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의 혁명 부른 러시아산 ‘발명품’
아이작 버틀러 지음
윤철희 옮김
전종혁 감수
에포크
말런 브랜도, 제임스 딘,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더스틴 호프만….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쟁쟁한 이들 세계적인 스타들을 우리는 ‘메소드(Method) 배우’라고 칭한다.
메소드는 간단히 말하면 어떤 배우가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와 하나가 된 상태를 뜻하는 용어다. 지금에 와서야 ‘배우라면 누구나 메소드 연기를 하는 게 너무 당연한 것 아니냐’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사실 메소드는 혁명적인 연기론에 바탕을 둔 한 세기 전의 놀라운 ‘발명품’이다. 그것도 원조가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다. 아이작 버틀러가 지은 책 『메소드』는 그야말로 메소드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메소드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공연, 배우, 연출 등을 망라하는 여러 분야의 방대한 스토리와 역사, 철학을 포괄하는 대작이다.
메소드의 조상 격인 이른바 ‘시스템’을 고안한 사람은 배우이자 연출가였던 스타니슬랍스키다. 그는 배우들이 상투적인 웅변 스타일의 연기에서 벗어나 페레지바니예(경험하기)를 통한 연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레지바니예는 캐릭터가 처한 상상 속 현실에 철저히 녹아들어 캐릭터가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배우가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 때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이런 연기를 위해 ‘시스템’이라는 테크닉을 개발하고 이를 연극에 접목시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극단 단원이었던 리차드 볼레슬랍스키와 마리야 우스펜스카야 등은 투어 후 미국에 남아 아메리칸 래버러토리 시어터를 설립하고 ‘시스템’을 미국에 전파했다. 이곳에서 ‘시스템’을 배웠던 리 스트라스버그와 해럴드 클러먼은 이를 미국 연극에 적용하기 위한 그들만의 방법인 메소드라는 연기 테크닉을 개발했다.
뉴욕 브로드웨이를 넘어 서부 할리우드까지 메소드에 열광하는 시대가 열렸다. 엘리아 카잔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워터 프론트’ 등 히트작들을 내면서 할리우드에 메소드를 뿌리내리게 했다. 말런 브랜도를 통해 미국의 반항하는 청년을 상징하던 메소드는 위험한 매력의 소유자 제임스 딘이 만들어 낸 1950년대 새로운 청춘 문화와 엮이면서 또 다른 형태의 반항 스타일을 창조했다.
로버트 드니로는 자신의 배역을 준비하면서 독서와 관련자 인터뷰를 하고 역할에 필요한 훈련이나 습관을 익혔다. 지금은 누구나 하는 것들이지만 당시엔 생소한 준비 과정이었다.
버틀러의 책 『메소드』는 연기의 발전을 논한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라 방대한 연기사(史)를 소설처럼 엮은 대서사시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어떻게 하면 더 실감 나는 연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의 장면들이 전편에 연출된다. 이 한 권의 책만 읽어도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연기의 세계에 풍덩 빠질 수 있을 정도로 『메소드』는 내용이 풍성하고 드라마틱하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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