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그림자 드리운 트럼프 2.0…익숙한 듯 낯선 미래

노효동 2023. 12. 2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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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햄프셔 유세서 연설하는 트럼프 전 美 대통령 (더럼[美 뉴햄프셔주] AFP=연합뉴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더럼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이민자가 "우리나라의 피를 오염시킨다"며 혐오성 발언을 쏟아냈다. 2023.12.18 besthope@yna.co.kr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논설위원 = 2016년 9월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선거기금 모금 파티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을 향해 "개탄할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인종차별, 여성 폄하, 외국인 혐오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정적 실수였다. 이민자와 중국에 일자리와 소득을 빼앗기고 있다는 상실감에 젖어있던 저소득 저학력의 백인 노동자 계층이었다. 자신들이 좌절하고 분노하는 지점을 짚어내고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약속한 트럼프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재집권을 향해 질주하는 트럼프의 원군이다.

미시간주 車 부품공장서 연설하는 트럼프 [클린턴타운십 로이터=연합뉴스] [2023.09.28 송고]

트럼프 2.0은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라 당장 대비해야 할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 미국 유권자의 시선은 공화당 경선을 넘어 내년 11월 '조 바이든 대 도널드 트럼프'의 리턴매치로 향하고 있다. 판세의 흐름은 트럼프에게 확연히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취합하는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전국 단위 지지율은 트럼프가 2.3% 포인트(P)(12월14∼18일) 앞선 수준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지표는 스윙 스테이트(경합주)의 풍향이다. 2016년 트럼프를 지지했다가 2020년 바이든으로 갈아탄 5개주(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애리조나·조지아)가 핵심이다. 블룸버그 통신과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가 지난달 27일부터 6일까지 유권자 4천935명을 상대로 조사해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미시간(4%P) 위스콘신(6%P) 펜실베이니아(1%P) 애리조나(3%P) 조지아(7%P) 모두 트럼프 우위다. 히스패닉이 많은 네바다(5%P)와 2008년 버락 오바마가 승리했던 노스캐롤라이나(11%P)도 마찬가지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전 세계는 트럼프 집권 가능성이 대두되자 벌써 '예기불안'(豫期不安)에 시달리고 있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트럼프의 재집권을 "재앙"이라고 표현하며 "트럼프 2.0은 미국에 무지와 분노를, 세계질서에 혼돈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극언을 쏟아냈다. 트럼프 재집권이 몰고 올 파장은 전방위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ABB'(Anything But Biden)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바이든 정책을 완전히 지우고 트럼프식 어젠다를 관철하려고 할 공산이 크다.

가장 먼저 바이든의 개입주의를 비판하며 신고립주의 기치 하에 국제분쟁에서 발을 빼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기 종식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에 방위비 분담을 늘리라고 요구했던 트럼프가 이번에는 나토를 아예 탈퇴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경제적으로는 재선 공약인 '어젠다 47'에서 드러나듯이 미국 중심의 중상주의로 돌아가면서 보호무역이 더 강화될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 2019년 6월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인사한 뒤 남측 지역으로 이동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반도 문제는 어떨까. 우선 바이든의 가치외교와 동맹중시 정책에 터잡았던 한미일 공조체제에 상당한 변화 가능성이 있다. 한미일 정상은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에 모여 3국 안보협력을 강화했는데, 이를 어떻게 계승할지 물음표다. 트럼프는 집권 1기에 한국에 방위비 분담을 5배 가량 요구해 한미 간의 긴장을 높인 바 있다.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수준과 신뢰도도 주목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일체형 핵우산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던 것을 그대로 유지할지 두고 볼 일이다.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이 불충분하다고 비칠 경우 한국 내에서 독자 핵무장론이 재부상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한미동맹에 중대한 도전 요인이 될 수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브로맨스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한반도 정책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북한의 핵동결을 대가로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거래를 구상하고 있다는 최근 보도는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한국이 사실상 배제된 채 미국과 북한이 담판을 짓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트럼프 재집권 시나리오가 우리 외교안보의 리스크 요인임에는 틀림 없다. 그렇다고 걱정만 할 수는 없다. 이미 트럼프 1기를 경험했던 우리로서는 불가측한 정책의 변화 가능성에 대비해 정부와 민간 가리지 않고 공공외교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며 트럼프 측과 소통 채널을 서둘러 구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트럼프 2기 역시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다.

r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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