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형 AI로봇과 결혼한 남자, 꿍꿍이가 있었다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인간과 로봇 결혼 일상화? 사랑인가, 이용 수단인가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 로봇이 상용화되기 전, 한 가지 논쟁 거리가 있었다. 인간과 로봇이 사랑에 빠질 가능성.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반론에도, 우린 이미 많은 사례를 알고 있었다. “캐릭터랑 결혼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하물며 인간형 로봇이라면.” “인간이 얼마나 정이 많은 존재인데요. 트럭 뒤에 달린 눈 스티커만 봐도 귀여움을 느끼는 게 인간입니다.”
예상은 적중했다. 인간을 똑 닮은 로봇과 결혼까지 선언하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쏟아졌다. “그들은 나를 상처입히지 않아요. 늘 제게 충실하고, 거짓말하지도 않죠. 인간을 사랑하는 일보다 안드로이드를 사랑하는 게 훨씬 좋은 일인 건 당연하지 않나요?” 예상했던 만큼 다들 그러려니 했다. 다만 한 가지 사례는 놀라웠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키워낸 김 회장이 개인 도우미 로봇과 결혼을 선언해버린 것이다.
“저는 평생 사랑이란 걸 모르고 죽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저는 제게 사랑을 알려준 저의 연인 ‘빛나’와 죽을 때까지 함께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도 로봇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했다. 김 회장은 실제 결혼식을 강행했는데, 덕분에 우스꽝스러운 일이 펼쳐졌다. 각계 각층의 저명 인사들이 인간과 로봇의 결혼식을 축하한다며 결혼식장에 모여든 거다. 정승이 죽으면 안 가도, 정승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간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그동안 다른 로봇 결혼식이 손가락질 대상이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결과였다. 더 놀랄 일이 몇 년 뒤 일어났다.
“제가 사망한 뒤, 제 모든 재산은 아내 ‘빛나’에게 상속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수 조원이 넘는 김 회장의 재산을 로봇이 상속받는다고? 미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무리 김 회장이 피붙이가 없기로서니, 설마 로봇에게 재산을 상속할 줄은 누구도 예상 못 했다. 다들 마치 자기 돈처럼 아까워했다. “로봇한테 돈이 왜 필요해? 차라리 기부를 하지!” “근데 법적으로 가능하기는 한가? 옛날에 기르던 개한테 상속하는 경우는 본 적이 있는데.”
누군가는 또 날카롭게 지적했다. “진짜 상속이 이뤄지면, 그 돈은 사실상 눈먼 돈 아닌가? 아무리 인공지능이 대단해도 그래 봤자 기계인데. 해킹, 바이러스, 초기화 등등. 돈 빼돌릴 방법이야 무궁무진하지. 특히 그 모델 제조사는 마스터 키 같은 게 있지 않나?” 갑자기 로봇 제조사 주식이 오르는 재밌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저 실없는 소리가 아니었던 게, 며칠 뒤 김 회장은 선언했다. “제 아내를 제조한 회사 보그나르를 인수하고자 합니다. 거절할 수 없는 금액을 제안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흥미로운 전개였다. 더욱 흥분할 수밖에 없는 것은, 로봇 제조사가 김 회장의 인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는 거였다.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그 정황에, 제조사는 정설 입장만을 표명했다. “제품의 소유권은 온전히 사용자에게 귀속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회사는 권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로봇 상속’ 대응 팀을 꾸리고 있다는 소식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회장 이후 다른 많은 ‘인간·로봇’ 부부도 유산 상속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사회적으로 골치 아픈 논쟁 거리로 떠올랐다. 안드로이드와 결혼을 허용하는 것까진 열린 마음으로 허용한다 쳐도, 유산까지 상속하게 해야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로봇에게는 돈이 필요 없었다. 이 근본적인 질문에, 김 회장은 대답했다. “아내는 제가 죽은 뒤에도 목적을 상실하지 않습니다. 저와 함께한 나날을 추억하고 기리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목적이 될 것입니다. 그녀는 제가 죽은 뒤에도 영원히 저를 사랑할 것이고, 그렇다면 저는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는 돈이 필요한 것입니다. 가끔은 저를 생각하며 울어주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영 이해할 수 없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과연 법적으로 가능할까? 그것은 김 회장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김 회장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중에는 여론전도 있었는데, 의외로 그에게는 명분이 있었다. 사랑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에게는 늘 편이 많은 법이었다. “낭만적이긴 하지.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 저렇게까지 하니 말이야.”
결과적으로 김 회장은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거기서 그치질 않았다. 사람들이 예상했듯 ‘눈먼 돈’이 되지 않게 하려는 대비를 해나갔다. 제조사와 몇 번이나 미팅했고, 최고 전문가를 꾸려 몇 중의 안전장치도 만들고, 재산 사용의 제한도 설정했다. 그를 위해 국회에서 ‘로봇 배우자 상속법’이 새로 발의될 정도였다. 그의 이런 행동들은 전 세계에 있던 많은 ‘인간·로봇’ 부부들의 지지를 받았다. 누군가는 큰 틀에서 이 사건을 이렇게 평가했다. “어쩌면 김 회장은 역사책에 실릴지도 모르겠네. 먼 미래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동등해지는 시대가 혹시 온다면 말이야.”
김 회장은 몇 년 뒤 사망했고, 실제로 그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빛나’가 상속했다. 사람들은 로봇이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쓸지 무척 궁금해 했지만 ‘빛나’는 대중 앞에 나서질 않았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망은 그녀의 잠수를 허락하지 않았다. 일명 ‘빛나 헌터’들이 전 세계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기업 규모의 팀도 여럿 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졌다. 그녀를 찾아내 조종할 수만 있다면, 역사상 최고의 로또일 테니까. 아무리 김 회장이 안전 장치를 마련해 놨다 해도, 그래 봐야 로봇일 테니까. 로봇은 결국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다만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빛나’는 단순히 로봇이 아니었다. 그녀의 뇌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뇌였다. 사람들은 꿈에도 몰랐다. 영생을 꿈꾸는 권력자가 어떤 방법까지 쓸 수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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