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연금 주고 청년 일자리를…신안 섬마을, 인구 '역행' 비결
햇빛연금 도입하자 인구 증가로 전환
어선임대사업 청년 정착 계기 마련
폐교 활용한 대학… 소멸 극복 요람으로
편집자주
지역 소멸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4주에 한 번씩 토요일 상영합니다.
지역 소멸은 말단에서 시작된다. 소멸이 가속화할수록 시골 인구는 도시로 향하고, 지방 인구는 수도권으로 향하는 탓이다. 그래서 도시보다는 시골이, 육지보다 섬마을이 지역 소멸에 더욱 취약하다. 그런데 이 같은 공식을 비웃듯, 소멸에 역행하는 지자체가 있다. 전남 신안군은 1,0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뤄진 지자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되레 인구가 늘고 있다. 풍부한 일조량을 찾아 몰려든 태양광 산업의 이익을 주민에게 돌리면서 시작된 변화다.
햇빛으로 주민 연금 주는 신안군
신안군은 지난 2018년 10월 '신안군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 이른바 햇빛연금을 주민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신안 안좌도와 자라도는 2021년 4월부터 전국 최초로 햇빛연금을 받기 시작했고 2021년 11월엔 지도, 지난해 4월 사옥도에 이어 임자도가 다섯 번째로 받게 됐다.
먼저 각 섬마다 '신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 조합들은 신안군 주선으로 은행 대출을 받아 발전회사(SPC)의 채권을 4% 정도 사들인다. 발전회사들은 협동조합을 위해 신용과 담보를 제공하고, 대출금까지 상환한다. 회사가 설립되고 주민들은 1인당 1만 원의 가입비를 내고 ‘신재생에너지 협동조합’ 조합원이 되면 발전소 이익의 30%를 1년에 4번, 분기별로 받는다.
발전회사들만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주민 동의와 인·허가 등 복잡한 행정 절차가 간소화돼 사업을 쉽고 빠르게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사업자 처지에선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기간을 예측가능하게 만들어 수지타산을 예측할 수 있고 뒷돈까지 썼던 행정비용을 아끼는 셈이다. 가장 큰 골칫거리인 주민 수용성 문제가 해결되니 이들도 환영하고 있다.
햇빛연금을 지급하는 협동조합은 현재 안좌·자라·지도·사옥도·임자도 등 5곳에 이른다. 연금을 받는 주민은 총 1만724명으로 신안군 전체 주민(3만8,043명)의 28%에 달한다.
인구 감소 역행한 지자체…섬 찾는 주민 줄 이어
신안 인구는 매년 꾸준히 감소해 왔지만 올해는 반등의 ‘기적’을 연출했다. 군 인구 증가율은 2017년 -1.4%, 2018년 -1.9%, 2019년 -2.4%, 2020년 -3.3%를 기록했다가 햇빛연금을 지급하기 시작한 2021년에 -1.9%, 2022년 -0.9%로 감소폭이 줄더니, 올해는 11월까지 0.4%를 기록하며 증가세로 돌아섰다.
협동조합이 들어선 안좌면, 지도읍, 임자면의 인구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안좌면은 2020년 2,988명이었던 인구가 지난달 기준 3,265명(9.2%)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지도읍은 4,222명에서 4,345명(2.9%), 임자면은 3,149명에서 3,229명(2.5%)으로 각각 증가했다.
신안군 안좌도에 거주하는 최미수(63)씨는 "1만 원만 내면 햇빛연금을 배당받을 수 있다는 말에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주민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제는 햇빛연금이 들어오는 날엔 자연스레 마을 잔치가 열린다"고 웃으며 말했다.
타지행 고민하던 청년들, 일자리 주니 정착
신안군이 또 다른 인구 소멸 대책으로 추진하는 청년 어업인 지원을 위한 어선 임대사업도 성과를 내고 있다. 신안군에 거주하는 60세 미만의 청년어업인을 대상으로 신안군에서 허가 어선을 임대하는 형태다. 청년 어업인들이 5년간 어선 구입비의 0.1% 수준인 이자를 납부하며 운영한 뒤 원금을 전액 상환하면 허가 어선의 소유권을 이전해 준다.
2019년 전국 최초로 시작된 어선 임대사업은 지방소멸 대응 기금 58억 원과 군비 34억 원 등 총 92억 원이 투입됐다. 이 사업으로 현재까지 총 39명의 '선장'이 탄생했다. 문의가 물밀듯이 빗발쳐 200여 명이 넘는 대기자가 선장의 꿈을 꾸고 있다.
흑산도에 거주하는 이승호(55)씨는 전복 양식을 해왔지만, 5년 전 어선 임대사업을 통해 24톤급 홍어잡이 어선을 모는 선장이 됐다. 전복 양식을 할 때는 연간 4,000여만 원을 벌어들였으나, 이제는 2억 원이 넘는 수익을 남긴다.
이승호씨는 "과거에도 배를 몰고 싶은 꿈은 있었지만, 한 척에 10억 원이 넘는 가격 탓에 언감생심이었다"며 "0.1%의 이자와 원금만 내면 누구나 선주가 될 수 있어, 타지로 떠나려 했던 고향 청년들까지 마을에 남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39명의 청년 선장 가운데 절반 이상이 육지로 나가려고 고민했던 사람들"이라며 "고향에서도 잘살 수 있다는 꿈을 갖게 된 것이 청년들이 떠나지 않고 정착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버려진 폐교 지역소멸 극복 요람으로
인구 소멸을 막아내고 있는 신안군은 한발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섬을 만들기 위한 백년대계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 초 문을 여는 '로빈슨크루소 대학'은 그 계획의 하나다. 폐교된 학교를 활용해 '섬 리더'를 양성한다는 복안이다.
신안군 압해읍 매화도에 소재한 압해초등학교 매화분교는 인구감소로 학생 수가 줄어 2010년 10월 폐교했다. 매화분교 건물은 계속 방치돼 흉물로 전락했다. 신안군은 2017년 건강증진시설 등으로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전남도교육청으로부터 매입했고, 지난해부터는 매화도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다목적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군은 교실 6개가 있는 매화분교 본관 건물에서 로빈슨 크루소 대학을 운영할 계획이다.
로빈슨 크루소 대학은 1,000개가 넘는 섬마다 스토리텔링을 만들 섬 전문가 200여 명을 양성할 계획이다. 신안 퍼플섬이나 햇빛연금 등 섬 활성화 혁신 사례를 중심으로 강연과 교육, 현장 답사 등을 진행한다. 강사로는 전문가와 섬 지역 활동가는 물론 어부, 이장, 요리사 등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초청해 궁극적으로는 섬 발전을 기획할 전문가들을 양성한다. 섬이 스스로 자생할 토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또 로빈슨 크루소 대학을 통해 신안을 넘어 세계 각국의 섬과 섬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지역 소멸을 극복할 단초가 될 것이란 생각에서다. 신안군에 따르면 섬을 찾는 사람들은 크게 세 유형이다. 섬에 사는 원주민과 섬 이주를 꿈꾸는 주민들, 그리고 섬을 찾는 외국인으로 분류된다.
김근하 신안군 문화도시지원센터 사무국장은 "로빈슨 크루소 대학을 통해 기후 위기를 겪는 기후 난민들을 받고 이들을 통해 빌리지를 육성한다는 구상도 있다"며 "이를 위해 태평양 14개 도서국과 인도네시아 동남아 등 섬국가들과 '1004섬 지혜 공유 참여망'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안=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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