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을 벗기고 씌우는 권력에 대하여[젠더살롱]
'아라비안나이트'의 나라
아이들을 위한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지금보다 훨씬 한정적이었던 어린 시절, ‘아라비안나이트’는 나의 ‘최애’ 책 중 하나였다. 밤마다 외할머니가 들려주신 전래동화는 구수했고, 여자아이들이 주로 읽었던 서구 공주 이야기들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지만, 읽을 때마다 감탄이 나왔던 화려한 이국에 대한 묘사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 넘치는 서사로는 ‘아라비안나이트’를 따라갈 만한 것이 없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라니! 앞이 뾰족한 구슬 달린 신발이며 화려한 터번은 또 어떻고! 책을 읽을 때마다 커서 꼭 이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무대를 찾아 나만의 모험을 떠날 생각에, 요샛말로 ‘가슴이 웅장’해지곤 했다.
1970년대 이란에서 ‘산업역군’으로 일하셨던 아버지의 경험담은 이런 나의 환상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란’은 아버지에게 젊은 시절 추억 한 자락을 자동 소환하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이란 이야기가 나올 때면 만면에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당시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했던 미국식 마트와 진열대를 가득 채운 상품들, 힘들었던 노동의 시간과 즐거웠던 유흥의 시간에 대해 들려주시곤 했다. 활달하고 아름다운 이란 여성들에 대한 감탄은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였다. 이란의 옛 명칭이 페르시아라는 걸 알게 된 이후에는 그 나라야말로 내가 언젠가는 갈 '아라비안나이트'의 본고장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소중한 환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2001년 9·11 테러 이후였다. 이란이 이슬람공화국이라는 이름의 신정국가가 된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꼭 가 보리라 생각했던 그 나라를 혼자 여행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이후 미국이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며 중동과 이슬람을 싸잡아 악마화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자들과 모험심 넘치는 남자들이 자아내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던 옛 아라비아와 페르시아는 이제 무고한 사람들을 상대로 ‘테러’나 일삼는 폭력배들이 가득한 은신처로 상상되는 ‘중동’ ‘아랍’ ‘이슬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중동 여성들에게 강요된 히잡?
지난해 9월 이란에서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22세의 마흐사 아미니라는 여성이 종교 경찰에게 끌려간 후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녀의 장례식에서 여성들은 히잡을 찢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등 항의 운동을 벌였고 이는 이후 이란 사회를 뒤흔든 시위로 이어졌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이란의 여성 인권 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는 이를 언급하면서 “히잡 강제 착용은 종교적인 의무이거나 전통문화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복종을 강요하는 정부의 수단”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처럼 국내외 대부분의 언론들은 모하마디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보도하면서 히잡 반대 시위 언급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는 히잡이 중동 여러 나라 권위주의 정부의 남성 중심적 성격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정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중동 여성들에게 강요된 히잡’이라는 표상은 중동 여성들은 누구인가, 그녀들이 쓴 히잡은 동일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중동’이라는 명칭부터 문제적이다. 중동 즉, 미들 이스트(Middle East)는 서구인의 입장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의 극동(Far East)보다는 가까운 곳이라는 의미다. 19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의 지배력이 쇠퇴하자 유럽이 식민지배의 야심을 드러내며 사용하기 시작한 이 명칭이 오늘날 한국에서 별문제 없이 사용된다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한국에서 보면 중동은 서쪽에 있지만, 문명 세계인 서구와는 판이하게 다른, 뭔가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지역이라는 인상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중동 여성’은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남성 권력의 수동적인 피해자이고 말이다.
