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값에 구독 유인해 놓고... 고객 늘자 줄줄이 가격 올렸다
전 세계 기업들이 클라우드(가상 서버)와 구독형 소프트웨어(Saas)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시장을 장악한 빅테크들이 구독료를 잇따라 올리고 있다. 구독형 소프트웨어는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유지·보수가 필요한 자체 소프트웨어보다 초기 투자 비용이 낮고 관리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일단 구독형 소프트웨어로 전환할 경우 빅테크가 가격을 올리면 기업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경우, 소비자는 구독을 취소하면 그만이지만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당장 대체재를 찾거나 자체 소프트웨어로 바꾸는 게 쉽지 않다. 테크 업계에서는 물가 상승과 더불어 빅테크들의 인공지능(AI) 군비 경쟁에 투입되는 개발·투자 비용이 소프트웨어 구독 기업들에 전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 이상 가격 인상 도미노
마이크로소프트(MS)는 내년 2월부터 한국의 클라우드 제품 가격을 8%, PC에 직접 설치하는 소프트웨어 가격을 10% 인상한다고 밝혔다. MS는 “전 세계적으로 클라우드 가격을 미국 달러에 맞춰 조정하는 새로운 가격 정책”이라고 했다. MS는 지난해에도 ‘마이크로소프트365′ ‘오피스 365′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가격을 8~25% 올렸다. 구글은 지난 3월 협업 소프트웨어인 ‘워크스페이스’의 월간 구독료를 20% 인상했다. 세일스포스는 지난 8월부터 클라우드 등 제품 전반에 걸쳐 가격을 9% 인상했고, 어도비도 11월부터 주요 제품 가격을 10% 정도 인상했다. SAP 제품 가격도 내년부터 5% 인상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10대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 업체 가운데 4곳이 가격을 10~30% 올렸다.
테크 업계에서는 지금까지 빅테크들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소프트웨어를 배포하면서 구독자 늘리기에 사활을 걸었지만 사용자 수가 어느 궤도에 오르자 가격을 올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기업들의 구독형 소프트웨어 도입이 급격히 증가했다.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 기업 상당수가 클라우드와 구독형 소프트웨어 전환을 마무리한 상황에서 시장점유율 경쟁이 어느 정도 정리됐다고 판단하고 본격적으로 수익 창출에 나선 것이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구독형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면 다른 빅테크로의 전환이 쉽지 않고, 만약 전환하더라도 직원들의 교육 같은 문제까지 해결해야 한다”면서 “일단 한번 발을 디디면 빠져나올 수 없는 늪 같은 구조”라고 했다.
◇생성형 AI가 구독료 인상 영향 줬나
데이터 분석 업체 버티스에 따르면, 직원 1인당 연간 지출하는 구독형 소프트웨어 비용은 지난해 6220 달러(약 811만원)에서 올해 7900달러로 27% 증가했다. 가트너는 “앞으로 몇 년 내 20대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 제공 업체 중 16곳이 가격을 25% 이상 인상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업들은 보통 여러 종류의 소프트웨어를 구독하기 때문에 지출 비용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빅테크들은 가격 인상의 이유로 인플레이션 등을 꼽고 있다. 하지만 테크 업계에서는 AI 열풍이 구독료 인상을 부추긴다고 분석한다. 빅테크들은 클라우드나 소프트웨어에 생성형 AI를 붙여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세일스포스는 가격 인상을 발표하면서 생성형 AI 기능을 추가했고, MS는 구독형 소프트웨어와 협업 도구에 AI 비서 ‘코파일럿’을 탑재했다. 생성형 AI를 자체 개발한 빅테크의 경우 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고 있고, 오픈AI의 챗GPT 등 다른 회사의 AI를 사용하는 것 역시 추가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늘어난 개발·투자 비용이 결국 소비자인 기업에 전가된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AI 기능이 늘어날수록 기업에 청구되는 비용도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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