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죽이는 아버지가 왜 늘어날까
2023. 12. 22. 16:00
올들어 9건으로 경제위기 때 증가…대부분 살해 후 자살 선택
“○○야, ○○이형! 많이 고마웠고 행복했어. 하늘나라에서 우리 많이 봐줘. 사랑해. 거기에서 행복하게 지내.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안녕!”
지난 12월 18일 전북 익산 팔봉동 주택가에 있는 한 카페를 찾았다. 카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유리문에는 남매의 친구가 쓴 것으로 보이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문고리에는 국화 한 송이가 가로 놓였다. 중학생, 초등학생이던 남매는 지난 12월 13일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남매의 아빠와 엄마도 같은 날 그들 곁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고사나 동반자살이 아니다. 경찰은 아버지 A씨(43)가 가족을 살해한 후 자살했다고 보고 있다.
심각한 범죄이자, 잔혹한 범죄다. A씨는 가장 가까운 이들을 살해했다. 성인이 되지 않은 남매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A씨의 결단에 목숨을 잃었다.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지만 A씨 역시 사망해 가해자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조차 없다. ‘일가족 동반자살’이 아니라 ‘가족 살해 후 자살’이라는 범죄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잔혹 범죄가 심심찮게 반복된다는 데 있다. 지난 12월 1일에는 울산에서 40대 가장이 일가족을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10월에는 부산과 울산에서, 지난 9월에는 전남 영암과 인천, 대전 그리고 서울에서 가족 살해 후 자살 사건이 잇따랐다. 문제적 개인들의 일탈행위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한 달에 한 번꼴로 반복되는 범죄는 사회문제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자살은 단일한 원인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익산 가족 살해 후 자살 사건도 그렇다. 다만 경제적 어려움이 여러 원인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주변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2018년 3월부터 집 근처 상가에서 카페를 운영했다. 한동안은 카페 운영에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이 시기 A씨는 지역사회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암이 집단 발병한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을 위해 수익 일부를 기부하는 일일 찻집을 여는가 하면, 독거노인에게 난방비를 지원했다. A씨의 아내는 카페 인근에 사회복지시설을 차렸다. 목회자이기도 했던 A씨는 일요일이면 카페를 예배당으로 활용했다.
대부분의 자영업자가 그랬듯, A씨의 사정은 2020년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면서 완전히 뒤바뀌었다.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A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기록들이다. 2020년 2월 29일에는 하루종일 3800원의 매출을 올렸다. 같은해 11월 28일에는 단 한 잔의 음료도 팔지 못했다. 그다음 달에는 “한 달 매출이 개업 후 가장 적다”고 썼고, 해가 바뀐 2021년 1월 말에는 “매출이 전 달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썼다. 코로나19에 취약하기는 A씨의 교회도, 아내의 사회복지시설도 마찬가지였다. 한번 끊긴 발길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인근 상인은 A씨 카페의 최근 상황에 대해 “손님이 많지 않았다”고 했다.
그사이 채무가 쌓였다. 2021년 말 A씨는 제2금융권에서 사는 아파트를 담보로 5000여만원을 빌렸다. 앞서 아파트를 담보로 한 8000여만원의 대출조차 아직 갚지 못한 상태에서 아파트 시세의 100% 수준까지 추가 대출을 받은 것이다.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 무렵 A씨는 종종 수억원대 채무에 대한 걱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돌파구를 찾으려던 걸까. 2023년 10월에는 전북 전주의 상가에 새로운 카페를 개업했다. 지하상가의 공실을 경매로 낙찰받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데 또다시 수천만원을 썼다. 월세 지출이 있는 익산 카페를 정리하고 전주 카페에 전념하려 했다고 한다. 인근 상인들은 “개업 떡과 샌드위치를 돌리는 등 의욕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2월 초에도 얼굴을 봤는데 이런 사건이 있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A씨는 그러나 지난 12월 7일 카페 인스타그램 계정에 “코로나19 때보다 어려운 이때를 잘 극복해볼게요”라고 썼다.
A씨의 가정은 정부의 위기가구 관리 대상은 아니었다. 주거지의 전기·가스·수도요금이 체납되면 위기가구 관리대상으로 분류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A씨의 집은 체납 기록이 없었다. 다만 A씨가 운영하던 익산 카페의 경우 전기요금 등을, 전주 카페의 경우 상가 관리비를 최근 석 달간 체납했다. 현 제도로는 포착할 수 없었지만, 위기 징후는 있었던 셈이다.
A씨의 지인은 “아이들까지 그렇게 한 것에 대해서 화가 난다. 자신이 떠나고도 남을 빚이 가족에게 전가되는 고통이라고 본 것 같다. 목회자이면서 카페를 운영하는 A씨가 외부적으로는 성공적인 목회자로 비춰졌다. 그랬기에 오히려 더 경제적 어려움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 같다. 익산의 카페가 정리되면 새로 차린 전주 카페에 전념할 생각이었던 듯한데, 익산 쪽 정리가 막히면서 사면초가에 빠진 거로 안다”고 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익산경찰서 관계자는 “사인 간 채무가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채권과 채무가 오랜 기간 쌓인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도 사망해 타살 혐의 부분은 수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주간경향은 2023년 한 해 언론에 보도된 일가족 사망 사건을 집계했다. 부모나 자녀 한쪽이 가족을 살해한 후 자살한 사건 또는 동반 자살로 추정되는 사건은 18건이었다. 이중 절반인 9건에서 가해자가 아버지였던 걸로 나타났다. 어머니가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은 4건이었고,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나 부모 중 한쪽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이 3건이었다. 나머지 2건은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불분명했다.
