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팅커벨’ 돌보는 단짝 피터팬들…새 가족 만날 때까지
안락사 앞둔 동물 구조·입양 보내는 팅커벨프로젝트
엘지전자 피터팬봉사단, ‘팅커벨’ 찾아 5년간 봉사
지난 16일 영하 10도의 갑작스러운 추위가 찾아온 토요일 오전, 서울 강서구 화곡동 ‘팅커벨프로젝트 입양센터’ 앞에는 작은 입김을 내뿜는 강아지들과 사람들로 북적였다. 산책에 나선 개 15마리, 사람 20여 명으로 작은 마당이 가득 찼다. 개들은 산책줄을 잡은 사람에게 ‘왈왈’ 짖으며 출발을 재촉했다. 보호소의 개들이 동시에 산책하는 일은 드문데 한 달에 한 번 정기 봉사단이 찾는 날엔 개들도 신이 난다.
동물구조단체 팅커벨프로젝트(팅커벨)는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에 들어오는 유기동물 가운데 공고 기간이 끝나 안락사를 앞두고 있는 동물을 구조해 입양 보내는 단체다. 현재 화곡동 입양센터에는 개 15마리와 고양이 6마리가 지내고 있는데, 보호 동물의 수는 늘 같다. 한 마리가 입양을 가면 그때 다시 한 마리를 구조해 입양을 보내는 식이다. 팅커벨프로젝트는 이런 방식으로 지난 2014년부터 현재까지 약 2000마리의 개와 고양이에게 ‘새 집사’를 연결해줬다.
단체 이름은 왜 팅커벨일까. 팅커벨은 황동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가 단체를 꾸리게 된 계기가 된 한 강아지의 이름이다. 2014년 유기견 보호소에서 버려진 진돗개 남매를 입양하며 유기동물 문제에 마음을 쏟게 됐다는 황 대표는 당시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입양 일기를 올렸다. 반응이 좋았고, 소통하는 지인들도 생겨났다.
그러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개들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구조해 입양을 보내게 됐다. 팅커벨도 그런 친구였다. 보호소에서 발견한 팅커벨은 구순열 장애를 지닌 말티즈였다. 지인들과 비용을 십시일반 모아 구조가 결정됐지만, 구조 하루 만에 팅커벨은 별다른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황 대표는 팅커벨 같은 유기견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단체를 꾸리게 됐다.
“자, 천천히 출발합시다.” 황동열 대표가 ‘단체 산책’의 맨 마지막에서 출발을 알렸다. 선두에는 이날 개들의 산책 파트너를 맡은 엘지(LG)전자 사내봉사동아리 ‘피터팬 봉사단’의 박정욱 단장이 섰다. 황 대표는 천천히 가라고 했지만, 개들은 벌써 파트너들을 끌고 달리듯 익숙한 산책길 앞으로 사라졌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개들은 바삐 냄새를 맡고 흔적을 남기기에 바빴다. 엘지전자에서 기술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정욱 단장은 2017년 팅커벨프로젝트에서 현재 반려견 ‘세나’를 입양하면서 입양센터와 인연을 맺게 됐다. 박 단장은 “먼저 키우던 개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세나를 만났다. 연천군에서 구조된 친구라고 들었는데, 처음엔 분리불안이 심했지만 입양 뒤 3~4개월 만에 좋아지는 모습을 보고 많은 걸 느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입양센터 봉사에 나섰고, 결국 사내 봉사동아리까지 꾸리게 됐다.
봉사단 이름은 팅커벨의 단짝 피터팬으로 지었다. 2018년 3월부터 사내 봉사동아리 지원 프로그램에 정식으로 피터팬 봉사단을 등록하고, 회사 동료들과 모임을 꾸리기 시작했다. 주된 참가자는 5명이지만 한 달에 한 번 정기봉사에 앞서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8~10명의 사우들이 함께 하는 방식이다. 한 달에 한 번이라지만 주말에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오히려 봉사 활동이 일상에 활력소가 된다고 했다. 지난 12월1일엔 5년이 넘는 꾸준한 봉사 활동으로 ‘2023 서울시 자원봉사자상’을 받았다.
박정욱 단장은 “봉사는 여행이랑 비슷한 것 같다. 여행도 떠나기에 앞서서 준비하는 것이 귀찮고 힘들 때가 있지만 막상 다녀오면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팅커벨 입양센터에 봉사를 다녀오면 여독은 남아도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여행처럼 행복하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날 봉사에 참석한 다른 봉사단원 허지민씨도 “집에 고양이만 4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입양센터에 오면 개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고, 만나고 가면 힐링을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팅커벨 입양센터 ‘장기 하숙생’ 믹스견 ‘노라’의 목줄을 쥔 그가 뛰는 듯 걸으며 말했다.
낮은 기온 탓에 산책은 30분 만에 마무리됐다. 황 대표는 “입양센터에서는 활동가들이 돌아가며 산책을 시키니 이렇게 길게 산책할 기회가 적은데, 오늘은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니 안타깝다. 봉사자들이 많이 찾아주시면 개들에게도 많은 산책 기회가 생긴다”며 방문을 부탁했다. 2㎞ 남짓의 짧은 산책이었지만 개들은 마냥 꼬리를 흔들며 행복해 보였다. 박정욱 단장의 산책 짝꿍이었던 웰시코기 ‘봄이’는 이미 지친 듯 품에 안겨 걷고 있었다.
■ 팅커벨 장기투숙생 ‘노라’의 집사를 구합니다
구조 2년이 넘게 입양을 못 가고 있는 어미개 노라. 노라는 2021년 7월 새끼들과 함께 지자체 보호소에서 구조됐다. 어린 새끼들은 모두 새 가족을 찾아 떠났지만 노라는 2년 넘게 팅커벨 입양센터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노라는 사람을 좋아하고 순하지만, 8㎏ 남짓한 시바 믹스견으로 다른 소형 품종견들에 밀려 입양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다른 강아지들처럼 사람에게 다가가 귀여움을 뽐내기보다 조용하고 소심하게 가만히 뒤에서 지켜보는 신중한 성격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에 잘 나서지 않을 뿐, 가만히 옆에 다가가면 조용히 자기 몸을 맡기며 교감을 하는 매력이 돋보이는 친구다.
“노라야, 너도 나서서 가서 쓰다듬어달라고 해. 너도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개라는 것을 알아달라고 해.” 팅커벨 입양센터 활동가들은 늘 양보만 하고 뒤에서 조용히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는 노라가 안쓰럽다. 눈이 예쁜 노라는 금방 친해지기보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강아지다. 공놀이를 좋아하고, 놀이 규칙을 금방 이해할 정도로 지능이 뛰어나다.
이름: 노라
성별: 암컷
추정나이: 5살
체중: 8.5kg
성격: 온순함
입양문의: 팅커벨 입양센터 (02-2647-8255)
이메일: tinkerbell0102@hanmail.net
글·사진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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