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과 돈]⑦20만평 캠핑장을 낳은 해외입양 사업

강혜인 2023. 12. 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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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국 아이를 해외로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입양 보낸 국가다. 70년간 20만 명의 어린이가 고아나 버려진 아이 신분으로 다른 나라로 보내졌다. 서류 조작 등 각종 불법과 인권침해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해외입양이 거대한 이권 사업이었다는 의혹도 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해외입양 피해자와 수익자, 책임자를 찾고 구조적 문제를 규명하는 <해외입양과 돈>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편집자주] 

한국의 4대 해외입양 기관 중 하나였던 한국사회봉사회는 설립 첫해인 1964년부터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냈다. 그리고 13년 뒤인 1977년 경기도 동탄 지역에 20만 평 가량의 땅을 샀다. 아이들을 해외에 입양 보내는 것이 ‘돈이 되는 사업’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사회봉사회는 이 땅에 ‘새싹동산 청려수련원’을 세웠다. 

▲ 한국사회봉사회는 경기도 화성시에 20만 평 규모의 새싹동산 청려수련원을 소유·운영하고 있다

한국사회봉사는 1964년부터 1977년 사이 모두 7512명의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냈다. 아동을 해외로 보내는 대가로 입양 수수료와 기부금을 받았다. 

한국사회봉사회가 아이를 보낸 국가 중 하나가 덴마크다. 당시 한국사회봉사회와 협약을 맺은 덴마크 측 입양 중개 기관은 ‘어답션 센터’였다.  

뉴스타파는 이 덴마크 입양기관의 내부 문서 3000쪽을 입수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 문서에서 한국사회봉사회가 해외입양 사업 13년만에 어떻게 20만 평의 땅을 살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는지, 그 의문을 풀 실마리를 찾아냈다. 

'그린힐' 프로젝트 ...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행복한 땅”이 될 것

한국사회봉사회 설립자인 고 백근칠 회장은 1976년 12월 21일 덴마크 협약 기관인 어답션 센터에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백 회장은 한국사회봉사회의 장기 계획(‘그린힐 프로젝트’)을 소개했다. 한강 남쪽, 서울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155에이커(19만 평) 규모의 부지를 찾았고, 이곳에 종합 아동복지 시설을 조성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백 회장은 구체적으로 결핵 치료소, 아동 행동교정 센터, 지적장애 아동을 위한 집 등을 세울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전체 부지의 30% 이상을 농장으로 개간해 여기서 나온 수확물로 수입을 창출할 것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백 회장은 이곳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행복한 땅 또는 마을 (happy land or village)’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한국사회봉사회 설립자 고 백근칠 회장은 1976년 12월 21일 어답션 센터에 편지를 보내 청려수련원 사업을 소개했다.

이듬해인 1977년부터 덴마크 어답션 센터는 ‘그린힐 프로젝트’ 즉 청려수련원 조성 명목으로 수십만 달러의 기부금품을 한국사회봉사회로 보냈다. 어답션 센터 내부 문서에 따르면 이 덴마크 기관은 1978년부터 1981년 사이 4년 동안 매년 미화 9만 달러를 청려수련원 설립을 위해 기부한 것으로 보인다. 모두 36만 달러, 현재 원화 가치로 19억 원이 넘는 돈이다. 

한국 에이전트 통해 더 비싸게 계약한 불도저

어답션 센터는 한국사회봉사회가 불도저 같은 건설 중장비를 구매할 때 필요한 자금도 별도로 기부했다. 불도저 및 관련 부속품 구매와 관련해 어답션 센터 담당자는 “덴마크 에이전트가 9만 5000달러보다 낮은 가격을 최종 가격으로 제시했다”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어답션 센터는 덴마크 에이전트의 가격을 채택하지 않고 한국사회봉사회 측의 제안에 따라 한국 에이전트를 통해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와 관련해 어답션 센터는 “한국 에이전트를 통해 불도저를 수입하면 더 좋은 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다는 점 이해하겠습니다. 한국 에이전트가 덴마크 에이전트와 커미션을 나눠 가지지 않아도 되겠고요”라고 썼다. 어답션 센터가 불도저 명목으로 최종 기부한 돈은 12만 달러가 넘는데 이는 현재 원화 가치로 4억 7000만 원가량이다. 

▲ 덴마크 양부모들에게 배포된 홍보 책자에 어답션 센터가 한국사회봉사회에 기부한 불도저 사진이 실려 있다.

기부금 내는 이유는 한국 아동 입양 가능성 때문

어답션 센터는 왜 이렇게까지 한국사회봉사회의 청려수련원 건립에 돈을 쏟아부었을까? 뉴스타파 취재진은 1979년 5월 어답션 센터가 백근칠 회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답을 찾았다. 

