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출산율 반등을 꿈꾸는 비합리적인 낙관
출산율도 0.78명으로 최저
부모 나이가 된 에코 세대
불행 대물림할까 두려움 커
가족의 중요성 회복한다면
저출산 흐름 바뀔 수도
조미현 금융부 기자
글로벌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3월 공개한 ‘세계 행복 조사 2023’에서 행복하다고 답한 한국인은 57%에 그쳤다. 세계 평균(73%)에 한참 못 미쳤다. 조사 대상 32개국 가운데 한국보다 행복 수준이 낮은 국가는 헝가리뿐이었다.
조사에 포함된 선진국의 행복 수준과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의 상관관계를 비교해 봤다. 행복 수준이 평균 이상인 호주(1.7명), 미국(1.7명), 프랑스(1.76명) 등은 출산율도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행복 수준이 평균 이하인 영국(1.54명), 독일(1.46명), 일본(1.26명) 등은 출산율이 낮았다. 한국은 0.78명으로 최하위였다. 행복하지 않은 국민이 많은 나라의 출산율이 낮은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행복은 주관적이지만, 과거 한국 사회에서 행복이란 대체로 부(富)와 성공을 의미했던 것 같다. 이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그토록 열심히 살아 온 이유일 것이다. 사회적 성공과 안정적인 밥벌이가 가족에 대한 최고의 기여라고 여기고 앞만 보며 달렸던 그들이다. 아이들이 눈 뜨기 전 출근하고, 잠든 뒤 퇴근해야 했다. 고단한 삶이 반복돼도 자녀에게 더 행복한 삶을 물려주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꽉 물었을 테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70%가 넘는 대학 진학률 등은 베이비붐 세대의 땀과 눈물이 깃든 유산이다.
베이비붐 세대 자녀인 에코 세대(1979~1992년생)는 그런 부모를 보며 자랐다. 이제는 부모 나이가 된 에코 세대는 덕분에 경제적으로 과거보다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극한 경쟁에 지친 부모의 처진 어깨에 기대기 어려웠다. 가족과 정서적 허기를 충분히 채울 시간도 부족했다. 성급한 추론일 수 있지만, 자살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1위라는 오명은 가정의 중요성이 배제된 압축 성장의 어두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딩크족을 봐도 부모 세대가 감당한 부담을 자신까지 지고 싶지는 않다며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의 저출산 원인에 대한 여러 진단과 분석이 있지만, 에코 세대가 출산을 주저하는 건 가족 안에서 채 치유하지 못한 아픔을 내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작용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녀가 나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이 베이비붐 세대에서 에코 세대로 대물림되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품는다. 용기를 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에코 세대인 요새 부모들은 자녀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어린 시절 맞으면서 자랐지만, 제 아이는 체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모도 많다. 2021년 민법상 가정 내 체벌이 금지된 영향은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때리지 않고 말로 가르치는 게 자녀에게 행복한 삶을 물려주는 길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일각의 지적은 있지만 요즘 부모들이 아이 감정에 우선 공감해야 한다는 오은영 박사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 배워서라도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다. ‘진상’ 부모가 많아진 현상도 어쩌면 바쁜 부모에게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어린 시절의 경험을 내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는 반작용일 수 있다. 물론 별도의 비판이 마땅히 필요하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다.
충분하진 않아도 사회적으로 육아휴직과 같은 가족 친화적 제도가 마련되는 데 공감대는 더 커지고 있다. 워킹맘 비중은 최근 60%를 넘어섰다. 경쟁보다 삶과 일의 균형을 지향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들도 많아졌다. 육아휴직을 하거나 전업에 나서는 아빠들이 이제는 크게 어색하지 않다.
에코 세대의 이런 노력으로 우리 아이들은 가족의 소중함을 배울 것이다. 아이들이 가정을 꾸릴 때는 부모가 준 사랑과 함께 보낸 시간이 엄청난 자원이 될 것이다. 객관적인 근거나 수치를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이유로 미래에 출산율이 반등할 수도 있을 것이란 낙관적인 기대가 문득 들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상상하며 선물을 준비하고 있을 나와 같은 에코 세대 부모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실의 막연한 좌절감에도 온 마음을 다해 자녀를 키우려고 노력하는 우리가 아이의 행복한 삶은 물론 사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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