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성탄 특선
“오늘은 일 년 중 가장 고요한 도시를 만날 수 있는 날이다. 새벽 1시, 하나둘 꺼져 가던 불빛도 보이지 않고 거리의 사람들이 사라질 때-서울은 고장 난 멜로디 카드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김애란 단편 소설 ‘성탄특선’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눈 내리는 성탄 전야, 빈방을 찾아 헤매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사귀기 시작한 후 네 번째 맞는 크리스마스. 빠듯한 집안 형편 때문에 갖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커플은 겨우 둘 다 번듯한 직장인이 되어 처음으로 다른 연인들처럼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려 합니다. 그러나 성탄 전날 서울 시내 웬만한 숙소에서 묵으려면 몇 달 전부터 예약해야 한다는 걸 몰랐던 이들은 결국 계획을 포기하게 되지요.
성탄 전야에 머물 곳을 찾지 못한 커플이 어디 이들뿐이던가요?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성모 마리아와 요셉의 이야기가 연인들의 사연에 겹쳐집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는 이가 세상에 온 날이 상업주의에 물든 세태를 담담하게 그려낸 소설입니다.
“늘 그렇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냈다.” 이는 Books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배경은 성탄 무렵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 계도라는 명분 아래 미혼모들을 학대해 온 수녀원의 악행을 목도한 평범한 사내가 가톨릭 재단 학교에 다니는 딸들의 안위를 위해 이를 묵인할지, 아니면 정의를 실현할지 갈등하며 겪는 마음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과 크리스마스 정신을 곱씹어 보게 하는 이야기. ‘성탄 특선’으로 독자 여러분께 이 두 편의 소설을 권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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