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한가운데로 떠나는 모험[그림책]
슬픔의 모험
곤도 구미코 글·그림|신명호 옮김|여유당|40쪽|1만5000원
누구나 상실의 아픔을 겪는다.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상실이 주는 아픔을 잘 알기에, 어른들은 어린이가 슬픔에 빠지는 걸 원치 않는다. 하루빨리 슬픔에서 빠져나와 밝음과 명랑함을 되찾길 바란다. 하지만 어른들은 알고 있다. 슬픔의 가장 깊은 곳을 온전히 통과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회복 또한 요원하다는 것을.
곤도 구미코의 <슬픔의 모험>은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난 후 슬픔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아이의 마음을 글 없이 그림과 소리로만 전달한다. 본문에 텍스트는 단 두 문장 뿐이다. “오늘 캔디가 죽었다”로 시작해 “오늘 캔디는 죽었다”로 끝난다. “캔디가 죽었다”가 “캔디는 죽었다”는 문장으로 바뀌기까지 아이가 경험한 감정의 진폭과 슬픔의 높낮이를 책은 놀랍도록 풍부하고 섬세한 그림으로 전달한다.
처음 나오는 그림은 어둡고 기괴한 느낌마저 풍긴다. 사당 같은 곳에 캔디를 묻고 나오는 길인 듯,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세발 자전거를 타고 하염없이 달린다. 돌로 포장된 숲길 주변으로 기괴한 표정의 나무와 동물들이 아이의 슬픔과 혼란을 보여준다. 캔디의 환영으로 보이는 검은 개가 앞장서 달리면, 아이는 ‘끼익 끼익’ ‘끼걱 끼걱’ 힘겹게 뒤를 쫓는다. 슬픔으로 폭주하는 아이의 마음을 잘 표현한 그림 사이에 숨은 그림처럼 그려놓은 강아지의 모습은 세상을 떠났지만 아이를 가득 채운 캔디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멀리 달아나는 것만 같던 캔디의 환영과 아이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진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캔디와 마주하자, 한 줄기 빛이 나무 가지 사이로 드리운다. 아이와 캔디는 이제 함께 달리기 시작하고, 화면의 색상은 풍부해진다. 페달을 밟는 아이의 발길에도 힘이 들어간다. 숲길을 벗어나 캔디와 함께 도착한 바다, 슬픔과 상실의 한가운데로 들어간 아이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듯 캔디와의 추억을 수많은 물방울 속에 담아 발산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슬픔의 5단계’인 부정-타협-분노-절망-수용을 그림책은 말 한마디 없이 표현한다. 깊은 상실과 슬픔의 감정은, 단정한 말보다는 작가가 빼곡히 그려놓은 상징들이 혼란스럽게 공존하는 그림에 가까울 것이다. 뮌헨국제어린이청소년도서관은 2022년 화이트 레이븐즈에 이 책을 선정하며 “혁신적인 그림책” “아이의 회복 탄력성과 삶의 순환을 묘사하고 있다”고 평했다. 상실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그림 속에서 자신의 마음 한 조각을 찾아내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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