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지연된 정의’ 형제복지원 국가배상
1975년 박정희 정권은 내무부 훈령 410호를 발표해 ‘부랑인’으로 지목되는 자를 강제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을 감금해 가혹행위를 가한 부산 형제복지원의 비극은 이렇게 탄생했다. 당시 정권은 동아일보 광고 사태, 긴급조치 9호 발표 등으로 들끓는 비판 여론을 무마해야 했다. ‘부랑아’라는 ‘공동의 적’이 만들어진 이유다. 기준은 불분명했다.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닌다는 이유로, 심지어 아이들도 고아처럼 보인다며 마구잡이로 끌려갔다. 경찰까지 동원됐다. 부랑인·구걸인 등을 수용해 거리를 깨끗하게 만든다는 미명하에 대대적인 ‘인간청소’가 이뤄진 것이다.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독일의 히틀러는 유태인이라는 ‘공동의 적’을 만들며 ‘인간청소’에 나섰다. 경제난에 이익을 본 자들이 유태인이라며 희생양으로 만들어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로 끌고 갔다. 형제복지원은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린다. 강제노역 과정에서 구타·성폭행은 물론 살인·암매장까지 행해져 6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사건의 진상은 드러난 지 오래지만 국가는 48년이 지나도록 책임을 회피했다. 2018년 문무일 검찰총장이 사과했지만, 정부는 공식 사과와 피해회복 방안 등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마침내 사법부가 국가의 책임을 물었다.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법은 형제복지원 피해자 2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위자료 145억8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국가의 배상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내무부 훈령이 “법률유보·명확성·적법절차·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한 위헌·위법적 훈령”이라고 판결했다. 정부 측의 소멸 시효 주장에 대해서는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에 해당해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혐오를 부추겨 만든 ‘형제복지원’이라는 ‘괴물’이 현대사에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사실이다.
법원의 첫 배상 판결은 반갑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라고 할 수 없다. 인권 유린으로 고통을 당한 수만명의 피해자들에게 아직도 ‘봄’은 오지 않았다. 행여 정부가 법원 판결에 항소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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