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의 생이 남긴 미술사의 큰 업적
이원규 지음
한길사
“후일에 조선의 부르크하르트가 나오고 빈켈만이 나와 조선미술사를 쓴다면 반드시 이 반가상에서 시대적 모뉴먼트를 발견할 줄 믿는 바다.” 지금처럼 국보로 지정되고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나란히 놓이기 한참 전인 1931년, 각각 ‘이왕가박물관’과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비교하며 예술적 가치를 논한 글이다.
글쓴이는 2년 뒤 20대 나이로 개성부립박물관장에 취임하는 우현 고유섭(1905~1944). 조선의 미를 파고든 그의 생은 병으로 별세하기까지 39년에 그쳤지만, 이 책의 저자는 “100년을 산 학자보다 남긴 업적이 크다”고 전한다.
이 책은 한국 미술사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고유섭의 삶을 다룬 첫 평전. 가장 치중한 탑파 연구나 ‘분청사기’라는 명명을 비롯해 미술사에 남긴 영향은 물론이고 조선인으로 유일한 미학 전공자였던 경성제대 시절을 비롯해 학창 시절, 집안 내력, 교우 관계, 민족의식이나 인간적 면모가 드러나는 일화 등 지인들이 남긴 회고와 각종 자료에서 확인되는 삶의 자취를 세세하게 담아냈다. 다만 고유섭과 다른 이가 나눈 대화 등 저자가 상상으로 묘사한 대목도 종종 등장한다.
특히 신문과 잡지에 활발히 기고한 글들은 생전의 치열한 활동을 짐작하게 한다. 요즘과 문체가 달라 읽기 쉽진 않은데 평전에는 원문의 주요 대목을 풀이하거나 핵심을 간추려 소개해 놓았다.
여러 독립운동가의 전기를 쓴 저자는 고유섭과 같은 인천 출신. 인천문화재단의 요청으로 약전을 쓴 이후 그 진면목을 알려야 한단 생각에 다시 방대한 자료를 섭렵해 이 평전을 썼다고 한다. 그는 고유섭을 “짓밟힌 민족자존을 되찾기 위해 민족미술사를 홀로 개척해나간 선구자”이자 “가장 고독했던 문화독립운동가”로 표현한다. “한국 미술사의 할아버지는 위창(오세창)이고 아버지는 우현(고유섭)”이라는 유홍준의 말을 비롯해 후세의 평가와 비판적인 시선도 전한다. 고유섭의 저서는 대부분 사후에 출간됐는데, 그 원고가 전해진 과정 역시 눈물겹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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