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당 합법화로 양당구도 균열내야”[만나고 싶었습니다](1)
2023. 12. 22. 16:02
윤현식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장 인터뷰
지역소멸, 저출생, 돌봄, 노동 등 유권자의 삶과 직결된 시급한 문제에 대해 지금의 양당체제는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표의 비례성을 강화하고 다양한 정치세력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는 선거제 개편에 대해 정치권 안팎의 요구가 확대되는 이유다. 양당의 선거제 개편 논의는 그러나 ‘병립형’ 회귀로 퇴행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지역정당>(윤현식·산지니)은 “공직선거법은 현재 의석의 다수를 점유하는 정당에 유리한 선거방식을 보장하기에 기득권을 가진 다수의석이 정당을 쉽게 바꿔주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하며, 그보다는 지역정당 합법화가 “한국의 기형적인 정치구도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1962년 그 틀이 만들어진 정당법은 ‘정당은 수도에 중앙당을 두고 5개 광역자치단체에 시·도당을 설립해야 하고, 시·도당은 1000명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지역정당>은 정당법이 “전국적 조직망을 갖춘 일정한 규모의 정당으로서 중앙집권적 관리체계를 보유한 정당이 아니면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집권 유지 의도를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2월 20일 윤현식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장을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선거법 개정보다 정당법 개정을 통한 ‘지역정당 합법화’가 거대양당의 정치적 독점에 균열을 내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의 양당은 유권자들에게 ‘이러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쟤가 나보다 못났다’는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치는 시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채 누가 후보로 나왔고,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만 부각된다. 결국 ‘내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 거대양당의 정치구조를 만든 근거에 균열을 내야 하는 상황인데, 선거법 개정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 당사자들의 기득권이 달린 문제이다 보니 고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선거법은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정당법은 그러나 구조 자체가 위헌 시비에 휘말리고 있으며, 법·정책적으로 획기적인 변화의 요구를 계속해서 받고 있다. 선거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선거법 개정안에 들이는 노력의 100분의 1만 정당법 개정에 들여도 지역정당이 허용되고, 이 양당체제 기반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예컨대 ‘대구당’이 생긴다거나 ‘광주당’이 생긴다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힘이 깨지기 시작하지 않겠나.”
-지난 9월 헌법재판소는 지역정당 설립을 금지한 정당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다만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광역자치단체에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되며, 정당은 5개 광역자치단체에 시·도당을 설립해야 한다’는 내용인 제4조, 제17조 등에 대해 합헌 4, 위헌 5로 ‘정당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위헌의견이 우세했다.
“2006년에도 헌법소원이 있었으나 전원일치로 합헌 판단을 내렸다. 위헌결정 정족수인 6명에 미치지 못했지만, 17년 만에 5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는 것은 굉장한 진척이다. 2006년이나 지금이나 지역정당을 금지하는 이유로 ‘지역감정 심화’가 거론된다. 하지만 사실 지역감정은 지역감정에 기대 정치를 하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조장하고 있다. 지역감정이 완화되거나 지역감정이 지금과 다른 현상으로 나타나는 순간 양당의 지역적 지지기반 자체가 사라지게 돼 양당은 지역감정을 유발하거나 조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지역감정 심화’를 거론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판단은 대단히 현실을 오도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감정에는 영·호남 간의 지역감정만 있지 않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또 수도권 내에서도 서울과 경기도 간의 지역감정도 상당히 문제가 된다. 예컨대 쓰레기매립장이나 발전소 건립 등을 둘러싼 갈등은 누가 해소할 수 있나. 밀양송전탑 건설이나 사드 배치 문제는 또 어떤가. 서울의 이익을 반영한 중앙정치의 이해관계 때문에 지역주민의 문제 제기나 항변이 다 묻혀버린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목소리를 ‘님비(NIMBY)’로 치부한다. 왜 어떤 갈등은 공적인 갈등임에도 정치적 쟁점이 아니라 개인적 이기심의 표출로 평가돼야 하나. 지역적 사안일 경우엔 왜 그것이 정치가 아니라 님비가 돼야 하나. 이런 지역감정을 서울 중심의 전국정당인 양당이 해결해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결국 그 주민들이 직접 정치세력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지역정당이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정당법 체계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2년 만들어졌다. 후보와 정당의 난립을 금지한다는 명분이었다. 해외는 어떤가.
