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부산호소인이라는 호소
배우 강동원이 인기 유튜브 채널인 피식대학에 출연해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야기를 하자 패널 중 이용주는 자신도 ‘부산인’이라 주장한다. 태어나 3세 때까지 부산에서 살았다는 그의 어색한 부산 방언에 모두가 그를 놀리며 ‘부산호소인’이라 부른다.
부산인 검증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블루베리스무디’를 영화 <친구>의 대사인 “니가 가라 하와이”와 같은 억양으로 읽는다든지, ‘이거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의 억양이 문장의 의미처럼 끝없이 올라가는 것, ‘2 /2 /e /e ’가 모두 다르게 발음되는 것 등이 있다. 부산 방언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쓰는가가 ‘찐부산인’과 ‘부산호소인’을 구분하는 방법인 셈이다.
억울하거나 딱한 사정을 남에게 간곡히 알린다는 뜻의 호소.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부산 방언을 잘 쓰지 못하는 이용주가 억울할 만도 하다 싶을 때, ‘호소인’이라는 말, 어디선가 많이 들어보았다. 2020년 박원순 성폭력 사건 당시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미투를 고발한 전 비서를 피해자가 아닌 피해호소인, 피해 호소 여성이라고 불렀다. 생소하지만 그럴듯하게 들리는 ‘피해호소인’이라는 말은 피해자의 호소를 도리어 배제하고 피해자다움의 잣대를 들이밀며 가해자를 보호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5항에 “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곧 ‘피해호소인’이라는 말은 법적으로 없다. 누군가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며 왜 형사피고인은 법적 판결이 나기도 전에 가해자가 되느냐고 말했다. 그렇다면 모든 피해자는 잠정적으로 무고죄를 저지를 사람들일까.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언어 자체에 이미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두서너 해가 지나 피해호소인에서 따 온 ‘○○호소인’이 하나의 ‘밈’이 되어 사회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앞서 말한 ‘부산호소인’은 ‘부산인’의 특성을 두고 경계를 지어 경계 바깥의 존재를 배제하며 부르는 말이다. 야구 경기에서 성적이 좋지 못한 선수를 ‘타자호소인’, ‘투수호소인’이라 부른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을 ‘윤핵관 호소인’으로 지칭했고,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올 5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두고 “북핵 대응 성과를 부풀리려다가 대한민국을 ‘핵 공유 호소인’으로 전락시키는 망신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호소인이 하는 호소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정할 수 없으면 무시되고 조롱당하기 십상이다.
언어는 인간의 창조성을 바탕으로 자의적으로 정해지더라도 그것이 정해지고 나면 사회적 약속으로 작동하며 생명을 얻는다. 불과 3년여 전 정치권에서 시작된 말이 지금은 상대를 희화화하는 수단으로, ○○다움을 강요하며 조금이라도 그 틀에 벗어나면 배타적으로 대하는 말이 되었다. 차별과 배제, 조롱과 비하의 말이 된 지금의 ○○호소인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옳을까. 우리 사회가 ‘호소’라는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 어떤 사회적 약속을 해야 누군가의 피해를 제대로 들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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