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보내주세요” 무작정 달려온 미혼모, 보호출산 있었다면…[히어로콘텐츠/미아⑤]

홍정수 기자 2023. 12. 22. 1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해 10월 30일 서울 강남구 서울특별시아동복지센터에서 박정숙 보육사가 김소라(가명) 양을 품에 안고 루돌프 스티커를 보여주고 있다. 올 6월 30일 태어난 소라는 베이비박스에 맡겨졌다가 이곳을 거쳤고, 이달부터는 위탁가정에서 지내고 있다. 소라의 친모는 “1년 뒤 형편이 나아지면 소라를 직접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아이가 보배인 저출산 시대에도 ‘품을 잃은 아이들’이 있다. 친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유기된 아이들. 그리고 부모가 방임한 아이들까지.

올해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되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두 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우리 주위엔 여전히 미아처럼 품을 찾아 떠도는 아이들이 있다.

그동안 이 아이들은 뭘 감내하며 살아왔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베이비박스’(부모가 아이를 두고 가도록 마련된 상자)를 500시간 동안 관찰하고, 품을 찾아 떠도는 0~29세 아동·청년 47명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말한다. “미안해 아가야.”

미아 - 품을 잃은 아이들

[5] 모든 아이를 품어줄 세상

베이비박스의 ‘맏언니’ 소라

올해 9월 4일 서울 관악구 베이비박스에 놓였던 유준(가명·본보 12월 18일자 A1·2·3면 참조)이가 다음 날 아침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아이가 있다. 6월 30일 태어나 이미 두 달 넘게 베이비박스를 지키고 있던 ‘맏언니’, 김소라(가명) 양이다.

미혼인 엄마는 임신 30주에야 소라의 존재를 알았다. 도움을 요청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머릿속만 하얘졌다. 구청이나 공공기관을 찾아갔다간 건강보험 청구서가 날아와서 주변에 들통날 것 같았다. 배가 불러오고 두려움과 막막함만 몰려오던 순간 소라가 세상에 왔다. 엄마는 그제야 소라의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남긴 편지들.
“무조건 입양 보내 주세요.”

소라가 태어난 지 나흘째 되던 날. 아이를 안고 베이비박스로 온 엄마는 상담사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아이로 인해 자신의 삶이 완전히 뒤바뀔 거란 두려움이 모든 감정을 압도했다. 그렇게 베이비박스에 살기 시작한 소라가 100일 잔치를 앞두고 있던 10월 6일. 국회에선 소라와 엄마, 그리고 베이비박스의 다른 아이들을 위한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보호출산제)이 통과됐다.

위기 임신부터 정부가 지원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보호출산제는 임신부가 익명으로 병원에서 출산한 후 지자체에 아이를 인도하는 제도다. 소라 엄마처럼 임신과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거나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임산부들이 익명으로 찾을 수 있는 지역상담기관 10곳도 24시간 운영된다. 이곳에 상담을 요청하면 아이를 키울 때 받을 수 있는 지원 정책과 입양을 보낼 경우 절차 등을 먼저 안내받게 된다. 필요한 자원도 모두 연계 받을 수 있다.

이 모든 상담을 거쳤음에도 보호출산을 택한다면 본인의 가명과 함께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하는 ‘관리 번호’를 받게 된다. 산전 검사를 위해 병원을 갈 때도 관리 번호를 제시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드는 의료비는 전액 정부가 지원한다. 출산 후 1주일의 ‘숙려 기간’에도 엄마가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입양 절차가 시작된다. 하지만 아이가 입양 허가를 최종적으로 받기 전까지는 직접 양육하겠다고 마음을 바꿀 수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서울시아동복지센터에서 보육사들이 아기들을 돌보고 있다. 서울에 유기된 아동들은 모두 센터에 입소한다. 이후 입양, 가정위탁, 시설 보호 등 아이의 미래가 정해진다.
보호출산을 신청한 엄마는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보호출산을 선택하게 된 상황 등을 담은 ‘출생증서’를 남겨야 한다. 아기가 성인이 되면 출생증서 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친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인적사항은 알 수 없다.

“입양, 가정위탁 더 활성화해야”

전문가들은 이 법으로 인해 사회·경제적으로 내몰렸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는 ‘위기 임신’ 단계부터 공공이 개입할 근거가 마련됐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보호출산제의 1차 목표가 ‘위기 임신’ 상태인 부모가 상담기관을 쉽게 찾도록 하는 데 있어서다.

