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 넥스트 크리스마스

이지혜 기자 2023. 12. 2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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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디터 정선영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몇 해 전부터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꼭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한다.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집 고양이들을 위해서다.

트리를 장식하면 고양이들은 제 몸길이보다 조금 더 큰 장식을 앞발로 툭툭 치며 관심을 보인다. 그러다 장식이 떨어져 나오면 바닥에 굴리기도 한다. 일 년에 단 몇 번, 이 모습을 보자고 트리를 꺼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올해는 바쁘다는 핑계로 몇 주 본가에 가지 않았더니 이미 트리 장식이 끝나있었다. 이제는 13살이 넘은 나이 든 고양이들 관심도 며칠 새 끝났는지 시큰둥하다.

크리스마스라고 특별할 게 없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걸 알았다. 내게 크리스마스 영화는 <나 홀로 집에>나 <러브 액츄얼리>가 아닌 <다이하드>다. <다이하드 1>의 공간적 배경이 나카토미 빌딩이라는 건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시간적 배경이 크리스마스라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다. 그렇다, 나는 애초에 아기자기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다만 올 크리스마스는 나름 특별함을 더해보고자 9월 말부터 캐롤 연습을 시작했다. 칼럼에도 밝힌 바 있듯이, 왬!의 ‘라스트 크리스마스’에 도전했다. 기타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G-Em-Am7-D7 코드를 숱하게 반복했다. 마의 F코드가 없다는 점에 나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로부터 연습 4개월이 다 된 지금, 나는 위 코드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다. 단 매우 단순한 정박자 스트로크 주법으로만 가능하다. 욕심을 냈던 아르페지오와 팜 뮤트 주법까지 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칼럼 시작부터 환호성을 질렀을 테다.

아르페지오 주법을 연습하면서 나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따로 사용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깨닫고 있다. 손가락 하나하나에 신경 쓰지 않으면 기타 줄을 튕기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너무 신경 쓰면 손가락이 뻣뻣해져 소리가 엉망이 되고 손가락도 엉키고 만다.

오른 손가락 하나하나 움직임에 신경 쓰다 보니, 스트로크 주법으로 연주할 때는 잘 옮겨가던 왼손 코드도 제 박자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물론 코드 자체도 잘못 짚곤 했다. 이제는 ‘라스트 크리스마스’ 코드는 눈 감고도 짚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어쩔 수 없다. 넥스트 크리스마스를 기약하는 수밖에. 기타를 치며 내가 깨달은 게 있다면 그래도 오늘보다 내일,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다는 것이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왬!의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연주해 고양이들에게 들려주려 한다. 나이 든 고양이들에게도 매우 낯선 모습이 되겠다. 부디 고양이들이 도망 가지 않아야 할 텐데.

|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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