히잡 또한 단일하지 않다. 아랍어로 ‘가리다’ 또는 ‘덮다’를 의미하는 동사 ‘하자바’에서 파생된 용어인 ‘히잡’에는 몸을 가리는 정도와 스타일에 따라 히잡, 아바야, 키마르, 차도르, 부르카, 니캅 등 다양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돌체앤가바나, 샤넬, 구찌 등의 ‘명품 브랜드’에서 히잡 컬렉션을 발표해 큰 유행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 누가 히잡을 쓰는지에 따라 그 의미가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벗겨져야만 했던 히잡, 씌워져야만 하는 히잡
현대 이란에서 히잡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21년 영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쿠데타를 통해 세워진 팔라비 왕조는 1979년 이란 혁명 전까지 이란을 통치했던 마지막 페르시아 제국이었다. 영국에 이란은 석유 매장지로서 중요했다. 1901년 이후 이란 석유를 독점 개발한 영국이란석유회사(AIOC·Anglo-Iranian Oil Company)는 영국 국영 회사였다. 팔라비 왕조는 친영, 친서방 정책을 펼치지 않을 수 없었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국들의 전진 기지로서 막대한 양의 자금과 자원을 제공했다.
그랬던 이란이 1951년 석유 국유화를 단행했다. 중동에서 가장 먼저 대규모 유전이 개발되었지만 그 이익은 거의 대부분 영국에 빼앗기고 있었던 세월이 길었던 참이었다. 석유 국유화를 단행한 이는 모하마드 모사데크라는 민족주의 정치가였다. 이란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의회를 움직였다. 이를 무효화하기 위해 영국은 군사력을 동원했다. 영국과 함께 세계 석유 카르텔을 분할하고 있었던 미국은 처음에는 중재를 시도했으나 이후 “공산 세력이 이란 정권을 장악할 위험이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비밀공작을 통해 1953년 모사데크를 실각시킨다. 이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외국 정부를 전복한 첫 사례이기도 했다.
모사데크의 실각 이후, 왕조가 무너질 것을 우려한 레자 팔라비 당시 국왕은 친영, 친미 정책의 일환으로 이란의 세속화, 서구화, 현대화를 내세운다. 이때 여성의 히잡은 이란 풍습의 상징으로 이란 민족주의와 연결되었기에 벗겨져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이 정책의 실행을 위해 국왕은 강제력까지 동원했다. 그러니 이 시대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쓰지 않을 자유’를 누린 것이 아니라 ‘히잡을 쓸 자유’를 박탈당한 것이다.
국왕은 비밀 경찰을 동원해 반대파를 체포하고 고문하는 등 독재 정치를 자행했다. 여기에 경제난이 극심해지자 1979년 팔라비 왕조는 무너졌고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주도로 이슬람공화국이 되었다. 다시금 여성들의 머리에 히잡이 씌워졌다. 여성의 몸이 권력의 대리전이 벌어지는 일종의 전쟁터가 되는 일이 이란에서도 벌어진 것이다. 종교를 내세운 정치권력은 히잡을 통한 여성 몸에 대한 통제를 전 사회적 통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란 민중의 상징이 된 히잡
이란의 종교 민족주의 정권은 극단적 친서방 정권에 대한 반감을 등에 업고 집권할 수 있었지만 민중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종교 경찰 등 권위주의 국가 기구를 통한 권력 유지에만 골몰해 왔다. 이슬람혁명 30주년이 되던 2009년에 벌어진 ‘녹색 혁명’은 이에 대한 이란 민중들의 반응이었다.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개혁파 무사비의 상징색인 녹색을 내세운 거대한 시위가 이란 전역을 휩쓸었다. 그러나 부정선거 의혹이 짙은 가운데 기존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고 혁명은 실패했다. 이후 이슬람정부는 더욱 강경한 종교 권위주의 통치를 내세우며 히잡 씌우기를 통한 공포정치를 자행했다. 지난해 아미니의 죽음,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시위, 노벨평화상 수상자 모하마디의 수상소감은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처럼 히잡을 벗고 쓰는 문제에는 민족주의적 남성중심 권력의 여성 억압뿐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 권력의 중동 타자화가 함께 작동한다. 여기에서 들리지 않는 것은 히잡을 쓰거나 벗는 여성들의 목소리다. 우리에게는 서구 언론이 재현하고 한국 언론이 받아쓰는 이야기 말고 이란 여성들과 민중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좀 더 많이 필요하다. '아라비안나이트'만큼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그보다 훨씬 더 처절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그리하여 한국 현대사도 더 깊게 반추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들을 기다린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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