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의 첫 동양인 성상···조각 매순간이 기적이었죠"
유흥식 추기경 성상 건립 추진하며
"조각은 한국작가에" 바티칸 설득
신자이면서 경험 갖춘 한 작가 낙점
원석 찾기부터 구상까지 매번 고비
포기 안한 건 천사가 도와준 덕
성상 위해 조각가 됐다고 여겨
“아마 이 빈 공간은 김대건 신부 성상을 위해 하느님이 비워둔 것 아닐까요. 그게 아니면 이유가 없죠.”
반세기 동안 오로지 돌만 만진 조각가 한진섭(67·사진)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묻어 났다. 한 작가는 올해 9월 바티칸 성당 베드로 대성전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의 성상을 조각했다. 로마 바티칸에 동양 성인의 성상이 세워진 것은 2000년 만에 처음이다.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아티스트 토크에 선 작가는 “어마어마한 축성식을 가졌는데 내내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바티칸의 역사를 다시 쓴 소감을 전했다.
김대건 신부의 성상은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우측 외벽에 있는 4.5m 높이의 아치형 벽감(벽면을 안으로 파서 만든 공간)에 세워졌다. 이 자리는 별다른 이유 없이 550년간 빈자리로 남겨져 있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나오면 가장 처음 마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작가가 로마 바티칸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의 성상을 조각한 것은 조각가로서도, 가톨릭 신자로서도 큰 명예다. 하지만 이 같은 영광은 작가 혼자만의 노력으로 된 일은 아니다. 작가는 아티스트 토크 내내 ‘천사가 왔다’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그만큼 모든 제작 과정에서 기적적으로 주변의 도움이 있었다.
첫 번째 천사는 2021년 로마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부임한 유흥식 추기경이다. 부임 직후 유 추기경은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바티칸에 성상을 세우는 일을 추진했는데 이는 다양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바티칸의 생각과 맞아떨어졌다. 이후 바티칸 측은 성상을 조각할 사람으로 이탈리아 작가를 물색했다. 다른 성상들과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유 추기경은 “한국의 성인은 한국 작가가 만들어야 정신과 혼을 담을 수 있다”며 바티칸을 설득했다. 아직 한국의 조각가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던 바티칸은 의문을 가졌지만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지난해 10월 “김대건 신부 조각상 비용을 국내 천주교 모든 교구가 함께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한국 작가 찾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바티칸 성상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우선 천주교 신자여야 하고, 이탈리아의 대리석 산지인 카라라에서 작업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또 추상이 아닌 구상 돌 조각을 해야 했다. 한 작가는 천주교 신자였을 뿐 아니라 이탈리아 카라라아카데미에서 10년간 유학했다. 게다가 48년간 추상 조각만 해온 작가가 2020년께 한 성당의 의뢰로 한덕운 토마스 복자상을 조각한 것은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였다. 불과 2년여 전에 구상 조각을 시작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맞춘 셈이다. 특히 대전 교구청이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김대건 신부 조각상을 제작한 것도 신의 한 수였다. 2021년 12월 자료를 제출해 달라는 바티칸 교황청에 네 가지 모형을 제작해 보냈다. 작가는 “성상 조각은 다른 조각과 달리 계속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며 “전화를 받았을 당시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모든 시간이 바로 김대건 신부의 성상을 세우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선정된 모형이 현재 바티칸에 세워진 두 팔을 벌리고 모든 것을 수용하는 형태의 김대건 신부의 모습이다.
이후 무려 3m 70㎝ 높이의 성상을 세우기 위한 대리석 원석을 찾아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기적이 찾아왔다. 균열이 없고 무늬도 없는 돌을 찾기 위해 이탈리아를 헤매고 있다는 소식을 1985년 카라라국립미술아카데미 조소과 동창들이 듣게 된 것이다. 지역에서 강의를 하거나 유명 작가로 활동하는 동료들이 모두 돌 찾기에 나섰고 5개월 만에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에서 가장 적합한 대리석을 찾아냈다.
작업이 순탄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돌 조각은 수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한순간의 실수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너그럽고 자애로운 모습의 김대건 신부 얼굴을 조각해야 하는데 도무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 완성해냈다. 작가는 “조각상 의뢰를 받고 설치하는 모든 과정에서 천사가 왔다. 나는 이 성상을 만들기 위해 조각가가 됐다고 생각했다”며 아티스트 토크 내내 연신 울먹였다. 가나아트센터에서는 바티칸에서 돌아온 한진섭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관에는 60㎝ 크기의 김대건 신부 성상 모형과 그가 48년간 해온 다양한 추상 조각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14일까지다.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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