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성공·브렉시트… 동조의 ‘폭포 현상’

김수미 2023. 12. 22.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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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비슷한 사고 땐 큰 실수 우려
홀로코스트·공산주의 등 단적 예
집단·급진적 동조 사회 움직임 커
같은 성향끼리 토론 뒤 ‘집단 극화’
다른 의견 들으려면 보상 등 필요

동조하기/캐스 R 선스타인/고기탁 옮김/열린책들/1만8000원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임금이 나체로 거리를 돌아다니는데도 신하들은 모두 “임금님의 옷이 멋지다”고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옷’이라는 사기꾼들의 말에 임금과 신하 모두 진실을 말하지 못한 것이다. 개인이 집단에서 다른 의견이나 행동을 하지 못한 채 쉽게 동조(同調)하고 그로 인해 집단적 무지에 이르는 상황을 풍자했다.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넛지’의 공저자인 캐스 R 선스타인은 신간 ‘동조하기’에서 우리 모두가 또는 대다수가 동조하고 천편일률적으로 사고할 때 사회는 큰 실수를 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치적 극단주의는 ‘집단 극화’의 대표적 산물이다. 지난 8월 ‘대선 결과 뒤집기’ 혐의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찬반 시위자들이 취재진과 뒤섞인 모습, 오른쪽은 2017년 11월 국빈 방문 중이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연설을 앞두고 서울 국회 앞에서 충돌한 찬반 시위대. 연합뉴스
홀로코스트와 공산주의의 발흥, 테러 등은 동조의 힘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인터넷, 특히 소셜 미디어는 우리 삶에서 전에 없던 동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우리가 동조하는 이유는 (건강, 투자, 법률, 정치에 관한) 정보가 부족할 때 타인의 판단이 최선의 정보가 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평판에 신경 쓰기 때문이다.

정보가 부족한 사람들은 이민이나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인지 등을 판단하고자 할 때 자신감이 있고 일관된 주장을 펼치는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동조하기 쉽다. 문제는 자신이 명확한 증거를 가진 쉬운 문제조차 집단에 굴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흔히 동조자들은 침묵함으로써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려 하는 반면 반대자들은 자기만 생각하거나 반사회적인 인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오히려 동조자들이 혜택을 누리는 무임승차자이고 반대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이득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무비판적인 동조 현상은 거짓을 고착시키고 교조주의를 강화해 집단의 성과를 저하시킬 수 있다.

동조가 집단적이고 급진적으로 일어나면 대규모 사회 움직임이 일어나는데 이를 ‘폭포 현상’이라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성공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통과 등이 폭포 현상의 산물로 꼽힌다. 음원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횟수가 많은 노래를 선택하는 것, 가짜 뉴스가 들불처럼 번지는 등 우리 일상에는 정보적 폭포 현상이 만연하다.

폭포 현상 속에서는 각 구성원의 개인적인 정보가 집단에 반영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밝혔을 때 뒤따라올 반대에 직면하고 싶지 않아서 침묵한다. 이는 결국 구성원들이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무지한 상태 즉 ‘다원적 무지’로 귀결된다. 다원적 무지에 직면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견해를 가졌다고 오해할 수 있으며, 그들의 견해에 맞추어서 자신의 진술이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이런 자체 검열은 사회적 손실이 될 수 있다. 예컨대 공산주의 체제가 동유럽에서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무력 때문만이 아니라, 대다수 사람이 기존 정권을 지지한다는 잘못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캐스 R 선스타인/고기탁 옮김/열린책들/1만8000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 경우 극단적인 상태로 치닫기도 한다. 같은 성향을 가진 토론집단에서 구성원들은 토론이 시작되기 전보다 토론 후에 좀 더 극단적인 입장을 내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집단 극화’라고 한다. 기업의 징벌적 손해배상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토론 전보다 토론 후 더 많은 배상액을 산정하고, 국가지도자를 싫어하는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눈 후에 그 지도자를 더 싫어하게 된다.

정치적 극단주의는 집단 극화의 대표적 산물이다. 반목이나 민족적·국제적 갈등, 전쟁에도 집단극화가 작용한다. 서로 반목하는 집단은 구성원들끼리만 대화하면서 자신들의 분노를 부채질하고 증폭시키며 관련 사건에 대한 인상을 고착시킨다.

폭포 현상이나 집단 극화가 진행 중일 때는 개인은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이는 때로 집단이 재앙 수준의 실수를 저지르게 하거나 조직에 손해를 끼친다.

저자는 이를 막기 위해 집단과 다른 의견이나 정보를 내놓을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보상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대 목소리나 내부 고발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사람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서로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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