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우주, 마치 인류 탄생을 위해 설계된 것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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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도를 아십니까'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물음이다.
진지한 과학으론 취급되지 않는 지적설계론(우주와 자연을 지적 존재가 설계했다는 이론)자의 주장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주의 인플레이션(팽창) 속도, 공간이 3차원이라는 것, 중성자와 양성자의 질량 비율, 강한 핵력과 전자기력의 강도 비율, 암흑 에너지의 밀도. 이처럼 우주의 각종 변수가 생명체에 유리한 쪽으로 맞춰진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을 '미세 조정(fine-tuning) 문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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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 경험이 세계 정한다는… ‘하향식 우주론’ 흥미롭게 풀어
◇시간의 기원/토마스 헤르토흐 지음·박병철 옮김/496쪽·3만2000원·RHK
마치 ‘도를 아십니까’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물음이다. 진지한 과학으론 취급되지 않는 지적설계론(우주와 자연을 지적 존재가 설계했다는 이론)자의 주장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질문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1942∼2018)이 1998년 ‘내 연구실에 들어올 의향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저자를 만나 던진 것이다. 저자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저자는 이후 20년 동안 호킹과 함께 연구했다. 호킹은 작고 직전 다중우주 관련 논문도 저자와 함께 썼다.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이론물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호킹과의 공동 연구를 소개하는 교양과학서다.
한 가지 설명은 이런 것이다. 방대한 공간에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는데, 우주마다 물리법칙이 다르다. 우리의 우주가 생명 친화적인 이유는 우리가 그런 우주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생명 친화적이지 않은 다른 수많은 우주에는 우주를 고민할 생명체가 없다. 지적 생명체의 존재가 우주를 설명한다는 이른바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다. 1973년 처음 제기됐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 주장은 검증과 예측이 불가능하다. 과학의 영역인지 애매하다는 말이다.
책엔 호킹과 이 같은 질문에 직면하며 우주론을 발전시킨 이야기가 논쟁의 전사(前史)와 함께 소개된다. 호킹이 우주가 과거 특이점에서 시작됐을 것으로 예측한 이야기, 허수 시간을 도입하고 ‘무경계 가설’을 제안해 양자 중력의 세계로 진입하는 교두보를 마련한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호킹은 “영구적 인플레이션 추종자들과 다중우주 추종자들이 똘똘 뭉쳐서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하향식 우주론’을 제안한다. 이 우주론은 “깊은 양자적 수준에서 우주와 관찰자가 하나로 묶여 있다는 사실로부터 생명 친화적 특성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이다.
읽다 보면 현대 물리학에서 우리의 직관과 배치되는 많은 아이디어가 진지하게 연구된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관찰자의 역할은 무성하게 뻗어 있는 갈림길 중 대부분을 가지치기 하듯 잘라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관찰자가 경험한 세계만이 유일한 가지로 살아남는다.” 일본 만화 ‘나루토’에서 유리한 현실만을 고를 수 있는 닌자의 ‘이자나기’ 술법처럼 들리지 않는가?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을 건너뛰다 보면 천천히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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