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왜 사요?" 과감해진 증권사 애널리스트 리포트, 할말은 한다
그동안 매수 일색이라는 오명으로 비판을 받던 증권사 종목 보고서가 확연히 달라진 과감한 의견으로 눈길을 끈다.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걸 굳이 왜 사요?' 라는 제목의 KT 보고서를 발간했다. 투자의견은 '중립', 목표주가는 3만3000원을 유지했으나 "하루라도 빨리 처분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게재한 사실상의 매도 리포트였다. 대부분 증권사가 KT에 대해 긍정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등장한 이례적 매도 리포트로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김 연구원은 KT에 대해 "낮은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이익 감소·배당 정체 가능성을 감안하면 주가자산비율(PBR) 0.6배, 기대배당수익률 5.4%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KT의 올해 실적 흐름과 규제 환경을 토대로 내년 KT 주가 전망 역시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2024년 KT 주가가 4만원 갈 일은 없다. 하루라도 빨리 비중 축소에 나설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21일 종가기준 KT의 주가는 3만5750원이다.
김 연구원은 같은 날 '1월에도 주가 전망은 어둡습니다'라는 LG유플러스(LGU+) 보고서도 발간,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목표주가 역시 기존 1만2000원에서 1만1000원으로 낮췄다. 2024년 영업이익이 감소 전환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투자의견 하향의 주된 이유다.
그는 "낮은 멀티플(기업가치 배수) 외엔 추천 사유가 부재하며 미국 연준 금리 인하 추진으로 경기관련주로 매수세 쏠림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 LGU+ 비중 축소에 나설 것을 권한다"고 했다.
신영증권에서도 팬오션에 대해 매도를 제시한 보고서가 나오면서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도 팬오션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도'로 하향하고 HMM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팬오션에 대한 분석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엄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인수 주체의 장기계획상 글로벌 상위 5위의 선사로 커지기 위해서는 현재 2.8%에 불과한 선대 점유율을 현재 몸집의 3배 이상으로 불려야 하고, 해당 선박기재 투자에만 200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며 "매각자금이 회사로 유입되는 것이 아니라 채권단에게 돌아가므로 미래를 위한 신규투자는 오롯이 HMM의 자체적인 자금으로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팬오션의 가치 회복 기간은 1년 이상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필자는 경영자가 아닌 애널리스트로서 1년 이내 주식투자 전략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명확한 주주가치 희석 비율을 알 수 없음을 감안해 팬오션을 커버리지에서 제외한다"고 했다. 해당 보고서가 나온 21일 HMM은 주가는 11% 이상 빠지며 급락세로 장을 마감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일각에서는 금융감독원이 '매수' 일색인 증권사 리포트 관행 개선에 나선 것이 성과를 보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감원은 지난 3월부터 주요 증권사와 함께 '리서치관행 개선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국내 증권사의 매수 일변도 리서치관행 개선에 나섰다. T/F팀 구성과 더불어 ▲애널리스트 성과평가 ▲독립 리서치 제도 도입 ▲예산 배분 ▲공시방식 개선 등의 방안을 계획하기도 했다.
다만 여전히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는 매도 리포트를 내기엔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리서치센터 연구원들이 '매도'나 '중립' 의견을 제시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증권사와 기업 간의 관계, 불리한 리포트를 쓴 연구원에 대한 해당 기업의 부당 대처 우려 등이 있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주식시장에 급격히 늘어난 개인투자자들의 항의까지 빈번해지고 있다. 실제로 하나증권의 한 연구원은 에코프로 주가 과열 양상에 '매도'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투자자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연구원은 "기업과 투자자들은 증권사에서 관련 회사를 나쁘게 평가한 탓에 주가가 빠진다고 생각해 반감을 가진다"며 "상장사 역시 매도 리포트를 쓴 애널리스트에게 제공하는 정보에서 차등을 주는 상황도 발생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정부 부처나 유관 기관에서 이런 부담을 경감해줄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준다면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지운 기자 lee101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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