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의무 폐지 안 하면... 전문가들 “전세가격 상승 ‘불쏘시개’”
분상제 4만여 가구... “우량 전세물량, 시장에 못 나와”
경기도 동탄에서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김모씨는 작년 말 서울 강동구 소재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면서 ‘내 집 마련’에 성공했지만 잔금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 실거주 의무 폐지는 확실하다는 정부 말을 믿고 청약을 넣었는데, 실거주 의무가 유지되면서 집을 팔거나 전세를 놓을 수 없는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김모씨는 “전매제한이 풀리면 뭐 하나. 당장 실거주 의무 때문에 집을 팔거나 전세를 놓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면서 “전세 끼고 잔금을 치르려고 했는데 막막하다”라고 토로했다.
실거주 의무 폐지를 골자로 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면서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셋값 오름세를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내년 아파트 입주물량이 최저치인 데다 실거주로 전세 공급까지 부족해지면서 전세가격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23일 국토교통부와 업계에 따르면 현재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 아파트는 전국 72개 단지, 4만7595가구에 달한다. 이 가운데 1만5000여 가구가 내년에 입주한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 e편한세상강일어반브릿지(593가구), 강동구 길동 헤리티지 자이(1299가구) 등이 대상이다.
실거주 의무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은 저렴한 아파트에 청약 당첨되면 입주 시점에 무조건 2~5년간 직접 거주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2021년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투기 세력’를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을 잡겠다며 전매 제한과 더불어 패키지로 내놨던 제도다.
하지만 이를 투기 세력이 아닌 일반 청약 시장에도 도입하면서 실수요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다.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는 무주택자만 청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기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조정대상지역 내 위치하는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는 재당첨이 10년으로 제한된다. 이에 지금처럼 고금리·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국면에서 주택담보대출로 잔금을 치르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지 않을 경우, 전세가격을 올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주택시장은 매매시장의 관망세가 짙어지면서 매매수요가 전세수요로 전환되는 등 전세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입주를 앞둔 우량의 전세 물량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잠겨 버리는 것”이라며 “전세가격이 올라가면 상대적으로 내 집 마련에 무심했던 사람들이 매매로 돌아서면서 내년 하반기 금리 인하와 맞물려 부동산 가격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라고 했다.
특히 실거주 의무가 ‘입주물량 공백기’와 맞물리면서 여파가 더욱 클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예상)은 1만5000가구도 채우지 못한다.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역대 최저치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분양가 상한제로 받은 4만여 가구가 전세를 놓지 못한다. 실거주 의무가 유지되면 분양권 전매도 할 수가 없다. (현 정부의) 전매 제한 완화 대책이 무색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히 입주물량 공백기와 맞물리며 세입자 입장에서는 전세를 저렴하게 들어갈 기회를 잃게 된다. 전세 시장의 압박 요인이 더욱 커지는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전세 시장 전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단지가 입주해도 주변 지역 전세 가격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이번에도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가 있는 곳 위주로 ‘국지적 영향’만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정부가 다 될 것처럼 발표했는데 보다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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