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두발 뻗고 잔다" 경찰 칭찬게시판 달려간 신랑신부들

김지은 기자 2023. 12. 23.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베테랑] 서울 영등포경찰서 수사2과 사이버수사팀 장현기 경위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칭찬합시다 게시판.

"장현기 수사관님을 비롯한 영등포경찰서 사이버수사팀 감사합니다."

지난 5일 서울 영등포경찰서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장현기 수사관을 비롯한 사이버 수사팀을 칭찬한다는 글이 쇄도했다. 작성자들은 "난생 처음 당해보는 사기인데 수사관님 덕에 피의자가 체포됐다" "친절한 건 둘째치고 사건에 대한 전문성이 남달랐다"고 글을 남겼다.

장 경위와 수사2과 사이버수사팀은 지난달 29일 신랑 신부들의 예약금을 훔치고 달아난 헤어 변형 업체 대표 A씨를 검거했다. A씨는 결혼식과 웨딩 촬영 당일날 헤어스타일을 꾸며주기로 하고 예약금 28만~80만원을 선불로 받은 뒤 잠적했다. 서울경찰청에 보고된 피해자는 약 42명. 피해금액은 1670만원에 달한다. 전국으로 보면 피해자 수는 25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헤어변형 업체 대표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피해자들과 소통했다. 오른쪽 사진은 CCTV에 찍힌 A씨의 모습.


지난 10월28일쯤 영등포경찰서에 A씨에 대한 고소가 여러 건 접수됐다. 장 경위는 접수된 사건들을 보다가 이상함을 느꼈다. 결혼을 앞둔 20~30대 피해자 9명이 이틀에 걸쳐 고소를 했는데 피고소인이 모두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장 경위는 "사이버팀은 접수되는 사건도 민원인도 많다 보니 정말 바쁜 부서 중 하나"라며 "그런데 서류들을 보니까 9명이 비슷한 시기에 한 업체를 고소하는게 이상했다. 전국적으로 이런 유형의 피해자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거 단순 소액 사기 사건이 아니구나, 빨리 잡아야겠다'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피해자들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만 소통했다. 예비 부부가 인스타그램 광고를 보고 연락을 주면 카카오톡 채널로 일을 진행했다. A씨는 '지금 안하면 나중에 가격이 더 오른다' '지금이 이벤트 가격'이라며 계약을 권유하고 28만~80만원 상당의 예약금을 일부 또는 전액으로 받았다. 결혼식의 경우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예약은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전부터 준비한다. 예약금을 미리 지불했던 신랑 신부들은 그동안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다가 결혼이 다가오는 2주 전쯤에야 A씨가 잠적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장 경위는 자금 추적을 통해 범인의 동선을 파악했다. 그는 "A씨가 사용한 결제 내역에 따라 CCTV(폐쇄회로TV)를 분석하며 피의자 동선을 좁혀갔다"고 말했다. 팀원 8명과 함께 추운 날씨에도 맨발로 뛰어다니며 CCTV 영상을 찾고 반복적으로 보며 비교했다. 밤 늦게까지 잠 한숨 못자고 이틀 연속 잠복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 뒤 장 경위는 A씨가 인천의 한 주거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경찰을 보고 당황한 듯 보였지만 영장을 제시하자 특별한 저항 없이 순순히 따라나왔다. 현재 A씨는 사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경찰은 A씨가 직원들 임금을 제때 지불했는지 등 여죄 부분을 추가로 수사 중이다. 장 경위는 "누구도 안 다치고 깔끔하게 검거를 해서 '다행이다' 이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수사2과 사이버수사팀 장현기 경위


장 경위는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액일지라도 미리 꼼꼼하게 확인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A씨는 구체적인 사업장을 두지 않고 SNS로 연락을 한 뒤 출장 나가는 방식을 취했다"며 "이런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정상적인 업체인지 사업자 등록 정보 등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현금 영수증을 했을 때 업주명 이름이 제대로 나오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 경위의 목표는 수사 전문성을 키워 대규모 강력 범죄에도 일조하는 것이다. 그는 "경찰 생활한 지는 8년, 사이버 수사팀에서 일한지는 4년 정도 됐다"며 "사이버팀에서 배운 내용들을 바탕으로 N번방 사건과 같은 강력 범죄에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