“제6공화국을 넘어서 제7공화국으로 가자는 논의가 나오는데, 정당법은 제6공화국도 아니고 1962년에 만들어놓은 기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정당법은 정당의 창당과 활동에 강력한 규제를 가함으로써 보수적 성향의 양당체제로 정당구조를 견인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60년이 넘게 흘러오면서 그 기획의도대로 고착이 되고 있다. 현행 정당법이 정하고 있는 이 구조는 전 세계적으로도 아주 독특하다. 먼저 많은 나라가 정당법을 제정하지 않고 있다. 정당법을 시행하고 있더라도 우리와 유사한 형태의 정당법을 가진 국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특히 OECD 당사국을 비롯해 안정된 대의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당정치를 추구하는 국가 중 이처럼 규제 일변도인 정당법을 가진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독일은 정당법이 있고 정당의 구성에 관한 여러 규정을 두고 있으나, 등록에 관한 사항은 선거법에 의한다. 정당의 등록취소와 관련해 정당이 연방선거 또는 주의회 선거에 6년 동안 참여하지 않으면 정당으로서 법적 지위를 상실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선거에 후보가 출마했는지 여부가 기준이다. 한국처럼 중앙당을 수도에 반드시 두어야 한다는 규정을 가진 국가는 튀르키예밖에 없다. 이처럼 비교법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힘든 강력한 등록요건은 굉장히 문제가 있고, 민주화된 국가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법체계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1석씩 나눠가진 무투표 당선 선거구가 많아 논란이 됐다. 양당의 폐쇄적 담합구조로 지방선거는 요식행위가 됐고, 지역정치는 형해화됐다고 지적했던데….
“서울 중심으로 정치를 하는 국회의원들은 지역을 생각하지 않는다. 양당의 독점적 구조하에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공천을 좌우하면서 지방선거는 공천 자체가 당선이 돼버렸다. 지역구 국회의원에게만 잘 보이면 되니 지방의원들은 지역정치를 잘할 필요가 없다. ‘조폭논리’만이 작동하면서 지역정치는 완전히 형해화됐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지방자치’는 ‘행정자치’에 불과하고 ‘행정자치’도 중앙정부의 권한이 막강하다 보니 그냥 중앙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는 수준이다. 2018년 3월 문재인 정부가 제출한 10차 헌법개정안에는 연방제형 분권국가를 지향한다던 당시 정부의 입장이 반영돼 ‘자치와 분권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사실 그 정도의 분권을 하려면 ‘자치입법’, ‘자치행정’, ‘자치재정’ 등이 강화돼야 하고, 무엇보다 주민의 삶과 직결된 ‘지역정치’가 살아나야 한다. 지역정치를 통해 지역의 의제를 만들고, 의제를 실현하기 위한 구조를 만들어야 지방행정도 이를 따라 움직일 수 있다. 양당의 폐쇄적인 독점 구조하에 지역정치가 서울에 종속돼 고사한 상황에서는 ‘분권자치’가 나올 수 없다.”
-지역정당 창당모임인 은평민들레당 운영위원이다.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그밖에 지역정당 창당모임으로 직접행동영등포당, 과천시민자치당, 진주같이 등이 있다. 지역정당이 허용된다면 주로 시·군·구 기초단위에서 만들어지리라고 보나.
“은평민들레당은 구정 감시, 구의회 감시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제3당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진보정당들보다 더 잘한다고 자부한다. 은평구에서 봉산 편백나무숲을 조성한다면서 기존의 자연녹지를 상당한 규모로 훼손하고 있다. 은평민들레당이 처음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진보정당들이 결합해 대응하고 있다. 거대양당이 자신들의 치적으로 홍보하는 혁신파크 개발, 서울시 대중교통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은평민들레당이 주도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혁신파크를 어떻게 하면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제안 등이다. 시·군·구 기초자치 단위로 지역정당 창당모임이 활발한 편이지만, 얼마 전 전북도에서는 전북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추진된 바 있다. ‘새로운 대구를 열자’는 조직도 오래전부터 활동하는 등 광역 단위에서도 지역정당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있었다. 아직 한국은 지역정당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없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의 시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정당은 정치활동을 위한 공간과 의제가 지역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전국정당과 달리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에 단독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다만 정당법 외에 정치자금법이나 선거법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면 총선과 같은 전국단위의 선거에서 지역정당과 전국정당이 연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수정당 중에는 지역 조직을 갖지 못한 전국정당이 많다. 지역정당이 소수정당과 결합해 공동대응을 할 수 있고, 또 반대로 지방선거에서 소수정당이 지역정당의 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다. 또 광역자치단체 규모의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정당이 지역구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할 수 있을지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중앙정치가 지역을 대변하지 못하면서 ‘지역소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정당이 허용된다면 GTX 사업이나 신도시 건설 등 수도권 확대 일변도의 정책에 대항할 수 있을까.
