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간병 지옥
1994년 9월 남해안 소도시에서 70대 노인이 90대 노모를 목 졸라 숨지게 한 사건을 취재한 일이 있다. 70대 노인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자신도 지병 악화로 노모를 모실 길이 막막해지자 수도권에 사는 자식 다섯을 차례로 찾아갔다. 그런데 모두 할머니를 모실 수 없다고 하자 아내 무덤 옆에서 노모 목을 조른 것이다. 넋이 나간 듯 “어머니를 더 이상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말만 중얼거리던 70대 노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벌써 30년 가까이 된 일인데 간병 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간병 지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집안에 간병이 필요한 노인이 생기면 시한폭탄을 안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환자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순번을 시작으로 형제자매 간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주변에 흔하다. 그다음 간병을 누가 할지, 이어서 간병비를 어떻게 분담할지를 놓고 분쟁이 생기지 않는 집이 적을 정도다.
▶요즘엔 하루 15만원을 줘도 좋은 간병인을 구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월 400만~500만원은 한 가족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병을 오래 끌면 수천만원이 들고 1년을 넘기면 예금은 물론 부동산까지 처분해야 한다. ‘간병 파산’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한 가족은 딸이 직장을 그만두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기로 했다고 한다. 이렇게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머니 명의 땅을 딸이 상속하기로 남매들이 합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구 10명 중 3명이 노인인 일본에서 ‘100세 시대’ 최대 리스크로 꼽히는 것이 간병 비용이다. 간병이 예고없이 갑자기 닥치고 간병이 시작되면 자산이 빠른 속도로 감소하기 때문에 대비하지 않으면 비극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오랜 간병 끝에 존속 살인을 저지르는 ‘간병 살인’이 해마다 40~50건 발생하고 있다. 요즘엔 특별한 뉴스 취급도 못 받을 만큼 흔한 일이 됐다고 한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정부가 ‘간병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간병 부담 경감 방안을 발표했다. 현재 전담 간호 인력이 환자를 24시간 돌보는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는 29%에 불과하다. 이를 확대하고 요양병원 간병비 지원 시범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문제는 막대한 비용이다. 요양병원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경우 연간 최대 15조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다. 간병 쓰나미는 이미 닥쳐 왔는데 대응은 너무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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