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명품 1인자' 파페치, 어쩌다 구렁텅이로 빠졌나[케이스스터디]
250억달러 달하던 기업가치, 2억달러 수준으로 추락
쿠팡, 파페치 인수 발표…6500억원 투자
[케이스스터디 - 실패에서 배운다]
쿠팡이 ‘파페치(Farfetch)’를 인수키로 했다. 많은 사람들은 뭐하는 회사냐고 물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쿠팡의 결단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 그만큼 파페치가 대단한 이력을 가진 회사이기 때문이다.
파페치는 영국의 패션 플랫폼이자 세계 최대 명품 커머스 기업으로, 일종의 신드롬까지 만들어냈다. 파페치 이전까지 ‘명품을 치킨처럼 배달해 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으니까. 몇 번의 스마트폰 터치만으로 명품을 살 수 있다는 점은 고객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파페치 하나로 수십, 수백 개의 명품을 앉은 자리에서 편하게 구경할 수도 있다.
파페치는 백화점으로 갈 고객들을 온라인으로 불러 모으며 명품 시장에서 단숨에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에서도 파페치는 매치스패션, 마이테레사 등과 함께 ‘3대 직구 플랫폼’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다.
파페치의 기업가치는 한때 250억 달러(32조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몰락도 극적이었다. 2022년부터 추락하더니 시장가치는 90% 이상 떨어졌고, 주가는 1달러 아래로 추락했다. 최근 쿠팡이 6500억원 투자를 발표하며, 파페치의 키다리 아저씨로 나섰지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파페치는 어쩌다가 구렁텅이로 빠졌을까.
‘명품+IT’ 합치며 승승장구
파페치는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쉽게 명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으로 2007년 포르투갈 출신의 사업가 조제 네베스가 설립한 회사다. 사명은 멀다는 의미의 ‘Far’와 가져오다라는 뜻의 ‘Fetch’를 합친 것으로 ‘멀리 있는 아이템도 빠르게 전달하겠다’는 의미다.
네베스는 전공인 ‘소프트웨어 개발’과 평소 관심사인 ‘패션’을 연결해줄 아이템을 구상했고 2008년 ‘파페치’를 론칭했다. 당시만 해도 온라인에서 명품을 산다는 것은 모험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2008년 전체 명품 시장에서 온라인 매출이 차지하던 비중은 2%에 불과했다.
네베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패션에서 최고도 아니고 프로그래밍으로도 최고는 아니지만 두 분야를 모두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패션 전자상거래 시장에 도전하고 싶었고 업계를 변화시킬 아이디어를 생각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장 환경이었다. 론칭 직후 미국발 금융위기인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하며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파페치가 3년이 지난 2010년에 들어서야 첫 투자 유치를 성공했다.
이후 파페치는 연달아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2015년 DST글로벌파트너스가 주도한 투자에서 8600만 달러(약 1125억원)를 유치하면서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의 비상장사) 으로 인정받았다.
파페치는 유럽 현지 오프라인 부티크(명품을 판매하는 소규모 매장)를 확보하면서 명품 유통 기회를 잡았다. 부티크는 명품 브랜드의 1차 벤더이자 대규모 독점상으로, 명품의 최상위 유통사에 해당한다. 파페치는 명품 브랜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부티크와 직접 계약을 맺고 명품 재고를 확보했고, 이를 통해 명품의 온라인 판매 기회를 얻었다. 현재 파페치는 샤넬·루이비통·입생로랑 등 글로벌 명품을 파는 부티크와 백화점 매장 등이 입점해 있다.
파페치는 빠르게 성장하며 2018년 9월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상장 당일 주식은 공모가(20달러)보다 훨씬 높은 30.6달러까지 오르며 인기를 얻었다.
파페치의 성공은 ‘부티크 확보 전략’이 통한 결과다. 반면 아마존은 실패했다. 아마존은 온라인 명품 시장이 커진다고 판단, 2020년 ‘럭셔리 스토어’를 론칭했다. 초대를 통해서만 가입을 가능하게 하고 VIP 고객을 위한 별도 서비스도 마련하는 등 노력했지만 서비스의 핵심인 ‘브랜드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사업을 키우지 못했다. 아마존 기존 고객과 명품 서비스의 접점이 없었고, 아마존의 대표 이미지인 ‘최저가’가 명품 사업에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브랜드 유치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 실패 요인이다.
‘한계’에서 시작된 파페치의 하락
파페치의 몰락은 2022년부터 시작됐다. 파페치의 주가는 코로나19 기간 온라인 쇼핑과 명품 소비가 급증한 2021년 초 정점이었다. 파페치는 2021년 2월 71~73달러에 거래됐지만 이듬해 20달러 수준으로 추락했다. 기업가치는 250억 달러(약 32조5000억원)에서 2억 달러(약 2600억원) 아래로 떨어졌다. 전 세계 각국의 봉쇄 조치가 완화되기 시작하자 투자자들은 수익성 없는 기술 기업, 특히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기 시작했고 주가는 빠르게 내려앉았다. 현재 파페치 주가는 1달러 미만이다.
