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건 없다"…상처와 반목만 남은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천경환 2023. 12. 2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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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지는 진상규명, 애타는 유가족…"단체장 소환 계획 아직 없어"
지자체 재발 방지책 마련은 하세월…유가족 직접 시민진상조사위 발족
청주지검 앞에서 오송참사 책임자 처벌 촉구하는 유가족 촬영 천경환 기자

(청주=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청주지방검찰청 앞에는 매일 정오 '오송 참사'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1인 시위가 열린다.

3개월 넘게 시위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누군가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누군가는 그날의 충격을 잊지 못해 이곳에 선다.

지난 22일 만난 A씨는 참사로 애지중지 키운 20대 딸을 하루아침에 잃었다.

그의 딸은 친구들과 놀러 가려고 시내버스에 올랐다가 부모와 작별 인사도 못 하고 세상을 떠났다.

영하의 추위 속에도 의연하게 손팻말을 들고 서 있던 A씨는 점심을 먹고 커피를 손에 든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무너졌다.

A씨는 "우리 딸도 살아있었으면 저렇게 밥 먹으러 다녔을 텐데"라며 "비도 많이 왔는데 버스 타지 못하게 할걸. 그냥 딸이 너무 보고 싶다"고 자책하며 목메어 울었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트라우마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람들의 동정이 싫어 주위와 연락을 끊을 정도로 삶이 망가졌다.

이들이 여기에 서는 이유는 참사가 난 지 벌써 반년 가까이 지났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서다.

청주 오송지하차도 덮치는 흙탕물 [지하차도 CCTV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윗선 책임없는 용두사미 검찰 수사 우려

지하차도 침수 사고 원인과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한 검찰 수사는 5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수사는 국무조정실이 충북도, 청주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 등 7개 기관 30여명에 대해 수사 의뢰하면서 본격화됐다.

국무조정실은 사고 발생 13일 후인 지난 7월 28일 "미호천교 아래의 기존 제방을 무단 철거하고 부실한 임시제방을 쌓은 것과 이를 제대로 감시 감독하지 못한 것이 이번 사고의 선행 요인"이라는 내용의 감찰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초기 수사 단계부터 충복도, 청주시청, 행복청, 임시제방 시공회사, 감리업체 등 관계기관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 압수수색이 이뤄지면서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하지만 20여곳에 달하는 기관에서 확보한 압수물이 방대했고, 조사 대상자들도 200명이 넘어 약 4개월 동안 이렇다 할 진전은 보이지 않았다.

11월 22일 "하천수는 임시제방이 무너지면서 흘러나와 지하차도로 유입됐다. 지하차도 자체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어 참사의 근본 원인은 임시제방으로 보인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견이 나오면서 수사는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국과수 현장 감식 결과가 발표된 지 한 달도 안 돼 임시제방 공사 현장을 관리·감독한 책임자 7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이 중 감리단장과 시공사 현장소장이 구속됐다.

감리단장 A씨는 시공사가 도로 확장공사 편의를 위해 기존 제방을 불법 철거하고 임시제방을 부실하게 쌓아 올린 사실을 알고도 이를 묵인 및 방치해 인명피해를 초래한 혐의로 지난 22일 기소됐다.

현장소장에 대한 구속 기한은 연장됐다.

검찰은 행복청 공무원 등 나머지 5명에 대해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최근에는 충북도, 청주시에 대한 2차 압수수색도 했다.

1차 때와 달리 추가 압수수색 대상에 도 행정부지사실, 시 부시장실, 기획행정실장실 등이 포함되면서 사고 대응 기관 간부급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김영환 지사, 이상래 전 행복청장 등 기관장과 단체장의 소환조사는 감감무소식이다.

"윗선은 책임지지 않고 실무자 몇 명 꼬리 자르기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유가족의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청주지검 관계자는 "단체장 소환에 대해선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며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수사 결과 언제까지 기다려야"…오송참사시민진상조사위원회 발족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자체 재발 방지책도 아직 '초기 단계'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던 지자체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도는 기존 재난 관리체계를 재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재난별 맞춤형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으나, 최근 연구용역을 계약하는 등 사실상 계획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도 안전정책과 관계자는 "아직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기본적인 계획만 잡았다"며 "오송 참사 백서도 내년은 돼야 편찬위원회가 꾸려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다리다가 지친 유가족들은 지난 20일 오송 참사 시민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했다.

홍석조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에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와 김용균 사망사고 조사위원회 참여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가세했다.

위원회는 내년 1월 말 참사 원인에 대한 조사 결과를 우선 발표한 뒤 3월에 재발 방지 대책과 피해자지원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홍 위원장은 "진상규명 및 책임 여부에 관한 참고 자료를 만들어 검찰에 제출하고 지자체에는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할 것"이라며 "참사 원인을 철저히 밝혀 다시는 이런 후진적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7월 15일 오전 8시 40분께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는 인근 미호강 제방이 터지면서 유입된 하천수로 시내버스 등 차량 17대가 침수됐다. 이 사고로 14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이 사건을 조사한 국무조정실은 충북도와 청주시, 흥덕경찰서 등 관계 기관의 공무원 34명을 직무 유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하고, 63명은 징계 등 인사 조처를 요구했다.

k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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