한국사회봉사회에 수십억 원에 달하는 기부금을 주고, 심지어 자금 대여도 해주던 어답션 센터는 “절박하게 아이 입양을 원하는 덴마크 부모들 대기자 명단이 있습니다”라며 “우리가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해외에서 아동을 입양할 수 있는지 여부에 전적으로 달려있습니다”라고 썼다. 한국에서 입양할 아동을 확보하기 위해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어릴 때 덴마크로 입양을 간 코펜하겐 대학교 유전학 교수인 에바 호프만 씨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 했고, 그 결과 아이를 매개로 거액의 돈을 주고받는 비윤리적인 시장이 형성됐다”라며 해외입양 사업과 아이를 대가로 주고받은 기부금을 비판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문서 3000장은 모두 덴마크 입양기관 내부 문서다. 그런데 한국사회봉사회는 덴마크뿐만 아니라 미국, 네덜란드, 스위스 등에도 아동을 입양 보냈다. 따라서 한국사회봉사회가 청려수련원 건립 명목으로 더 많은 해외 기관의 기부금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23년, 남은 건 20만 평 캠핑장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내고 받은 거액의 기부금으로 조성된 새싹동산 청려수련원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뉴스타파 취재 결과, 2023년 현재 20만 평의 청려수련원 부지는 가족용 유료 캠핑장과 드라마·영화 촬영장 등으로 쓰이고 있다.

▲ 2023년 11월 12일 뉴스타파 취재진 방문 당시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청려수련원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기고 있다.

한국사회봉사회는 당초 이 땅의 상당 부분을 농장으로 개간해 사회복지 사업에 쓰일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취재진 확인 결과 텃밭 수준의 체험 농장만 보였다. 실제 ‘지역 어르신 실버 농장 체험장’이라는 팻말이 붙은 텃밭에서 배추나 고구마 등을 심어 수확하는 체험 농장으로 운영되는 정도였다.

1983년 덴마크로 입양 간 말레네 베스터고르(Malene Vestergaard) 씨는 덴마크어로 된 홍보 책자에서 봤던 ‘그린힐 프로젝트’를 기억하고 있었다. 청려수련원이 유료 캠핑장이라는 사실을 들은 말레네 씨는 황당해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큰 부지를 사서 매년 사람들에게 이곳에 대해 말하며 기부금을 모집했어요. 그런데 정작 여기가 어떻게 됐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이상하네요. 아동복지를 위해서, 장애 아동을 위한 시설을 만든다며 모금한 거 잖아요.”

피터 뮐러(Peter Møller)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KRG) 대표도 “청려수련원에 두 번 방문해봤지만 덴마크 입양 기관 문서에 나오는 ‘그린힐 프로젝트’ 설명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고 말했다. 

법인 전체 수입의 96%를 벌어주는 청려수련원

초기 계획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는 청려수련원은 현재 한국사회봉사회의 거의 유일한 수익 창구다. 국세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익법인 결산서류에 따르면 한국사회봉사회는 2022년 약 7억 9500만 원 사업수입을 거둬들였다. 이 가운데 7억 6700만 원이 수련원 사업에서 나왔다. 청려수련원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한국사회봉사회 전체 수입의 96%나 차지하는 셈이다.

▲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시된 한국사회봉사회 2022년도 결산서류를 보면 수련원 사업이 차지하는 수입이 법인 전체 수입의 96%를 차지한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사회봉사회는 전체 수입 중 절반 가량인 4억 2000만 원을 인력비용으로 썼다. 그리고 분배비용으로는 인력비용의 10% 수준인 4200만 원을 썼다. 한국사회봉사회가 하는 분배사업은 장학금 지급, 지역 노인을 위한 체험 농장, 쌀 나눔 등이다. 입양 관련 사업의 경우 2011년 이후로 해외입양을 중단하고 현재는 입양인 뿌리 찾기 및 모국어 교육 지원 같은 입양 사후 관리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다.   

한국사회봉사회의 순자산은 270억 원 

한국사회봉사회는 설립 첫해인 1964년부터 2011년까지 모두 2만 명의 아동을 미국, 유럽 국가 등으로 입양 보냈다고 기관 홈페이지에 소개한다. 48년 동안 아동을 해외로 송출하면서 한국사회봉사회는 적잖은 부를 축적했다. 국세청 공시 자료에는 이 기관이 소유한 토지와 건물 등이 나오지만 자산의 대부분은 청려수련원 관련 자산일 것으로 추정된다. 2022년 기준 한국사회봉사회 순자산은 270억 원가량이다.

뉴스타파는 한국사회봉사회에 질의서를 보내 ▲입양 사업에서 발생한 기부금 등으로 조성된 청려수련원에 장애 아동을 위한 시설 등이 운영된 적이 있는지, ▲초기 계획과 다르게 해당 시설을 운영한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물었지만 한국사회봉사회는 답하지 않았다.

*관련 시리즈 기사 

①입양 기관의 새빨간 거짓말과 피해자들 (https://newstapa.org/article/k292M)

②입양인들이 갈망하고 있는 '진실' (https://newstapa.org/article/X_PRy)

③입양 기관의 벽 너머 가려진 '엄마의 이름' (https://newstapa.org/article/-IVFg)

④해외입양 기관, 수수료 웃돈 취득·장부 허위 기재 의혹 (https://newstapa.org/article/3H1oz)

⑤입양 기관 내부 문서 3000쪽 최초 입수...아이를 거래했다 (https://newstapa.org/article/FpDm-)

⑥기부금의 비밀⋯ 사실상 아이 송출 대가였다 (https://newstapa.org/article/T5_46)

뉴스타파 강혜인 ccbb@newstapa.org

뉴스타파 이명주 silk@newstapa.org

뉴스타파 변지민 pluto@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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