파페치의 실패 원인으로 업계에서는 △제3자 온라인 명품 사업 한계 △과도한 사업 확장 △창업자 네베스의 독단적 결정 등을 꼽았다. 2022년 시작된 명품 산업의 전반적인 침체까지 맞물리면서 파페치는 급속히 추락했다.
우선, 온라인 명품 사업의 한계가 가장 큰 이유다. 샤넬,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들의 경우 제3자를 통한 판매를 원하지 않는다. 브랜드는 소매업체의 할인으로 인한 브랜드 가치 훼손을 막기 위해 공급 상황을 직접 통제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명품 브랜드 정책이 서비스 확장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미국 투자은행 씨티 분석가 모니크 폴라드는 “파페치의 협상력 부족 문제”라며 “개방적인 시장에서는 계약 조건을 정할 수 있겠지만 럭셔리 시장에서는 제3의 플랫폼이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럭셔리 브랜드 소속 임원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파페치는 도매 유통을 선호하는데 이는 확실히 우리가 선호하는 전략은 아니다”며 “노출이 필요한 신생 브랜드에는 합리적이다. 하지만 명품은 다르다. 명품에는 그런 방식이 효과가 있거나 의미 있는 비즈니스 모델은 아니다”고 전했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현금 보유 비중을 줄인 것도 문제가 됐다. 파페치는 대부분의 투자금을 해외시장 진출과 기업인수에 사용했다. 2015년 30개국에서 이듬해 38개국으로 늘렸고, 2018년에는 150개국까지 확대했다. 현재 파페치는 190개국에 진출한 상태다. 한국 역시 2015년에 한국어 지원을 하면서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글로벌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각국에서 연중무휴 고객 서비스를 제공했고, 배송 서비스에도 막대한 투자를 진행했다.
기업인수도 적극적이었다. 런던 부티크 업체 ‘브라운스’(2015년), 온라인 운동화 플랫폼 ‘스타디움 굿즈’(2018년), 오프화이트 디자이너 레이블 모회사 ‘뉴가드그룹(NGG)’(2019년), 미국 소매업체 ‘바이올렛 그레이’(2022년), AR 스타트업 ‘워너바이’(2022년) 등을 끊임없이 인수했다. 업계에서는 파페치가 본 사업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고 지적했다.
창업자 리스크도 있었다. 현재 창업자 네베스는 파페치의 15%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의결권은 77%에 달한다. 이로 인해 최대 투자자인 리치몬트, 알리바바, 아르테미스(케링그룹 지주사) 등과의 상의 없이 네베스 단독 결정으로 회사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일각에서는 네베스가 이사회를 통제하고 있어 인원 감축 등 비상경영 체제 돌입에 늦어진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파페치는 주가가 떨어진 2022년에도 직원을 늘렸다.
네베스의 가장 큰 실패는 2019년 뉴가드그룹 인수가 꼽힌다. 파페치는 6억7500만 달러(약 9000억원)에 뉴가드그룹을 인수했지만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며 주가가 급락했다.
네베스는 2019년 2분기 실적 발표에서 “뉴가드는 인기 있는 럭셔리 브랜드 일부를 소유하거나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최고의 플랫폼”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번 인수는 우리의 미래전략을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수가 발표되자 파페치의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40% 이상 급락했다. 당시 보그, BoF 등 다수의 외신은 “파페치는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태”라며 “최근 3개월간 9000만 달러의 손실을 보고했는데 전년 동기 대비 1800만 달러 늘어난 수치다. 손실은 늘어나는데 M&A는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인수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다”고 우려했다.
파페치의 적자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2022년 매출은 전년 대비 소폭 늘어난 23억1700만 달러(3조원)를 기록했지만 영업손실은 같은 기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8억4716만 달러(1조1000억원)에 달한다.
결국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파페치의 재무건전성 우려로 최근 회사 등급을 ‘Caa2’로 강등했다. Caa2는 투자 부적격으로 평가하는 등급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파페치의 실패는)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라며 “단지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그들의 사업에 2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을 뿐이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2년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의 아마존, 파페치 살릴까
최근까지도 파페치는 새로운 투자자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파페치가 파산 위기에 직면했지만 최대 투자사인 리치몬트, 알리바바 등도 나서지 않고 있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왔었다.
이 같은 상황에 한국의 쿠팡이 파페치에 새로운 후원자로 나섰다. 12월 18일(현지 시간) 쿠팡 모회사 쿠팡Inc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파페치를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투자 규모는 5억 달러(약 6500억원)다.
창업자인 네베스는 회사에 남을 예정이지만 그의 정확한 역할은 쿠팡과 협상 중이며 추후 결정될 예정이다.
쿠팡Inc는 투자사 그린옥스 캐피털과 함께 파페치의 모든 비즈니스와 자산을 인수하는 목적으로 ‘아테나’라는 합자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아테나는 인수대금 명목으로 파페치와 대출 계약(브리지론)을 체결하고 5억 달러를 지급한다. 아테나의 지분은 쿠팡Inc가 80.1%, 그린옥스 펀드가 19.9%를 소유하게 된다.
파페치의 몰락에도 온라인 명품 시장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이다. 컨설팅기업 베인은 글로벌 명품 시장이 지난해 3450억 유로(약 493조원)에서 오는 2030년 5700억 유로(약 814조원)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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