보호출산제가 모방한 독일의 ‘신뢰출산제’는 전국 1500여 개 임신상담센터에서 거주지와 상관없이 원하는 지역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위기 임신 상태의 부모가 언제 어디서든 접근하고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촘촘한 지원 체계를 갖춰놓은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 출산지원시설 애란원의 강영실 원장은 “사실 한국도 한부모 지원 체계가 굉장히 촘촘한 편”이라면서도 “하지만 그동안 위기임신 단계를 지원할 ‘초입구’를 공공에서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산을 앞두고 극도의 혼란을 겪는 미혼모들에게 한부모 지원 체계가 충분히 연결될 수 없었다”고 말했다.

10월 31일 서울 서대문구 애란원에서 한 미혼모가 아이와 함께 산책하고 있다.
다만 보호출산제가 실효성 있게 자리 잡으려면 ‘운영의 디테일’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기 임신의 경우 임신 사실 자체를 뒤늦게 아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상담사들이 상당히 훈련돼야만 하고, 전산정보가 차질 없이 공유되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을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해서도 세부 정책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복지부는 내년 1, 2월 중 구체적인 보호 방안을 담은 시행령을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품을 잃은 아이들’을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해 입양과 가정위탁을 더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지부가 ‘보호아동 가정형 거주로의 전환 로드맵’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2차에 걸쳐 실시한 연구용역에선 가정위탁에 유급제를 도입해 보상을 늘리되 책임감을 높이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입양의 경우 연장아(만 1세 이상 아동)와 장애아 등 양부모들의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아이들의 입양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보호출산제의 목표는 역설적으로 보호출산으로 태어나는 아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아이를 품는 세상으로

올해 10월 31일 서울 서대문구의 미혼모자 생활 시설 ‘애란원’에서 박모 씨(29)가 아이를 안고 잠들어있다.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임신 8개월에서야 알게 된 박 씨는 출산 직후 올해 4월 이곳에 입소했다. 아이를 입양을 보내려 준비하다가 직접 키우기로 마음을 바꿨다.
보호출산제가 도입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현장에서는 ‘정상 가족’에 대한 고정 관념이 변하지 않는다면, 보호출산제를 통해 익명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계속해서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아이를 출산한 뒤 직접 양육하고 있는 미혼모들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주위의 편견이 가장 두려웠다고 입을 모았다. 정수진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상담팀장은 “드라마에서도 미혼모는 대부분 첩, 술집 작부나 가정 파탄자로 나오지 않나”라며 “내가 아이를 키우겠다고 결정해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가정을 유지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주변인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려도 돌아오는 건 냉대였다. 김모 씨(22)는 임신 당시 가족, 친구 등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다 올 9월 딸을 출산한 뒤에야 부모님에게 알렸다. 그러나 부모님은 아기 사진을 보지 않으려 할 정도로 거부했다. “임신했다는 것 자체가 눈치가 보였다”는 그는 아이를 결국 입양 보내기로 했다.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맡겼다가 결국 100여일 만에 집으로 데려간 이모 씨(26)는 “아이가 자라면서 아빠 없이 컸다는 놀림에 상처를 받을까 두렵다”며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엄마, 보통 아이라는 따뜻한 시선으로 품어줬으면 한다”고 했다.

전국 위기임신 상담전화(가나다 순)
구분
운영 기관
번호
공공
경기도 위기임산부 안심상담 핫라인
010-4257-7722
공공
서울시 위기임산부 상담지원
1551-1099
공공
여성가족부
1644-6621
공공
1388청소년전화
1388
민간
동방사회복지회 미혼모상담
1588-9874
민간
1549임신상담출산지원센터
010-2172-1549
민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02-322-5007
민간
한국위기임신출산지원센터
1422-37
자료: 각 단체 등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미아: 품을 잃은 아이들’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차별화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취재: 조유라 이승우 조민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하승희,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수진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 디벨로퍼
▽인터랙티브 디자인: 여하은 차설 인턴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따뜻한 요람 대신 차디찬 바닥에 놓였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로 구현한 ‘그 아이들이 버려진 곳’(original.donga.com/2023/poom1)과 ‘사운드트랙: 품을 잃은 아이들’(original.donga.com/2023/poom2)로 각각 연결됩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조민기 기자 minki@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