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위스키 뺨친 대만 카발란, BTS도 ‘캬~’
[왕사부의 중식만담] 대만·중국 위스키의 부상
지난 4월 대만에 다녀왔다. 코로나 이후 중식 시장의 변화를 살피려는 목적이었다. 내친김에 섬 북동쪽에 있는 카발란 본거지를 찾아갔다. 증류소는 이란현 위안산향(宜蘭縣 員山鄉)에 있다. 카발란은 인근에 살던 원주민을 부르는 말이다. 2006년, 난공사 13년 끝에 장웨이수이(蔣渭水·이란현 출신 사회운동가)고속도로가 뚫리기 전까지는 닿기 힘든 고장이었다. 높디높은 쉐산(雪山)산맥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에는 3000m가 넘는 산이 54개 있는데 위산(玉山 3952m)이 가장 높고 쉐산(3886m)이 두 번째다. 백두산이 2744m이니 그 높이를 짐작할 수 있다. 54㎞ 고속도로 중간에 대만에서 가장 긴 12.9㎞짜리 터널이 있다. 험준한 산악을 관통하는 쉐산터널이다.
터널을 빠져나가니 곧 태평양이 눈에 들어왔다. 대만 동부는 바다와 산맥이 바짝 붙어있어 들판이 거의 없고 이란 일대 들이 가장 넓다. 증류소는 쉐산산맥과 중양산맥 사이 협곡을 빠져나온 란양강(蘭陽溪) 옆에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이쪽에서 저쪽 끝이 아득한데 예술성 넘치는 건물들 덕에 공장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열대 지역에서 성공한 위스키는 카발란이 처음이다. 다들 이렇게 덥고 습한 데서 무슨 위스키냐고 할 때 리톈차이(李添財) 대표가 밀어붙였다. 아홉 달 만에 공장을 짓고, 2006년 첫 증류액을 만들고, 2008년에 첫 제품을 내놨다.
2010년 1월 25일 스코틀랜드 시인 번스를 추모하는 축제(Burns Night) 중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국제 와인&스피릿 경쟁부문에서 카발란이 최고점을 받은 것. 2년 숙성 제품을 불법이라고 여기는 스코틀랜드에서는 경악스러운 결과였다. 미국 나파밸리 포도주가 프랑스산을 제친 ‘파리의 심판’에 버금가는 일이었다. 카발란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대만담배주류공사(TTL)의 난터우 증류소도 만만찮다. 2008년부터 생산하는 싱글 몰트 오마르(OMAR) 역시 젊고 대담하다.
중국 본토 위스키 시장은 세계 주류산업의 과녁이 됐다. 2016년을 전후해 글로벌 자본과 중국 기업들이 진입하며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뉴스를 보니 2023년 10월 현재 중국 위스키 양조장은 43개다. 대만과 위도가 비슷한 쓰촨·푸젠·윈난성 일대에 많다. 백주 생산 거점이기도 한 쓰촨이 그 중심이다. 그중 뎬첸촨(滇黔川) 지역에만 11개의 증류소가 있다. 세계 2위 주류자본인 프랑스 페르노리카의 러산시 어메이산(峨眉山) 증류소는 2021년 가동에 들어갔다. 며칠 전인 12월 12일 첫 제품인 ‘뎨촨(叠川·첩천)’을 내놨다. 공장이 첩첩산중(叠) 강(川)을 낀 위치에 자리 잡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바이룬(百潤)·루저우라오자오(瀘州老窖)·어메이산가오차오(峨眉山高橋)·후이란(回瀾)증류소 등도 제품을 내놨거나 준비 중이다. 세계 1위 주류자본인 영국 디아지오(수정방 최대주주)는 윈난성 해발 2100m의 얼위안(洱源)현에 증류소를 세워 3년 뒤면 제품을 선보인다.
중국의 목표는 ‘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다운’ 위스키다. 110년 역사를 가진 ‘칭다오위스키’는 백두산 등 중국 북부에서 자라는 몽골참나무를 이용한다. 강렬하고 독특한 향이 나는데 목질이 단단해 술통 만들기가 어려운 나무다.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산 통보다 값이 몇 배 높다. 1400년 전통의 백주기업 양하주창도 히말라야 8000m 봉우리들을 상징하는 ‘14봉’을 만들어놓고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이달 초에 광저우를 돌아보니 변화하는 중국 주류 문화가 보였다. 이곳 역시 타이베이·베이징·상하이처럼 위스키 바가 쉽게 눈에 띄었다. 바이윈 국제공항 주류면세점에는 스코틀랜드산이지만 단일 위스키 브랜드 점포도 있다. 독주 시장에서 젊은 중산층의 기호가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거대시장에서 백주와 위스키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정리: 안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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