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검정고무신’ 사태 막아야 콘텐츠 강국”

김형주 기자(livebythesun@mk.co.kr) 2023. 12. 2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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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복 예술인권리보장위원장 인터뷰
불공정 계약에 지쳐 세상 떠난
이우영 작가 비극 반복돼선 안돼
갑질에 취약한 문화예술인들
피해 접수·조사해 권리 구제
예술인권리보장센터 이달 신설
법률 상담·의식 향상 교육도
김기복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위원장을 최근 서울 중구 예술인권리보장센터에서 만났다. 이충우 기자
지난 7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의 작가 고 이우영씨 측에 미분배된 수익을 출판사가 지급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씨와 출판사는 ‘검정고무신’의 수익을 두고 2019년부터 수년째 법정 공방을 이어왔었다. 지난 2020년 “불공정 계약에 지쳤다”며 창작 포기 선언을 하기도 한 이씨는 올해 3월 인천 강화군의 한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문체부의 이 시정명령은 예술인 권리보장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 위원회(이하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의 심의 결과에 따라 내려졌다.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는 예술인권리보장법에 따라 예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을 수립·시행하고, 대금 미지급과 성폭력 등 권리 침해 행위에 대한 신고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관이다. 위원회가 지난 9월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시행된 후 현재(이달 11일 기준)까지 1년 동안 심의·의결한 신고 사건은 예술인신문고로 접수된 전체 198건 중 94건에 달한다. 사건 조사를 담당하는 문체부 직원이 3명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위원회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문체부는 지난 19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빌딩 3층에 예술인권리보장센터를 개소했다. 센터는 예술인 권리 침해 사건에 대한 신고·상담 창구 운영, 사건 조사, 피해자 지원 등 위원회의 피해 구제 절차 전 과정을 아우를 예정이다. 김기복 예술인권리보장위원장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이곳저곳에 산재돼 진행하던 위원회의 업무를 한 곳에서 수행할 수 있게 됐다”며 “위원회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문체부 조사관들이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KBS 공채 TV 연기자 9기 출신으로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사무국장(1999~2005),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이사장(2009~2021),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부이사장(2010~2016, 2020~2022), 문체부 문화예술공정위원회 위원 및 위원장(2015~2020) 등을 지냈다. 드라마 ‘용의 눈물’ ‘대조영’ ‘징비록’ 등에 출연하며 연기에 매진하면서도 동료 예술인들의 권익을 위해 힘썼다. 중앙대 영상학과에서 받은 박사 학위의 논문 주제 역시 ‘시청각실연자의 권리 보호에 관한 연구’였다. 김 위원장은 “연기자 생활을 하며 현장에서 부당한 일을 많이 경험했다”며 “동료들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 나서다 보니 이 일에 젊음을 바치게 됐다”고 밝혔다.

예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이어지는 이유는 그동안 문화예술계에서 예술인들에 대한 착취가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의 권력 관계와 도제식 문화 등으로 인해 예술인들은 부당한 일을 당해도 구제를 받기 힘들었다.

예술인들이 겪는 권리 침해의 다수는 수익 미분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예술인권리보장법 이 시행된 후 접수된 예술인신문고 신고 현황을 보면 전체 198건 중 수익배분 거부·지연·제한이 118건으로 59.6%에 달했다. 김 위원장은 “예술인들에게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으면 문화예술이 융성할 수 없다”며 “K문화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예술인들을 착취하는 문화예술계의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예술인들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 무엇보다 예술인들 스스로 정당한 대가를 주고 받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예술 용역을 할 때 반드시 계약 내용을 꼼꼼히 살피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당당히 권리를 주장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스퀘어 빌딩에 예술인권리보장센터와 나란히 위치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인의 권리 의식 향상을 위한 교육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이달 4일 기준) 4만73명에게 저작권과 노동인권, 예술인권리보장법의 내용과 예술 용역 표준계약서 활용 방법 등을 교육했고, 예술 계약과 관련한 법률 상담을 상시 운영하며 952건의 상담을 진행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시행 2년차를 맞았고 예술인권리보장센터가 개소되는 등 예술인 권익 향상을 위한 제도가 자리를 잡고 있지만 부족한 점도 많다. 지난 1년간 예술인신문고 신고 사건에서 절반만 심의·의결이 이뤄졌고 신고 후 심의·의결이 이뤄지는 데 평균 3개월이 넘게 소요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위원회와 재단, 문체부가 총력을 다해 사건 처리에 매진하고 있지만 예술인 입장에서 3개월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면 도움을 받는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라며 “예술인권리보장센터 개소를 계기로 인력과 자원을 정비해 예술인 권리 보장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서울 중구 예술인권리보장센터에서 김기복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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