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는 사도 60세는 못산다고? 호텔 회원권의 비밀

김아진 기자 2023. 12. 2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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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수십년 된 호텔관행… 안전문제? 실상은 ‘물관리’
게티이미지 뱅크

“60세 이상은 안 되세요.”

최근 오래 몸담은 직장을 그만둔 A씨는 고상한 노후를 즐기려고 호텔 피트니스 회원권을 사려다가 ‘빈정’이 상했다.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아도 조건이 안 돼서 구매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서다.

“말이 되냐고요. 60 넘으면 호텔에서 운동도 못 하나요. 평생 일한 나에게 셀프 선물을 하려고 한 건데, 너무 화가 납니다. 지금 시대에 60이 노인이냔 말이에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이라도 넣어야 될 판이에요.”

A씨는 호텔 측에 강하게 항의했지만 “죄송합니다. 호텔 정책이라서요”라는 말만 들었다. 다른 호텔은 신체 검진을 받아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면 심사를 해보겠다는 입장이었다. 굴욕적이었지만 참았다. 하지만 그 호텔에서도 퇴짜를 맞았다. 이유도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떤 호텔은 두 살짜리도 회원으로 받더라고요. 60세는 돈이 있어도 안 되고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 아닌가요?”

신라, 하얏트, 반얀트리, 메리어트 등 서울 대부분의 특급 호텔이 60세 이상은 회원으로 받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수십 년 된 우리나라만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호텔 측에서 내세우는 표면적 이유는 “안전상의 우려”다. 노인이 헬스클럽, 수영장, 사우나 등을 이용하다가 심장, 뇌, 혈관 등의 문제로 사고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전에 이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핑계라는 게 업계 분위기다. 수십 년 전이야 평균 수명도 낮았고 60세를 노인이라고 불렀지만, 노인 연령을 70세로 상향해야 한다는 논의가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는 마당에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회원권 거래 업계에서는 “결국 물 관리 때문 아니겠냐”고 했다. 20, 30, 40대 잘나가는 젊은 부호층을 상대로 장사하려는 것이란 얘기다. 10대 회원 수도 상당하다. 일부 호텔은 키즈클럽 등을 만들어 어린이 회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울의 특급호텔 회원권은 수억원,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연회비도 수백만~수천만원이다. 그러나 돈 많은 젊은 층에서는 부의 상징이라 불티나게 거래된다. 덩달아 회원권 가격도 매년 올라간다. 업계 관계자는 “나이 많은 분들이 헬스장이나 수영장 등에서 하루종일 죽치고 있으면 호텔에 컴플레인(불만)이 많이 들어온다”며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했어도 연령 제한을 풀지 않는 이유”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래서 서울의 특급호텔 95%가 60세 이상은 안 받는다고 보면 된다”며 “건강검진 결과서를 넣으라는 곳도 있지만 사전 서류 심사에서 탈락시킨다”고 했다. 이 때문에 회원권 거래 업체들도 당혹스러운 일을 자주 겪는다고 했다. “60 넘으신 분들은 기분 나쁘죠. 그래서 난리를 치는데, 호텔에서는 ‘잘 좀 달래달라’ ‘항의 안 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저희도 중간에서 너무 힘들어요.”

20년 전에 한 호텔 회원권을 구입한 뒤 80세에 가까워진 B씨도 이런 호텔 정책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회원을 유지하고 있다. 호텔 이용을 잘 못하지만 매년 1000만원에 가까운 연회비를 낸다. 팔면 다시는 회원권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B씨는 “연령 제한이 없다면 팔았다가 필요할 때 사면 되지만, 그게 안 된다고 하니 자식들도 그냥 유지하라고 하더라. 돈은 돈대로 들고 서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보탰다. “내 나이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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