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학벌 집착 속에 허망하게 사라진 300조원
저출생 예산으로 들어간 300조는 부질없는 돈잔치로 끝났는가
#단상 1 : 12월 18일 공판에 출석한 조국 전 장관 부인 정경심씨는 학교 폭력을 당했던 아들을 “살리는 데 주력”했을 뿐이었다고 울먹였다. 자신이 교수로 있었던 동양대 방학 프로그램에 참여시킨 아들에게 상장, 봉사활동 확인서를 셀프 발급했던 것이나, 남편이 교수였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증명서를 친구인 담당 교수에게 요청해(즉 남편 ‘빽’ + 지인 찬스) 발급 받은 것 등이 다 ‘아들 살리려고 한 일’이라는 해명이었다. 본인들이 교수로 재직하는 대학 명의로 상장, 표창장, 인턴 활동 증명서 등을 위조해서 자식들에게 수여하는 건 공정한 입시 경쟁을 방해하는 행위라는 인식이 없었던 이 부부의 양심과 상식 결여에 대해서는 수년간 많이 지적되었다.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해본다.
정경심씨는 왜,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심약해서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었던 아들을 굳이, 반드시, 많은 학습량을 요구하는 곳인 로스쿨에 보내려 한 걸까. 정경심, 조국 부부는 딸 아들의 앞길을 위한 대책으로 반칙과 불법을 동원해 의전원, 로스쿨 졸업장 등 전문직 자격증을 안겨 주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생각해본 적 없었을까.
#단상 2 : 시내 중심가에 있는 유서 깊은 여학교 앞을 친구들과 지나가고 있었다. 일행 중 그 여고를 졸업한 친구가 모교를 가리키며, “지금은 자사고가 돼서 좋은 학생들이 많이 들어온대”라고 말했다. 이럴 때 그냥 못 넘어가는 성격인 나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나. 성적 높은 애들은 좋은 학생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학생인가?” 라고 태클을 걸었다. 또 한번은 중고생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애들이 공부만 들이파도록 악랄하게 들볶지 않고 ‘방치한다’며 불평하는 친구들에게 “학교가 공부 잘하는 애들만 위해 존재하는 곳은 아니잖아. 명문대 안 갈 아이들이 명문대 갈 아이들 들러리 서는 곳도 아니고”라고 딴지를 건 적도 있다.
#단상 3 : 대학생 딸이 해외 학점 교환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간다고 자랑하는 친구가 있었다. 어느 대학에 그런 프로그램이 있나 궁금해서 학교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인서울이야. 대학 이름은 말하기 싫어”라고 했다. 친구는 2~3년 후에 졸업한 딸이 대기업에 취업했다고 자랑하는 자리에서도 끝내 대학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아직도 마음에 수용이 안 돼서 말을 못하겠다”는 게 이유였다.
아들이 지방 대학 나왔고 지금은 이발사라고 페이스북에서 노상 떠드는 나로서는 누구나 부러워할 대기업 취업을 하고도 출신 대학이 명문대가 아니라 못 밝히는 그런 태도가 이해가 안 된다. 그러나 ‘스카이가 아니면 창피해서 말하기도 싫다’는 우리 세대 부모들 마인드가 자녀들한테 영향을 줬고, 그래서 이 아이들은 일류 - 명문 - 엘리트로 살 실력이 안되면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으려 한다는 것, 그래서 이 나라는 인구 소멸 위기 저출산 국가가 됐다는 사실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K 저출산의 불편한 진실’(타임라인)에서 저자 최해범은 자가당착의 K-평등주의 세계관이야말로 오늘날 대한민국 저출산의 본질적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인에게 평등주의는 어느 학교를 나오든 어떤 직업을 가지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고가 아니다. 내 새끼도 남들처럼 서울대 가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 가져야 한다는 위신 추구와 출세 욕망이다. 지난 15년간 저출산 예산으로 들이부은 약 300조원은 어쩌면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주변의 평판과 비교하는 위계와 서열에 민감한 사회”에서 돈과 학벌에 대한 집착과 경쟁만 치열해지는 가운데 허망한 돈잔치로 끝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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