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 저사양 반도체도 규제… 中, 희토류 맞불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2023. 12. 23.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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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첨단 반도체 對中수출 규제 이어
구형 반도체 겨냥 “수급 실태 조사”
中 ‘희토류 가공기술 수출금지’ 반격
패권 갈등 격화 韓기업 영향 주시

반도체와 핵심 광물 희토류의 공급망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최신식 첨단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규제해 온 미국이 21일(현지 시간) 중국산 저가 범용 반도체까지 규제할 뜻을 밝히자 중국 또한 전략물자인 희토류의 가공 기술 수출을 금지하겠다며 ‘맞불’을 놨다. 미국과 중국에 모두 진출해 있는 한국 반도체 기업 또한 어떤 식으로든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 상무부는 이날 “다음 달부터 미 기업들이 범용 반도체를 어떻게 조달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며 자동차, 항공우주, 방산 등 첨단 산업 분야에 속한 100여 개 기업의 범용 반도체 수급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또한 “중국이 범용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면서 미 기업이 (해당) 시장에서 경쟁하지 못하도록 하는 우려스러운 징후를 확인했다”며 “미 범용 반도체 공급망을 위협하는 외국 정부의 비(非)시장적 행동에 대처하는 것은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미국의 첨단 반도체 규제로 해당 시장에 진입할 길이 막히자 구형 범용 반도체 시장에 집중하며 시장 점유율을 늘렸다. 이에 조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 또한 블룸버그통신에 범용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제재에 “관세나 기타 무역 수단이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미 기업이 수입하는 중국산 범용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같은 날 중국 상무부와 과학기술부는 희토류의 제조 및 정련 기술 수출을 제한하는 ‘중국 수출금지·제한 목록’ 개정판을 발표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의 약 60%, 희토류 가공 및 정제 산업의 약 90%를 점유했다. 이번 조치로 특히 전기자동차, 의료기기, 무기 등에 쓰이는 희토류의 공급 및 가공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범용 반도체 실태 조사가 시작되면 미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 또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조사 범위와 계획이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미 정부와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범용 반도체
구형 설비로 제작하는 저성능 반도체. 통상 28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보다 큰 반도체를 뜻한다. 10나노급 이하 최신식 반도체보다 처리 속도가 느리나 세계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美 “中 보조금으로 반도체 장악 막아야”… 중국産에 관세 부과 시사

[美, 피아 구분 없는 경제전쟁]
격화되는 美-中 패권갈등
美 “中, 반도체 시장 왜곡 안돼"… 범용 반도체 공급망 수급실태 조사
中 “美, 수출통제 남용 타국기업 차별”… 희토류 광물 이어 가공기술까지 통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산 저가 범용 반도체에 칼을 빼들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규제로 최신식 반도체 시장에 진입할 길이 막힌 중국이 보조금,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자국산 범용 반도체 시장을 적극 육성하자 이 또한 좌시할 수 없다며 “미 주요 기업의 중국산 반도체 수급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중국산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올해 내내 갈륨, 게르마늄, 흑연 등 주요 광물 자원의 수출을 통제해 온 중국 또한 가만히 당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중국 또한 핵심 광물 자원을 가공하고 제련하는 기술의 수출까지 금했다. 미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18∼2021년 기준 미국의 중국산 희토류 수입 의존도는 74%에 달한다.

우리 정부와 반도체 업계 또한 양국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규정하는 범용 반도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제품까지 포함되는지에 따라 파장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사태의 후폭풍을 예단할 수 없는 만큼 민관 합동 차원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러몬도 “中 보조금으로 범용 반도체 장악”

미 상무부는 다음 달부터 국방과 자동차, 항공우주 등 주요 분야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범용 반도체 공급망을 조사하겠다고 21일(현지 시간) 밝혔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이번 조사는 선제적 대응을 위한 것”이라며 “관세 부과, 수출 통제, 동맹국과의 협력 등을 통해 미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의 보조금 지원이 전체 반도체 시장을 왜곡하도록 만들 수 없다”며 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범용 반도체는 구형 공정으로 제작된 반도체로, 업계에서는 통상 28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보다 큰 반도체를 뜻한다. 반도체는 회로의 선폭이 좁을수록 처리 속도가 빠르고 소비 전력이 감소한다. 이에 삼성전자 등 반도체 선도 기업은 최근 10나노급 이하 첨단 반도체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다만 전체적인 반도체 수요로만 보면 범용 반도체의 비중이 최신식 반도체보다 높다. 특히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의 95%가 범용 반도체라고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분석했다.

이에 중국 또한 ‘반도체 선도국’의 상징성은 떨어지지만 ‘매출 확대’가 용이한 범용 반도체 시장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당국 주도로 최소 1조 위안(약 182조 원) 이상의 반도체 지원 방안을 준비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범용 반도체에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SMIC 등 중국 반도체 기업 또한 2026년까지 범용 반도체 분야에서 26개 공장을 새로 짓기로 했다.

미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세계 범용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중국 비중은 현재 29%에서 2027년 33%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러몬도 장관이 “중국이 보조금을 받는 (범용) 반도체를 쏟아내 미 기업이 (해당) 반도체를 만들 수 없도록 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 中, 희토류 가공 기술까지 무기화

중국 상무부와 과학기술부 또한 21일 웹사이트에 희토류의 추출, 정제, 가공 등의 기술에 관한 수출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게재했다.

‘첨단산업의 쌀’로 불리는 희토류는 자동차, 의료기기, 무기 등 최첨단 제품에 들어가는 17가지 희귀 광물이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규제가 강화되자 올 8월 반도체 생산의 주요 재료인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로 맞섰다. 이달 1일부터는 2차전지 음극재의 핵심 재료인 흑연의 수출 또한 규제했다.

이 와중에 이제는 희토류 가공 기술까지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왕원빈(王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관련 질문을 받고 “기술 발전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일상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범용 반도체 실태 조사에는 반발했다. 미국 주재 중국대사관은 “미국이 수출 통제 조치를 남용해 외국 기업에 차별적이고 불공정한 대우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 한국, 영향에 촉각

국내 업계는 사태의 향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7nm 이하 최첨단 반도체 공정에 주력하고 있지만 일부 범용 반도체 공정 또한 보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범용 반도체는 사용처가 워낙 넓고 다양해 미국의 조사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공급망 파악 목적으로 끝날지, 제한적으로라도 규제 조치가 이뤄질지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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