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의 ‘약속큐브’...“기존 성별 기호는 틀렸다”[신간]
선견지명이었을까. 잘 나가던 주얼리 디자이너 홍성민 씨는 벌써 20년 전에 남녀 기호가 구시대적이며, 사회적으로 여성과 남성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성 고정관념을 부채질한다고 봤다. 그리고 2000년 마침내 새로운 남녀 기호를 창작하더니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을 거쳐 생활과 문화 속 콘텐츠로 다양한 확장을 거듭해왔다.
신간 ‘약속큐브’(프로그스텝)는 홍성민 작가가 창작한 새로운 남녀 기호가 내포하는 의미와 상징을 설명하고, 이 기호가 실생활 속에서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확장되어 활용되는 모습을 담은 20년의 기록이다.
남성과 여성은 우열을 겨루는 경쟁의 상대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상생의 짝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며 공격하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불거지더니 나날이 심화돼 우려를 낳고 있다.
홍 작가는 ‘약속큐브’에서 남성, 여성이기 전에 우리 모두가 같은 ‘사람’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남녀 간의 갈등을 불식시키는 첫걸음임을 강조한다. 작가는 오랫동안 긴 머리의 남성 주얼리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성 고정관념에 따른 많은 오해와 편견을 받아 왔다. 그런 그가 기존의 남·여 기호에 의심을 품고 새로운 사람의 기호를 구상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자 사명이었다.
홍 작가는 “미의 신 비너스의 손거울을 의미하는 여성 기호는 가족의 생계를 짊어졌던 강인한 어머니와 어울리지 않았고, 전쟁의 신 마르스의 창과 방패를 의미하는 남성 기호는 어머니 대신 동생의 밥상을 차려주고 곧잘 아름다운 시와 그림에 매혹되던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며 “그래서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새로운 사람의 기호에 대해 고민하고 끄적이며 시간을 보냈다”라고 새로운 남·여 기호를 제안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이어 그는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람의 기호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존중하는 가치가 담겨있어야 한다. 비단 남녀 간의 갈등뿐 아니라 세대, 장애, 인종, 지역, 문화, 빈부, 직업, 정치적 성향 등 생각의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고 서로를 고정관념의 틀에 가두어 편을 갈라 싸우는 세상 속에서 평등, 평화, 공존의 가치를 일깨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힘(╋)과 포용(○)의 상징을 결합해 사람에 대한 새로운 기호를 제안한다. 남성을 상징하는 기호는 공격하고 파괴하는 무기를 든 남성♂을 거부하고, 변화와 도전의 힘(╋)에서 시작해 소중함을 지키는 포용(○)을 결합했다. 여성을 상징하는 기호는 눈비음 즉, 남의 눈에 좋게 보이도록 겉으로만 꾸미는 일을 거부하고 공감과 조화의 포용(○)에서 시작해 이를 연결하는 힘(╋)이 결합한 것이다.
남녀 새로운 기호에서 그치지 않고 작가는 한발 더 나아가 불완전한 남성과 여성이 하나가 되었을 때 완전한 존재인 ‘약속’ 기호도 만들었다. “약속기호는 사람과 사람의 결합과 소통,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를 채워나가는 것을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약속큐브는 국내외 학교와 국립여성사전시관, 고양어린이박물관 등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문화다양성교육과 양성평등교육에 활용됐다. 홍 작가는 주얼리 디자이너이자 설치 미술가, 문학가의 재능을 발휘해 이를 주제로 한 예술작품을 선보이고, 각종 교구 개발, 도서 제작까지 해왔다.
약속큐브의 20년을 기록한 이 책은 ‘약속큐브 설명서’다. 남녀 기호를 떠나, 구상과 창작 그리고 활용까지 일련의 과정을 벤치마킹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용한 실용서다.
홍성민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국제 보석디자인 콘테스트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주얼리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쳤다. 경기대학교에서 예술과 주얼리 디자인을 가르쳤다. 남녀 및 약속 기호와 약속 큐브를 만든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이를 알리며 디자인과 철학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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