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의 미술과 시선] 좌표
성탄절이 다가온다. 연말의 흥분감이 더해져 괜스레 마음이 분주하다. 종교적 믿음을 떠나 이맘때면 늘 그랬던 것 같다. 곳곳을 밝힌 트리 장식, 동심과 함께하는 산타클로스, 감각을 콕 건드리는 디자인 상품, 가족애를 돋우는 특선영화 같은 게 12월 대중의 정서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일 거다.
기원을 따르자면, 중세 유럽 미술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 탄생의 이미지는 오늘날 격앙된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화가는 성서에 기반해 내용을 신성하게 재현했고 높은 신분의 후원자가 원하는 도상을 그려 넣으며 종교화의 무게감에 충실했다.
아기 예수에게 예배하는 동방박사의 모습은 특히 빈번한 주제로 회화에 등장했다. 플랑드르 화파 히에로니무스 보스도 그 장면을 세 폭 제단화로 묘사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림 분위기가 음습하여 기묘할 정도다. 비범하고 독창적인 예술가 자신의 개성이었을까? 당대 현실을 풍자하던 방식이 그랬던 걸까? 인류 사상 최악의 사망자를 낸 흑사병이 대륙 전역으로 번졌던 암울한 시기, 도사리던 불안과 징벌적 두려움에 떨었을 이들의 심상을 감지한 것일까?
그림 속 멀리 있는 화려한 성벽에 비해 남루하고 가난한 형색의 마구간, 숨어서 수탈과 압제의 기회만을 엿보는 통치자, 가운데서 무기를 겨누고 전면전 태세에 들어간 두 무리의 표현은 현대사의 이슈에도 비유적으로 맞물린다. 특히, 민간인 유혈이 그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은 마치 저 오백 년 전 작품 배경에 감도는 긴장과 전운에 겹쳐져 보인다. 글로벌 축제로 등극한 기념의 나날 한편에서도 누군가는 그와 무관한 양, 참혹한 운명의 하중을 견디며 결핍으로 채워진 생을 위태로이 지탱하고 서 있다는 말이다. 동시대를 사는 우리의 현 좌표는 어디쯤일까? 복잡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오정은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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