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시상식을 보고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북유럽 스웨덴의 겨울은 깁니다. 5~6개월에 이릅니다. 밤도 깁니다. 12월 중순, 오후 두 시 반이면 어두워지기 시작한 밤은 17~18시간 동안이나 지속됩니다. 분위기가 음산하여 사람들도 우울해지기 십상입니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하짓날이 가장 즐거운 축제일인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런 만큼 긴 겨울을 잘 이겨내려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집이나 가게에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어 함께 즐기는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겨울을 즐겁게 나는 또 다른 일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노벨상 시상식과 관련한 축제입니다.
수도 스톡홀름에서 매년 12월 10일 노벨상 시상식이 열립니다. 노벨의 기일(忌日)에 맞추어 열리는 행사입니다. 노벨상은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이 조국 스웨덴에 남겨준 최대의 선물이지만, 음울한 겨울 한복판에 시상 축제가 열리도록 한 것은 노벨의 또 다른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기념 콘서트로 시작한 행사는 다음 날 전야제로, 또다시 시상식과 며칠간의 학술 행사로 이어집니다. 세계의 지성인 수상자들과 축하객들이 몰려옵니다. 시상식에 참석하는 실비아 왕비의 드레스와 해마다 바뀌는 축하 만찬의 메뉴가 무엇인지에도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립니다. 언론은 이를 재미있게 보도하고 똑같은 메뉴가 다음 날부터 시청이나 주변 식당에 등장합니다. 말하자면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 온 국민의 축제입니다.
얼마 전 열린 2023년 노벨상 시상식에 초대받아 간 것은 삼성호암상에 관여하는 저에게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시상식은 오후 4시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구스타프 국왕과 실비아 왕비가 참석한 가운데 품격 있고 경건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국왕 내외가 먼저 입장하여 기다리다가 뒤이어 입장하는 수상자들을 기립하여 박수로 환영하는 것은 수상자에 대한 최고 예우의 표현입니다. 화려한 듯 소박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아름다운 꽃 장식에 사용된 꽃들은 이탈리아 북서부 지중해 연안의 휴양도시 산레모의 시민들이 해마다 보내준다고 합니다. 산레모 가요제로도 유명한 산레모는 ‘리비에라의 꽃’으로 불릴 만큼 꽃의 도시로 유명한 곳입니다. 노벨이 그곳에서 말년을 지내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 인연이 100년 이상 노벨상 시상식과 산레모의 꽃 선물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시상식은 1시간 20분간 사회자 없이 물 흐르듯이 진행되었습니다. 분과별 위원장이 수상자의 업적을 간단히 소개하면 국왕이 수상자에게 상을 전달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국왕이나 수상자의 스피치(연설)도 없었습니다. 다만 사이사이에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있을 뿐입니다. 세계가 생중계하며 주목하는 행사를 사회자 없이 진행하는 것은 그만큼 철저한 준비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수상자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힘들겠다는 생각에 꼭 그래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기념 만찬은 장소를 스톡홀름 시청 블루홀로 옮겨 6시 30분에 시작하였습니다. 시상식과 기념 만찬 시의 복장, 이른바 ‘드레스 코드’는 엄격하였습니다. 남성은 연미복, 여성은 이브닝드레스를 입는 게 원칙입니다. 연미복에는 자신이 받은 훈장을 달게 되는데, 저는 국내에서 훈장을 받은 적이 없어 독일 정부에서 받은 훈장을 달았습니다. 난생처음 입은 연미복이 어색하였지만, 더 힘든 것은 긴 만찬 시간이었습니다. 무려 5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남녀순으로 좌석을 배치하는 바람에 여성 사이에 낀 상황에서 부담이 되는 외국어로 몇 시간을 소통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이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은 3~4분에 불과했으나 음악에 할당된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입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만찬은 끝나고 다시 골든홀로 옮겨 무도회가 계속되었습니다. 일단 무도장으로 옮겨 갔다가 일찍 떠나는 사람들과 함께 빠져나왔습니다. 체력이 고갈된 듯, 힘들었습니다. 문화의 차이겠지만 우리가 참고해야 할 것은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삼성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한 적이 있는 노벨재단 관계자 한 분은 삼성호암상 시상식이 훨씬 낫다며 웃었습니다.
아무튼, 수상자나 축하객으로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는 분은 우선 체력을 길러야 하겠다는 우스운 생각을 하였습니다. 힘든 여정이자 경험이었지만, 그래도 길고 긴 밤과 눈 내리는 스톡홀름 풍경이 그리운 옛일처럼 가끔 마음에 떠오릅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셀린느, 새로운 글로벌 앰버서더에 배우 수지 선정...‘빛나는 존재감’
- “김준수는 마약 사건과 관련 없어… 2차 가해 멈춰달라” 2차 입장문
- [Minute to Read] Samsung Electronics stock tumbles to 40,000-won range
- “주한미군 이상 없나?” 트럼프 2기 미국을 읽는 ‘내재적 접근법’
- 온 도시가 뿌옇게… 최악 대기오염에 등교까지 중단한 ‘이 나라’
- 한미일 정상 "北 러시아 파병 강력 규탄"...공동성명 채택
- [모던 경성]‘정조’ 유린당한 ‘苑洞 재킷’ 김화동,시대의 罪인가
- 10만개 히트작이 고작 뚜껑이라니? 생수 속 미세플라스틱 잡은 이 기술
- 와인의 풍미를 1초 만에 확 올린 방법
- [북카페] ‘빌드(BUILD) 창조의 과정’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