“막기는 어렵다고 본다. 오히려 지금 진짜 문제는 ‘막을 수 있냐’보다는 이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정치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의 거대양당이 이야기하는 ‘지역발전’은 ‘서울 따라 하기’다. 오로지 기준은 서울인데 과연 그것만이 지역균형발전의 방향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 다른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정치적 발언을 하는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물론 지역정당이 생기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강하게 ‘서울’을 기준으로 지역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정당이 많이 만들어지면 그중 몇 개의 지역정당에서는 ‘우리는 새만금 필요 없다’, ‘우리는 공항 필요 없다’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삶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많이 퍼지게 되면 또 다른 형태의 사회적 담론이 만들어지리라 생각한다.”
-지역정당을 허용하면 지역유지나 토호들이 가장 먼저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가장 우려하는 문제다. 이들은 지역에 인맥도 있고 돈도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가장 쉽게 또 힘있게 지역정당을 만들 수 있다. 정당법이 개정되면 이들이 나오는 건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사실 지금도 지역의 토호세력은 거대양당의 정치권과 결탁돼 있다. 양당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지역 토호들이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만약에 이들이 지역정당을 만들어 활동하면 오히려 더 투명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또 정당은 선거를 통해 심판을 받는다. 일본의 지역정당인 오사카유신회의 맹주였던 하시모토 도루도 오사카를 장악했다고 평가받았으나 결국 선거로 심판받고 은퇴 선언까지 했다. 지역정당을 허용하면 지역의 토호들을 막을 방법은 없겠지만, 오히려 양상은 지금과 다를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정당 간의 경쟁이 이루어진다면 공직사회의 투명성에 대한 요구 역시 거부할 수 없는 지역의 의제가 될 것이다. 지방행정이 투명하게 공개되면 폐쇄적 친분에 따른 관과 토호의 유착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거대양당 외에는 의미 있는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정치가 지역정당으로 인해 전개될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지역소멸, 저출생, 돌봄, 노동 등 유권자의 삶과 직결된 시급한 문제에 대해 지금의 양당체제는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표의 비례성을 강화하고 다양한 정치세력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는 선거제 개편에 대해 정치권 안팎의 요구가 확대되는 이유다. 양당의 선거제 개편 논의는 그러나 ‘병립형’ 회귀로 퇴행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지역정당>(윤현식·산지니)은 “공직선거법은 현재 의석의 다수를 점유하는 정당에 유리한 선거방식을 보장하기에 기득권을 가진 다수의석이 정당을 쉽게 바꿔주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하며, 그보다는 지역정당 합법화가 “한국의 기형적인 정치구도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1962년 그 틀이 만들어진 정당법은 ‘정당은 수도에 중앙당을 두고 5개 광역자치단체에 시·도당을 설립해야 하고, 시·도당은 1000명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지역정당>은 정당법이 “전국적 조직망을 갖춘 일정한 규모의 정당으로서 중앙집권적 관리체계를 보유한 정당이 아니면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집권 유지 의도를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2월 20일 윤현식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장을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선거법 개정보다 정당법 개정을 통한 ‘지역정당 합법화’가 거대양당의 정치적 독점에 균열을 내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의 양당은 유권자들에게 ‘이러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쟤가 나보다 못났다’는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치는 시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채 누가 후보로 나왔고,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만 부각된다. 결국 ‘내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 거대양당의 정치구조를 만든 근거에 균열을 내야 하는 상황인데, 선거법 개정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 당사자들의 기득권이 달린 문제이다 보니 고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선거법은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정당법은 그러나 구조 자체가 위헌 시비에 휘말리고 있으며, 법·정책적으로 획기적인 변화의 요구를 계속해서 받고 있다. 선거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선거법 개정안에 들이는 노력의 100분의 1만 정당법 개정에 들여도 지역정당이 허용되고, 이 양당체제 기반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예컨대 ‘대구당’이 생긴다거나 ‘광주당’이 생긴다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힘이 깨지기 시작하지 않겠나.”
-지난 9월 헌법재판소는 지역정당 설립을 금지한 정당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다만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광역자치단체에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되며, 정당은 5개 광역자치단체에 시·도당을 설립해야 한다’는 내용인 제4조, 제17조 등에 대해 합헌 4, 위헌 5로 ‘정당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위헌의견이 우세했다.
