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만찬이 된 편의점 식사
백성호 2023. 12. 23. 00:06
정강현 지음
인북
우리가 살며 겪는 감정은 얼마나 될까. 불쑥 치솟았다가, 그 파도에 휩쓸렸다가, 나도 모르게 나가떨어지는 게 인간의 감정이다. 저자는 그러한 감정에 하나씩 이름표를 붙인다. 머뭇거림, 시큰거림, 애통함, 가난함, 자만함, 막막함, 허무함, 무참함, 아련함 등 누구라도 공감할 서른 개 감정이다. 그런 뒤 그 감정의 현장을 관찰자의 눈으로, 수필가의 심정으로 걸어 들어가며 기록한 사색의 산문집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감정도서관』이란 제목에 공감이 간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 그 감정들을 세로로, 혹은 가로로 차곡차곡 정리하다 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마음의 움직임이 더 또렷하게 보이지 않을까. 허무한 시간의 감정 속에도 뭔가 반짝이는 것이 있지 않을까. 그런 따듯한 기대가 책의 전편에 흐른다. 그 덕에 읽는 이의 마음에도 온기가 올라온다.
삶의 막바지에 선 아버지를 만나러 저자는 병원에 간다. 싱거운 병원 밥에 지친 아버지는 병원 로비 편의점에 가자고 한다. 인스턴트 비빔밥과 컵라면, 그리고 삼각김밥.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찬이었다. 그 기억을 불러내며 저자는 ‘후회’를 풀어낸다. 장어탕을 대접하지 못한 아쉬움과 서러움을 이야기하지만, 독자는 그 뒤에서 그리움을 읽는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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