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간병 지옥

김민철 논설위원 2023. 12. 22.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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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6일 대구의 한 병원 외벽에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보호자는 코로나19 검사 음성(72시간 이내) 확인 후 병원 출입 가능' 안내문이 붙어 있다. 병원 측은 "상주하는 보호자 1인만 면회를 허용하며 PCR(유전자증폭) 검사 비용은 8만원 이상 소요된다"고 안내했다.환자 보호자가 '코로나19 PCR 우선 검사 대상자'에서 제외되면서 간병인도 병원에 가려면 사비를 내고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변경된 PCR 검사 정책 때문에 환자들은 너무 힘이 듭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오는 등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뉴스1
일러스트=이철원

1994년 9월 남해안 소도시에서 70대 노인이 90대 노모를 목 졸라 숨지게 한 사건을 취재한 일이 있다. 70대 노인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자신도 지병 악화로 노모를 모실 길이 막막해지자 수도권에 사는 자식 다섯을 차례로 찾아갔다. 그런데 모두 할머니를 모실 수 없다고 하자 아내 무덤 옆에서 노모 목을 조른 것이다. 넋이 나간 듯 “어머니를 더 이상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말만 중얼거리던 70대 노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벌써 30년 가까이 된 일인데 간병 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간병 지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집안에 간병이 필요한 노인이 생기면 시한폭탄을 안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환자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순번을 시작으로 형제자매 간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주변에 흔하다. 그다음 간병을 누가 할지, 이어서 간병비를 어떻게 분담할지를 놓고 분쟁이 생기지 않는 집이 적을 정도다.

▶요즘엔 하루 15만원을 줘도 좋은 간병인을 구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월 400만~500만원은 한 가족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병을 오래 끌면 수천만원이 들고 1년을 넘기면 예금은 물론 부동산까지 처분해야 한다. ‘간병 파산’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한 가족은 딸이 직장을 그만두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기로 했다고 한다. 이렇게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머니 명의 땅을 딸이 상속하기로 남매들이 합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구 10명 중 3명이 노인인 일본에서 ‘100세 시대’ 최대 리스크로 꼽히는 것이 간병 비용이다. 간병이 예고없이 갑자기 닥치고 간병이 시작되면 자산이 빠른 속도로 감소하기 때문에 대비하지 않으면 비극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오랜 간병 끝에 존속 살인을 저지르는 ‘간병 살인’이 해마다 40~50건 발생하고 있다. 요즘엔 특별한 뉴스 취급도 못 받을 만큼 흔한 일이 됐다고 한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정부가 ‘간병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간병 부담 경감 방안을 발표했다. 현재 전담 간호 인력이 환자를 24시간 돌보는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는 29%에 불과하다. 이를 확대하고 요양병원 간병비 지원 시범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문제는 막대한 비용이다. 요양병원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경우 연간 최대 15조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다. 간병 쓰나미는 이미 닥쳐 왔는데 대응은 너무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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