당연시 되는 ‘1인 1음료 주문 필수’ 규칙도 없앴습니다. 청년과 노인의 세대차이 완화, 노인 일자리 창출 등 좋은 취지를 가졌지만 이 취지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그만한 영업 이익이 따라줘야할 텐데요.
[ 임은수 / 동백베이커리 대표 ] “저희가 운영할 때는 이게 돈이 많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저희가 (운영하는) F&B는 제조업 회사거든요. 제과 제빵 HACCP 공장을 만들어가지고 유통업체에다가 저희가 빵을 만들어서 납품을 하고 있어요. 그것들로 저희가 하고 있는 것에 뒷받침이 되게 하고 있는 거죠.”
임 대표는 이 세대융합형 카페로 어르신 70~80명의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 공간에서는 실질적인 한계가 있어 3년 내 다른 구에도 같은 취지의 카페를 마련하고 싶다는데요. 당장 내년의 계획에 대해서는 어르신들과 연매출을 1.5~2배 올려보고 싶다고 설명했습니다.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어르신이 일을 한다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청년과 어르신이 ‘함께’, 청년이 ‘직접’ 손을 내밀어 ‘같은 공간’에서 일함으로써 특별한 이야기가 된 동백베이커리입니다.
[ 김시진 / 동백베이커리 점장 ] “조금 더 어르신들이 도전적이셨으면 좋겠어요. 어르신들은 자기가 평생 해오셨던 일들이 아니다 보니까 무섭기도 하시고 ‘내가 못하니까 너가 해라’ 라는 게 많으시거든요. 근데 내가 한번 배워볼게 같이 하자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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