“2006년에도 헌법소원이 있었으나 전원일치로 합헌 판단을 내렸다. 위헌결정 정족수인 6명에 미치지 못했지만, 17년 만에 5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는 것은 굉장한 진척이다. 2006년이나 지금이나 지역정당을 금지하는 이유로 ‘지역감정 심화’가 거론된다. 하지만 사실 지역감정은 지역감정에 기대 정치를 하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조장하고 있다. 지역감정이 완화되거나 지역감정이 지금과 다른 현상으로 나타나는 순간 양당의 지역적 지지기반 자체가 사라지게 돼 양당은 지역감정을 유발하거나 조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지역감정 심화’를 거론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판단은 대단히 현실을 오도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감정에는 영·호남 간의 지역감정만 있지 않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또 수도권 내에서도 서울과 경기도 간의 지역감정도 상당히 문제가 된다. 예컨대 쓰레기매립장이나 발전소 건립 등을 둘러싼 갈등은 누가 해소할 수 있나. 밀양송전탑 건설이나 사드 배치 문제는 또 어떤가. 서울의 이익을 반영한 중앙정치의 이해관계 때문에 지역주민의 문제 제기나 항변이 다 묻혀버린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목소리를 ‘님비(NIMBY)’로 치부한다. 왜 어떤 갈등은 공적인 갈등임에도 정치적 쟁점이 아니라 개인적 이기심의 표출로 평가돼야 하나. 지역적 사안일 경우엔 왜 그것이 정치가 아니라 님비가 돼야 하나. 이런 지역감정을 서울 중심의 전국정당인 양당이 해결해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결국 그 주민들이 직접 정치세력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지역정당이 출발점이 될 것이다.”
“지역정당을 금지하는 이유로 ‘지역감정 심화’가 거론된다. 그러나 지역감정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조장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또 서울과 경기도 간 지역감정도 상당한 문제다. 매립장 문제는 공적인 갈등인데 님비로 치부된다.”
-정당법 체계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2년 만들어졌다. 후보와 정당의 난립을 금지한다는 명분이었다. 해외는 어떤가.
“제6공화국을 넘어서 제7공화국으로 가자는 논의가 나오는데, 정당법은 제6공화국도 아니고 1962년에 만들어놓은 기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정당법은 정당의 창당과 활동에 강력한 규제를 가함으로써 보수적 성향의 양당체제로 정당구조를 견인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60년이 넘게 흘러오면서 그 기획의도대로 고착이 되고 있다. 현행 정당법이 정하고 있는 이 구조는 전 세계적으로도 아주 독특하다. 먼저 많은 나라가 정당법을 제정하지 않고 있다. 정당법을 시행하고 있더라도 우리와 유사한 형태의 정당법을 가진 국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특히 OECD 당사국을 비롯해 안정된 대의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당정치를 추구하는 국가 중 이처럼 규제 일변도인 정당법을 가진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독일은 정당법이 있고 정당의 구성에 관한 여러 규정을 두고 있으나, 등록에 관한 사항은 선거법에 의한다. 정당의 등록취소와 관련해 정당이 연방선거 또는 주의회 선거에 6년 동안 참여하지 않으면 정당으로서 법적 지위를 상실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선거에 후보가 출마했는지 여부가 기준이다. 한국처럼 중앙당을 수도에 반드시 두어야 한다는 규정을 가진 국가는 튀르키예밖에 없다. 이처럼 비교법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힘든 강력한 등록요건은 굉장히 문제가 있고, 민주화된 국가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법체계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1석씩 나눠가진 무투표 당선 선거구가 많아 논란이 됐다. 양당의 폐쇄적 담합구조로 지방선거는 요식행위가 됐고, 지역정치는 형해화됐다고 지적했던데….
