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 한복판 총기 난사에 유럽도 비탄..."안전한 곳 없다"

김현종 2023. 12. 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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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카렐대 대낮 총격에 14명 사망
테러 연관성 없어… 범인, 현장서 숨져
잇따른 총격 사건에 유럽 사회도 긴장
체코 국민들이 22일 프라하 카렐대 철학부 건물 인근에서 하루 전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촛불을 켜고 있다. 프라하=AP 연합뉴스

체코 프라하 번화가 인근 대학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최소 14명이 숨졌다. 체코 역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낸 총격 사건으로, 범인은 이 학교 학생이었다. 최근 유럽에서 잇따라 총격 사건이 발생하며 유럽도 총기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체코 공영TV와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마르틴 본드라체크 체코 경찰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프라하 카렐대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나 14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당했다”고 발표했다. 부상자 중 10명은 중태여서 희생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카렐대 학생 범행...범인 아버지도 숨진 채 발견

21일 체코 프라하 카렐대 철학부 건물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하자 학생 등이 대학 건물 옥상 쪽으로 피신해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포됐다. SNS 캡처

이날 총격은 오후 3시쯤 프라하 관광명소 카렐교에서 불과 수백 m 떨어진 체코 명문 카렐대 철학부 건물에서 발생했다. 경찰은 총격범이 현장에서 사망해 신원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국 더타임스 등은 범인이 카렐대에서 역사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데이비드 코자크(24)라고 보도했다. 경찰은 이날 범행에 외부 극단주의 테러단체가 개입됐을 가능성은 일축했다.

체코 프라하 카렐대 학생이 21일 총격 사건 발생 직후 책상과 의자로 강의실 문을 틀어막은 사진을 엑스(X·옛 트위터)에 올렸다. 엑스 캡처

사건에 앞서 코자크는 “학교에 총기를 난사한 후 자살하고 싶다. 언젠가 미치광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게시물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텔레그램에 올렸다. 경찰은 SNS 기록 등을 토대로 이날 오후 2시쯤 그가 수업을 들을 예정이었던 대학 건물을 폐쇄하고 수색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오후 2시 59분 다른 건물에서 총격 신고가 들어왔다. 해당 건물에서 강의를 듣고 있던 학생들은 총성을 듣고 대학 건물 지붕 쪽으로 올라가거나, 다른 건물로 뛰어내리고, 강의실 문을 책상과 의자로 막고 버티는 등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총격범은 조준경과 총기 거치대가 탑재된 소총을 갖고 있었으며, 도망가는 시민을 향해 인근 광장 쪽으로 조준 사격을 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한 학생은 “총격범이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총성과 비명이 울려 퍼졌고 건물 곳곳에 피가 흘렀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본드라체크 총장은 총격범이 오후 3시 20분쯤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건물 옥상에 있던 그는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스스로 총을 쏴 목숨을 끊었다.

앞서 이날 낮 12시 40분쯤에는 프라하 인근 코자크의 고향 마을 호스토운에서 55세인 코자크의 아버지가 살해된 채 발견됐다. 코자크는 또 지난 15일 프라하 근교에서 남성 1명과 2개월 된 딸을 살해한 혐의도 받고 있다.


유럽 각국서 연이어 총격 사건 발생

21일 체코 프라하 카렐대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건물 인근에서 보온 담요로 몸을 감싼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프라하=AP 연합뉴스

한낮 수도 한복판 대학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에 체코와 유럽 사회는 경악했다. 보후슬라프 스보보다 프라하 시장은 체코 공영TV에 “우리는 (총격) 사건이 우리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왔다”며 “불행히도 이제 세상은 변하고 있고, 이곳에서도 안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 학생은 미국 CNN 방송에 “유럽 전역에 총격 사건이 질병처럼 퍼지고 있다”고 말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실제로 지난 6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총격으로 3명이 희생됐고, 지난 5월 세르비아에선 이틀 연속 총격 사건이 발생해 각각 9명, 8명이 목숨을 잃었다.

‘군수산업 강국’ 체코의 허술한 총기 규제도 도마에 올랐다. 체코에서는 2015년과 2019년에도 총격 사건으로 각각 8명, 6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체코는 2021년 헌법에 '무기를 사용해 생명을 지킬 권리'를 명문화했다. CNN은 "체코에선 총기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건강 검진이나 무기 숙련도 시험은 물론 범죄 기록조차 요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10년대 말 유럽연합(EU)이 회원국의 총기 소지를 제한하려 하자 체코의 총기산업 이해관계자 10만2,000명이 반대 청원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 총격범도 총기 허가증은 물론 여러 자루의 총을 갖고 있었다.

가디언은 "이날 총격 사건은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체코가 유럽에서 가장 느슨한 총기 규제를 갖고 있다는 사실로 설명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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