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리그 해볼 만하던데요? 더 들이대 보겠습니다!"...새해에도 터질 '이정효 매직'

강은영 2023. 12. 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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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효 광주FC 감독은 K리그2(2부리그)에 있던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승격시킨 주인공이다. 올 시즌 K리그1에서 예상을 깨고 최종 순위 3위에 올라, 승격 첫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하는 등 명장으로 떠올랐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1부리그 해볼 만하던데요? 더 들이대 보겠습니다!"

거칠고 투박한 말투 속에 솔직하면서도 강인한 자신감이 뿜어 나왔다. 불과 10개월 전만 해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며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던 사람, 바로 이정효(48) 광주FC 감독이다.

이 감독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광주를 K리그2(2부리그)에서 우승시켜 K리그1으로 승격을 이끈 것도 모자라, 올 시즌 K리그1에서 '돌풍의 주역'으로 부상하더니 최종 순위 3위(승점 59·16승 11무 11패)로 마무리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일궈냈다. 구단 최초로 내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까지 따내면서 명실공히 '명장' 대열에 합류했다. 광주가 역시 구단 최초로 이 감독과 2027년까지 장기 계약 체결을 주저하지 않은 이유다.

이 감독은 지난 2년간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를 버텨내며 성장했다. 2021년 12월 K리그2로 강등된 광주의 사령탑으로 부임했고, 그 이듬해 팀을 1년간 지휘하며 끝내 우승을 달성했다. 어느 누구도 프로구단 감독으로서 경험이 전무한 '초짜' 감독의 돌풍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정효 광주FC 감독이 지난 9월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2023 K리그1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지시하며 소리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정효 광주FC 감독이 지난 7월 광주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2023 K리그1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칭찬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 감독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K리그1으로 승격한 올 시즌 그야말로 리그를 '씹어' 먹었다. 유럽리그에서만 보던 전방 압박, 빌드업, 빠른 측면 공격을 내세워 '공격 축구'를 선보였다. "지더라도 화끈한 공격 축구를 해보자"며 자신이 짠 전술에 맞춰 선수들을 훈련시켰다. 리그 초반에는 광주의 빠른 공격이 통했고 일취월장했다. 다만 중반기로 넘어갈수록 전술이 읽히면서 K리그1 팀들이 적응해 나갔고, 승리도 주춤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수비에 치중하는 축구를 지양했다. "누가 보더라도 재미있는 축구를 하고 싶어요. 그래야 경기장에 관중들도 찾아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에게 강하게 지시하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이 감독은 경기장에서 한시도 앉지 않고 선수들을 향해 소리치고 다그치며 90분 내내 에너지를 쏟아낸다. 특히 포항 스틸러스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0-0 무)에선 거의 토할 정도로 목청을 높였다. 골이 나오지 않아서였다. 이 감독은 "다행히 욕하는 건 중계카메라에 안 찍혔다"고 농담을 하면서도 "승점 60을 꼭 넘고 싶었고 넘길 줄 알았는데 골이 들어가지 않아 아쉬웠다. 선수들이 준비한 대로 느긋하게 하면 됐을 텐데 급하다 보니 제 실력이 안 나왔던 것 같다"고 포항전을 되새겼다.

이정효 광주FC 감독이 지난달 대구 DGB대구은행파크에서 열린 2023 K리그1 대구FC와의 경기에서 미드필더 이순민에게 전술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 감독은 선수단 관리가 치밀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술 하나하나에 선수들을 맞추고, 역할도 세밀하게 지시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각 선수들의 성향을 일일이 파악하는 '귀신'이 됐다. 늘 그라운드에서 외국인 용병들에게 "포지션! 포지션!"을 외치며, 전술에 어긋나는 걸 보지 못하는 냉혹한 감독이다. 수비수 티모(네덜란드)에 대해선 "티모를 데려가고 싶은 팀은 저한테 '사용설명서'를 꼭 받아야 할 정도로 컨트롤하기 쉽지 않은 선수"라고 귀띔했다. 또 광주에서의 활약으로 자국 대표팀에 차출돼 맹활약한 아사니(알바니아)를 자주 선발에서 제외한 것도 "공격만큼이나 수비도 잘하는 선수였는데 대표팀만 갔다 오면 팀에 등한시할 때가 있어 과감하게 배제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성실한 선수에겐 기회를 보장했다. 그 결과 이순민은 생애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고, 정호연 엄지성도 연령별 대표팀에 발탁돼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 감독은 '손흥민(토트넘)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중 누굴 영입하고 싶나'라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김민재"라고 답했다. "공격수는 제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지만 김민재 같은 수비수는 앞으로 없을 것 같다"는 게 그 이유다. 선수 시절 주로 수비진 중 풀백으로 활약했던 이 감독이 공격 전술에 얼마나 자신감이 차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자신감은 10개월 전을 떠올리면 사뭇 낯설기도 하다. 이 감독은 지난 2월 제주에서 열린 2023 K리그1 시즌 전 기자회견 당시 긴장된 표정과 말투로 언론과 마주했다. 편안한 트레이닝 복장의 다른 감독들과 달리 혼자만 슈트를 차려입고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슈트를 입은 이유가 있느냐'는 기자에게 이 감독은 현답을 내놨었다. 그는 "저에겐 큰 꿈이 있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으면 큰 꿈을 못 꾼다"면서 "옷을 편하게 입을 수도 있지만, 편하다 보면 어떤 일에 있어서 절대 최고가 될 수 없다. 그런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한다"고.

이 감독에게 다시 물었다. 10개월 전 초심을 잘 지키고 있느냐고. 역시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쭉 지나고 보니까 '이젠 해볼 만하다'라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그 누구와 붙어도 자신 있게 더 들이댈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렇다고 독불장군은 되지 않으려고요. 다른 사람들 의견을 많이 듣고 유연해질 겁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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