“서울 중심으로 정치를 하는 국회의원들은 지역을 생각하지 않는다. 양당의 독점적 구조하에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공천을 좌우하면서 지방선거는 공천 자체가 당선이 돼버렸다. 지역구 국회의원에게만 잘 보이면 되니 지방의원들은 지역정치를 잘할 필요가 없다. ‘조폭논리’만이 작동하면서 지역정치는 완전히 형해화됐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지방자치’는 ‘행정자치’에 불과하고 ‘행정자치’도 중앙정부의 권한이 막강하다 보니 그냥 중앙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는 수준이다. 2018년 3월 문재인 정부가 제출한 10차 헌법개정안에는 연방제형 분권국가를 지향한다던 당시 정부의 입장이 반영돼 ‘자치와 분권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사실 그 정도의 분권을 하려면 ‘자치입법’, ‘자치행정’, ‘자치재정’ 등이 강화돼야 하고, 무엇보다 주민의 삶과 직결된 ‘지역정치’가 살아나야 한다. 지역정치를 통해 지역의 의제를 만들고, 의제를 실현하기 위한 구조를 만들어야 지방행정도 이를 따라 움직일 수 있다. 양당의 폐쇄적인 독점 구조하에 지역정치가 서울에 종속돼 고사한 상황에서는 ‘분권자치’가 나올 수 없다.”
-지역정당 창당모임인 은평민들레당 운영위원이다.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그밖에 지역정당 창당모임으로 직접행동영등포당, 과천시민자치당, 진주같이 등이 있다. 지역정당이 허용된다면 주로 시·군·구 기초단위에서 만들어지리라고 보나.
“은평민들레당은 구정 감시, 구의회 감시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제3당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진보정당들보다 더 잘한다고 자부한다. 은평구에서 봉산 편백나무숲을 조성한다면서 기존의 자연녹지를 상당한 규모로 훼손하고 있다. 은평민들레당이 처음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진보정당들이 결합해 대응하고 있다. 거대양당이 자신들의 치적으로 홍보하는 혁신파크 개발, 서울시 대중교통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은평민들레당이 주도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혁신파크를 어떻게 하면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제안 등이다. 시·군·구 기초자치 단위로 지역정당 창당모임이 활발한 편이지만, 얼마 전 전북도에서는 전북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추진된 바 있다. ‘새로운 대구를 열자’는 조직도 오래전부터 활동하는 등 광역 단위에서도 지역정당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있었다. 아직 한국은 지역정당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없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의 시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정당은 정치활동을 위한 공간과 의제가 지역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전국정당과 달리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에 단독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다만 정당법 외에 정치자금법이나 선거법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면 총선과 같은 전국단위의 선거에서 지역정당과 전국정당이 연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수정당 중에는 지역 조직을 갖지 못한 전국정당이 많다. 지역정당이 소수정당과 결합해 공동대응을 할 수 있고, 또 반대로 지방선거에서 소수정당이 지역정당의 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다. 또 광역자치단체 규모의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정당이 지역구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할 수 있을지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중앙정치가 지역을 대변하지 못하면서 ‘지역소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정당이 허용된다면 GTX 사업이나 신도시 건설 등 수도권 확대 일변도의 정책에 대항할 수 있을까.
“막기는 어렵다고 본다. 오히려 지금 진짜 문제는 ‘막을 수 있냐’보다는 이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정치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의 거대양당이 이야기하는 ‘지역발전’은 ‘서울 따라 하기’다. 오로지 기준은 서울인데 과연 그것만이 지역균형발전의 방향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 다른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정치적 발언을 하는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물론 지역정당이 생기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강하게 ‘서울’을 기준으로 지역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정당이 많이 만들어지면 그중 몇 개의 지역정당에서는 ‘우리는 새만금 필요 없다’, ‘우리는 공항 필요 없다’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삶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많이 퍼지게 되면 또 다른 형태의 사회적 담론이 만들어지리라 생각한다.”
-지역정당을 허용하면 지역유지나 토호들이 가장 먼저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가장 우려하는 문제다. 이들은 지역에 인맥도 있고 돈도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가장 쉽게 또 힘있게 지역정당을 만들 수 있다. 정당법이 개정되면 이들이 나오는 건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사실 지금도 지역의 토호세력은 거대양당의 정치권과 결탁돼 있다. 양당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지역 토호들이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만약에 이들이 지역정당을 만들어 활동하면 오히려 더 투명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또 정당은 선거를 통해 심판을 받는다. 일본의 지역정당인 오사카유신회의 맹주였던 하시모토 도루도 오사카를 장악했다고 평가받았으나 결국 선거로 심판받고 은퇴 선언까지 했다. 지역정당을 허용하면 지역의 토호들을 막을 방법은 없겠지만, 오히려 양상은 지금과 다를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정당 간의 경쟁이 이루어진다면 공직사회의 투명성에 대한 요구 역시 거부할 수 없는 지역의 의제가 될 것이다. 지방행정이 투명하게 공개되면 폐쇄적 친분에 따른 관과 토호의 유착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거대양당 외에는 의미 있는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정치가 지역정당으로 인해 전개될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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