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부서지는 가루눈(粉雪)과 무빙(霧氷), 홋카이도의 겨울 풍경[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미치도록 눈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얀 눈 위로 벌러덩 누워서 팔다리를 휘젓고 싶을 때가 있다. 펑펑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걷고 싶을 때가 있다. 일본 홋카이도의 중심부 깊은 산속 마을 도마무에서 압도적인 설경을 만났다. 새하얀 가루눈(분설·粉雪)이 하늘하늘 흩날리는 숲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 홋카이도에 내리는 눈
호시노(星野) 리조트 토마무는 홋카이도 삿포로시에서 동쪽으로 차로 2시간 거리인 토마무 산 정상 근처에 있다. 홋카이도 호시노 리조트 도마무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여름에는 구름이 바다처럼 흘러가는 운해를 볼 수 있어 ‘운카이(운해·雲海) 테라스’, 겨울에는 상고대 설경이 아름다워 ‘무효(무빙·霧氷) 테라스’라고 불린다.
곤돌라를 13분 정도 타고 가면 해발 1088m에 위치한 운카이 테라스에 도착한다. 여름에 이른 아침 오전 4시 반∼8시에 테라스에서 구름바다를 만날 확률은 약 40%라고 한다. 곤돌라에서 내리니 하얀 눈꽃, 얼음꽃, 서리꽃이 핀 세상이다. 산 정상에 설치된 긴 테이블인 클라우드 바(Cloud Bar), 절벽에 세워진 현수교인 ‘클라우드 워크 (Cloud Walk)’에서는 공중산책을 하면서 눈 쌓인 세상을 바라보는 스릴을 느낄 수 있다.
무효 테라스는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의 스키 슬로프 중 가장 긴 코스(4.2km)가 시작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실버벨 코스에서 더 타워 부근의 초심자 코스까지 이어진다. 토마무에는 총 29개의 슬로프가 있는데 총길이가 21.5km, 슬로프 총면적 123.9ha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20여 년 만에 스키를 신어본 기자도 초급 코스에 올랐다.
홋카이도의 스키장은 파우더 스노가 슬로프에 푹신하게 깔려 있어 넘어져도 크게 안 다친다는 설명에 도전해 보았다. 평지에서 연습을 마친 후 리프트를 탔다.
초급 코스라고 하는데도 900m나 되는 슬로프를 한 번만 넘어지고 내려오는 데 성공! 발을 최대한 A자로 모으고 속도를 줄이면서 타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나 온몸에 힘을 주고 탔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장비를 벗고 1층 카페에서 슬로프를 바라보며 마시는 주스가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토마무에는 골프장을 없애고 지은 목장도 있다. 목장에서 키운 소의 우유를 아침식사로 제공하고, 치즈와 초콜릿을 만들기도 한다. 목장의 고즈넉한 눈 풍경은 겨울철 액티비티 장소로도 그만이다. 스노모빌이나 버기카를 타고 눈밭을 달리다 보면 하얀 세상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잠시 탈것에서 내려 두껍게 쌓인 파우더 스노 위로 풍덩하고 몸을 던진다. 멜로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낭만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 물의 교회와 아이스빌리지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82)는 빛과 바람, 물과 같은 자연을 그대로 살린 종교 건축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만든 종교 건축으로는 오사카에 있는 ‘빛의 교회’와 함께 도마무에 있는 ‘물의 교회(Chapel on the Water)’가 있다. 또한 홋카이도 붓다의 언덕에 콘크리트로 만든 ‘두대불전(頭大佛殿)’을 짓기도 했다.
1988년 지어진 ‘물의 교회’는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 안에 있는데 매일 오후 8시 반에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눈이 수북이 쌓여 있지만, 주변에 흐르는 작은 시냇물 계곡에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물의 교회는 정면으로 들어가지 않고, 뒤쪽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계단을 타고 빙글빙글 돌면서 들어가도록 돼 있다.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흘러가는 것처럼 사방이 십자가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둘러싸여 있는 연못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물의 교회’에 접근하도록 한 설계다.
계단을 통해 내려오니 물의 교회 내부로 입장하게 된다. 정면에는 대형 유리창이 있고, 창틀이 십자가 모양을 이루고 있다.
창밖에는 계곡물을 끌어다가 만든 인공연못이 있고, 그 위에 또 철제 십자가가 서 있다. 추운 겨울이라 연못의 물은 얼어붙었고, 눈이 쌓여 있었다.
십자가 뒤편으로는 까만 밤하늘과 함께 키 큰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 위로 에메랄드빛으로 보이는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다. 실내 조명을 끄니, 창밖으로 펼쳐지는 십자가와 숲의 풍경이 또렷이 살아난다. 순간적으로 ‘헉!’ 하는 감탄사가 나지막이 흘러나온다. 소름이 끼치는 적막 속에서 너무나 신성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건축과 빛만으로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다니….
일본인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신사에서 건강하라고 소원을 빌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고, 장례식은 절에서 한다고 한다. ‘물의 교회’도 결혼식 장소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도마무(홋카이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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