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는 기쁨? 그런 건 없다
연말이면 돌아보게 된다. 올해, 좀 괜찮았나? 독일 사회학자 마틴 슈뢰더가 쓴 '만족한다는 착각'은 그 문제에 대한 책이다.
독일경제연구소는 1984년부터 8만4,954명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를 묻는 63만9,144건의 사회경제패널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인구분포도에 맞춰 선발된 동일 인물들을 대상으로 30년 이상 진행된 조사다. 이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가 이 책이다.
책은 사교, 연애, 취업, 결혼, 월급, 출산, 육아 등이 삶의 만족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데이터에 기반해 세세하게 파고든다. 미리 말하자면 오해는 금물이다. 데이터로 보니 그렇더라,라는 뜻이지, 과도한 해석이나 도약은 금지다.
육아의 기쁨은 없다
저출산 시대이니 우선 출산부터. 흔히 "아이는 삶의 기쁨"이라고 한다. 저출산은 아이가 안 예뻐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만족도 조사 결과를 보면 좀 다르다. "대다수 부모는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기지 않는다." 저자는 부모의 자기기만으로 설명한다. "돈과 시간, 노력을 그렇게 쏟아부었음에도 만족감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회적 압박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측면도 있다." 아이란 존재는 투자 대비 성과 면에서, 아, 이렇게까진 말하지 말자. 데이터는 데이터일 뿐.
가사 분담 문제도 그렇다. 여자들은 집안일을 나누는 남자가 좋다고 한다. 그런데 만족도 조사에선 "정규직 여성조차 집안일을 많이 할 때 오히려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들은 집안일을 많이 하면 불만족도가 올라가지만, 여자들은 집안일을 적게 하면 불만족도가 올라간다. 약간 올라가는 정도가 아니다. 그 "불만족도 수치는 '중간~강함'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성 정체성'으로 해석한다. "말은 아니라고 하지만 내심 성적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반려자를 바라는 것"이다. 심지어 "여성은 남성보다 소득이 더 늘면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현상도 관찰된다.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성 역할을 되찾기 위한 보상행위"다.
결혼 뒤 15년, 불만족이 앞지른다
대한민국 워킹맘들이 뒷목 잡고 쓰러질 얘기다. 이 책을 보고 이번 주말 아내에게 "당신의 삶의 만족도 향상을 위해 청소할 거리를 잔뜩 만들어 놨어(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어)"라고 해 보는 건 자유다. 하지만 너무 많이 해도 안 되고 너무 적게 해도 안 되는 집안일의 수준을,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을 퇴근 시간 수준을 세심하게 가늠해 보는 걸 더 권할 만하다. 반복하자면, 데이터는 데이터일 뿐 경험과 삶의 지혜에서 우러나오는 정교한 해석은 별개의 문제다.
이 책엔 이런 얘기가 한가득이다. 여성이 가장 만족하는 출산 시기는 취직 이후 6년 정도 지난 30대 초중반 때다, 15년이 지나면 부부의 결혼 불만족도가 만족도를 앞지른다, 월급은 4인가족 기준 5,400유로(약 762만 원)를 넘으면 만족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등 별의별 얘기가 다 있다.
왜 이런 분석을 했을까. 저자는 2000년대 초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미국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의 '긍정심리학'의 토대 위에 서 있다. 긍정심리학에 대한 비판은 많지만 저자의 지적대로 기존 심리학이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병리현상 말고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법'에 대해서는 친절하게 설명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낙관적, 사교적 태도를 길러라
그럼 저자의 결론 아닌 결론은 뭘까. 한 사람의 '만족감'엔 적당한 건강, 재산 등이 모두 작용한다. 그 변수들이 엇비슷하다면 삶의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건 두 가지였다.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 그리고 '사교성'이다.
통제력은 실제로 통제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할 수 있다고, 어쩌다 한 번씩 일어나는 것이라고, 나와는 관계없다고 믿는 것이다. 사교성 또한 화려한 인맥이 아니다. 뜻 맞는 소수와의 정기적 만남, 일상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과 밝고 가벼운 인사와 격려만 해도 충분하다. 읽고 보니 우린 충분히 좀 더 만족할 준비가 돼 있다.
통계 데이터를 다룬 책은 대개 수치, 그래픽 범벅이다. 엄밀한 설명 욕심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요령 있고 재치 넘치는 설명에, 오차 범위까지 감안할 수 있도록 정확성을 기하면서도 간결하게 처리한 그래픽이 눈에 띈다.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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