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좌우하는 핫라인 …'공공의료 단절' 민간병원이 이었다
1차 병원 월평균 수십건 요청
이비인후과·내과도 의뢰 늘어
분당서울대병원·산부인과 연계
응급산모 병상 실시간확보 눈길
매주 왕복 200㎞ 파견 진료
의료 사각지대 주민들 숨통
◆ 의료혁신 속도 ◆
우리아이들병원의 핫라인은 정성관 이사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 정 이사장은 발열 증상을 동반한 소아환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으려고 여러 곳을 전전하는 모습 등을 보며 민간 차원에서 만들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를 고민했다. 평소 자주 소통해온 인근 종합병원의 소아과 교수들에게 핫라인 구축을 제안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정 이사장은 "기관마다 진료의뢰서를 적는 등 절차를 밟으면 신속한 결정이 이뤄지기 어렵다"며 "호흡곤란, 폐렴, 경련 등을 호소하는 소아환자가 발생했을 때 의사들끼리 직접 소통하면 응급처치, 입원 등에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아과 붕괴가 현실화한 상황에서도 중증·응급환자들이 '응급실 뺑뺑이'에 시달리지 않고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는 건 일부 권역에 핫라인이 갖춰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22일 우리아이들병원에 따르면 1차 의료기관이 요청해오는 전원 사례는 월평균 수십 건에 달한다. 우리아이들병원에서 3차 의료기관으로 전원하는 사례는 월평균 1~2회씩 발생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전문병원인 만큼 자체 대응이 가능한 질환도 많아 3차 병원에서 상대적으로 덜 위중한 환자를 반대로 보내오기도 한다"며 "최근에는 소아과뿐만 아니라 가정의학과, 이비인후과, 내과 등에서도 의뢰가 온다"고 말했다. 우리아이들병원은 정보기술(IT)을 좀 더 보완해 핫라인을 업그레이드할 방침이다. 대화방에서 환자의 백혈구 수치, 엑스레이 자료 등 기본 의료 데이터가 공유될 수밖에 없는 만큼 보안에 각별히 더 신경 쓰겠다는 계획이다. 정 이사장은 "제도 개선을 추진할 예정이지만 민간 차원의 네트워크는 의료기관별, 권역별 확대 적용에 여러모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필수의료를 살리는 데 민간이 나선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분당서울대병원이 올해 초 시작한 '고위험산모 전원 신호등 사업'도 지역사회 내 응급상황 대응체계로 주목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조산, 출혈 등을 이유로 산모를 1차 의료기관에서 전원해야 할 때 2·3차 의료기관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가능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이러다 전원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산모와 신생아 모두 위험해질 수 있다. 이에 분당서울대병원은 매일 오전 고위험산모 집중치료실과 신생아중환자실의 병상 현황을 확인해 지역 협력병원에 문자메시지를 발송한다. 알림 내용은 전원 가능(초록), 원활(노랑), 불가(빨강) 세 가지 형태로 작성된다.
현재 신호등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분당제일병원 등 15곳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이를 경기 남부 전역으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분당서울대병원 관계자는 "현재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에서 연간 300여 명의 응급 산모와 신생아를 전원받아 치료하는데 지역사회 병원들과 협력이 늘어날수록 도움받는 산모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은 파견진료 사업을 통해 지역의료 격차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 의료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충남 서산의료원과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에 순환기내과 의사들을 보내 지역주민의 심혈관질환을 돌보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한성우 진료부원장과 김도영 순환기내과 교수가 매주 1번, 왕복 100~200㎞ 거리를 오가고 있다. 이들이 하루 평균 진료하는 환자 수는 40명이 넘는다.
한 부원장은 "하루에 3시간 이상 차를 타고 이동해 많은 양의 진료를 소화하다 보면 온몸이 녹초가 된다"며 "하지만 '의사가 왔다는 소식에 몇 년 만에 병원을 찾았다' '계속 머물러달라'는 환자들의 말을 외면할 수 없어 파견진료를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파견진료 사업은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50대 환자를 구한 일이 대표적이다. 한 부원장은 급성심근경색에 따른 흉통이라 판단해 해당 환자를 직접 구급차에 태워 한림대동탄성심병원으로 이송했다. 그곳에서 막혀 있던 우측 관상동맥에 스텐트 삽입술을 시행해 생명을 살렸다.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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