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석상에서 ‘카르텔’ 꺼낸 과기 차관, ‘개인 발언’이라며 손절한 장관
“R&D혁신, 카르텔 아닌 재구조화 문제”
조 차관과 이견설은 ‘부정’
”예산삭감, 현장 소통 없어서 죄송… 체계 탈피 위한 작은 고통”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2일 조성경 과기정통부 1차관이 최근 공식석상에서 ‘과학기술계 카르텔’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해 “정부의 공식 의견이 아닌 개인적 의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연구개발(R&D) 카르텔 문제를 내세우며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촉발된 논란에 대해 정부가 ‘소통 부족’을 인정하며 한동안 진정 국면으로 들어가던 상황에서 과학계 카르텔 논란에 다시 불씨를 지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장관은 이날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과기정통부의 내년도 확정 예산안을 설명하는 브리핑에서 조 차관의 카르텔 발언과 관련해 “저는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에게 단 한 번도 그런 표현을 쓴 적이 없다”며 이같이 답했다.
논란은 조 차관이 이달 12일 대전 유성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제74회 대덕이노폴리스포럼’에 참석해 과학기술계의 카르텔을 8가지 구체적 사례로 언급하면서 촉발됐다. 조 차관은 우선 정부출연구기관이 기업체에 사업을 주고, 사업 일부를 출연연이 지정한 교수에게 주는 편법을 카르텔로 꼽는 등 주요 사례를 소개했다. 출연연이 수년간 내용은 같으면서도 제목만 바꿔가며 연구를 지속하는 경우를 언급하면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사용후 핵원료 분야”라고 특정 분야를 콕 집어 제시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과기정통부는 과기계를 카르텔로 지목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었다.
조 차관의 이날 발언은 과기정통부를 포함한 정부가 예산 삭감의 근거가 된 R&D 카르텔 사례를 모호하게 제시한다는 지적이 쏟아지면서 좀더 분명한 사례를 제시하기 위해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학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면서 정부가 소통 부족과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메시지로 소통하며 최근 과학계와 신뢰를 다시 쌓아오던 과정에서 다시 꺼낸 강성 발언이어서 배경에 의구심이 쏠렸다.
이 장관은 이날 관련 질문이 쏟아지자 “(조 차관의 발언은) 내부에서 논의한 바조차 없고, 혹시 과기정통부 직원들이 만든 얘기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라며 “연구개발(R&D) 혁신은 R&D 재구조화의 문제지 카르텔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어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열과 성을 다한 덕분에 한국의 연구력이 세계 수준에 근접하거나 넘어서는 역량을 갖췄다. 그분들께 늘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나눠 먹기’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언론이 많이 쓴 용어”라며 “전체적으로 (R&D 예산의) 낭비적 요소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조 차관이 공식 석상에서 한 발언에 이 장관이 “개인적 의견”이라며 선을 긋자, 장관과 차관 사이에 이견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 장관은 이에 “개인이 무슨 말을 하는 걸 따라다니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조 차관과)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올해보다 4조6000억원 줄어든 R&D 예산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뤘다.
이 장관은 이에 대해 “예산안 준비 과정에서 연구 현장과 충분히 소통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며 “우리가 세계 최소 수준의 R&D 경쟁력을 갖기 위해 군살을 빼고 근육을 붙여가자는 취지로, 예산이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과학기술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삭감된 예산으로 연구실을 꾸려야 하는 일선 연구자들에게는 “삭감률이 정부원안보다 대폭 낮아졌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실까 생각한다”며 “기존 체계에서 다른 체계로 탈피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작은 고통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이 장관은 과기계가 가장 우려했던 학생 연구자 인건비 예산 문제를 두고, 인건비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초연구 예산이 계속 과제 기준 25% 삭감에서 10% 삭감 수준으로 회복됐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부분들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말했다. 또 재정 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서울대마저 예산 삭감에 따른 난색을 보인 데 대해 “연구비 중 학생 인건비 비중을 늘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학생 인건비 풀링제(학생인건비 기관단위 통합)를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부족한 부분은 교육부와의 협의를 통해 장학금이나 장려금 형태로 보충하겠다”고 했다.
‘나눠 먹기’의 대표적 사례로 꼽혔던 기업 R&D 인건비가 오히려 1782억원 늘어났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기업 유지에 R&D 비용을 쓰는 것은 목적에 맞지 않다”면서도 “다만 매몰 비용이라든지 갑작스러운 부분에 대한 인건비를 보존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국민주의 배신… 삼성전자 미보유자 수익률이 보유자의 3배
- [똑똑한 증여] “돌아가신 아버지 채무 6억”… 3개월 내 ‘이것’ 안 하면 빚더미
- “진짜 겨울은 내년”… 세계 반도체 장비 공룡들, 대중 반도체 제재에 직격타
- 오세훈의 '미리 내 집' 경쟁률 50대 1 넘어… 내년 '청달르엘·잠래아' 등 3500가구 공급
- 특급호텔 멤버십 힘주는데... 한화, 객실 줄인 더플라자 유료 멤버십도 폐지
- 中 5세대 스텔스 전투기 공개… 韓 ‘보라매’와 맞붙는다
- 배터리 열폭주 막을 열쇠, 부부 교수 손에 달렸다
- 사람도 힘든 마라톤 완주, KAIST의 네발로봇 ‘라이보2’가 해냈다
- '첨단 반도체 자립' 갈망하는 中, 12인치 웨이퍼 시설 설립에 6조원 투입
- “교류 원한다면 수영복 준비”… 미국서 열풍인 사우나 네트워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