가해자가 부모 중 어느 쪽이냐에 따라 사건 양상은 달랐다. 어머니가 가해자인 4건 모두에서는 자녀들만 살해됐다. 아버지는 살아남거나, 따로 생을 마감했다. 반면 아버지가 가해자인 9건의 사건 중 7건에서는 어머니와 자녀가 함께 살해됐다. 나머지 2건은 이혼·별거 등으로 부모가 따로 살고 있는 사례였다. 가해자가 아버지인 경우가 보다 ‘일가족 사망’에 가까운 형태를 띠었다는 얘기다. 이 유형은 익산 사건처럼 사건의 배경에 경제적 어려움이 자리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컨대 지난 12월 1일 울산 북구에서 발생한 일가족 사망 사건도 경제적 어려움이 배경이다. 40대 남성 B씨는 아파트 담보대출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자, 아내와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2명을 살해하고 자살했다. B씨의 집 현관문에는 “경고합니다. 마지막입니다. 이번에는 문 앞에서 끝나지만 다음에는 계고(강제 집행한다는 내용을 문서로 알리는 일)합니다”라고 쓴 경고장이 붙어 있었다.
지난 3월 18일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는 40대 부부와 미취학 자녀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아버지 C씨는 주식 투자에 실패해 수억원대 채무를 졌다고 한다. C씨는 아내와 자녀들을 살해하고 자살했다.
정신질환이 주원인이 되는 일반 자살과 달리, 가족 살해 후 자살은 경제적 요인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변사기록을 바탕으로 살해 후 자살 사망자를 전수조사한 논문 ‘국내 살해 후 자살의 현황과 특성(최진화·박기환, 2022)’을 보면, 2013~2017년 사이 살해 후 자살 사망자는 269명이었다. 이 기간 동안 자녀만을 살해하고 자살한 ‘자녀 살해’ 유형은 82명이었고, 자녀와 배우자를 동시에 살해하거나 그외 가족 구성원을 살해하고 자살한 ‘가족 살해’ 유형은 47명이었다. 자녀 살해 유형은 가해자의 61%가 여성이었던 반면, 가족 살해 유형은 가해자의 87.2%가 남성이었다. 이 논문은 자살의 주원인을 가족관계에서의 문제, 정신건강 문제, 경제 문제로 분류했는데, 두 유형 모두에서 가족관계 문제의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자녀 살해 유형은 이밖에 정신건강 문제의 비중이 높았던 반면, 가족 살해 유형은 경제문제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가족 살해 후 자살 사망자 47명 중 29명(61.7%)이 경제 문제를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경험하고 있던 경제 문제의 세부 내용은 부채와 파산이었다.
경제위기 때 아버지의 가족 살해 후 자살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논문 ‘동반자살에 대한 사회보장 차원에서의 정신보건정책 및 예방프로그램 도입 방안에 관한 연구(김정진·1998)’는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돌입한 1997년 11월 이전과 이후를 나눠 살해 후 자살 사건의 양상을 비교·분석했다. 연구 결과 IMF 체제 이전에는 어머니의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전체 동반자살 사건의 23.1%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어머니의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와 자녀의 장애에 대한 비관이 자살의 주원인으로 조사됐다. 반면 IMF 체제 이후에는 일가족 사망(26.1%)이나 아버지의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19.8%)의 비중이 어머니의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8.7%) 비중을 넘어섰다. 자영업의 실패로 인한 빚과 실업으로 인한 생활고가 주원인으로 나타났다.
가족 살해 후 자살의 동기가 무엇이었든, 무고한 자녀를 희생시킨 반인륜적 범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해자의 사망으로 처벌이 불가능해 범죄통계도 따로 작성되지 않는다. 연도별 증감 현황 등 양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다만 보건복지부 아동권리보장원이 자살을 마음먹은 부모(보호자)에 의해 살해된 아동의 수를 2018년부터 집계하고 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학대로 인해 사망한 아동의 수는 203명이었는데 이중 자살을 마음먹은 부모에 의해 살해된 아동의 수가 56명으로 전체의 27.6%를 차지했다. 연도별로는 2018년에 7명, 2019년에 9명, 2020년에 12명,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14명이 희생됐다. 주간경향이 자체 집계한 2023년 살해 후 자살 아동 희생자는 최소 17명으로 증가세가 계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관련 연구를 진행한 정승민 백석문화대 경찰경호과 교수는 “가족 살해 후 자살에 이르는 사망자들은 경제적 위기나 실업을 경험해 자연적으로 사회와 고립되고 통합도 약화된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로 생각하는 한국사회의 경향성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자녀들이 싫어서 살해한 경우보다 ‘내가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이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자녀들을 살해한 경우가 많았다. 자살자를 피해자인 것처럼 보는 인식이 남아 있는데 ‘오죽하면 저랬겠냐’고 볼 게 아니라 그릇된 가치관에서 비롯된 범죄라는 인식이 보다 확산돼야 한다. ‘카드 대란’이 있었던 그 당시에도 이들을 사회안전망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야 한다는 제안을 했지만, 현재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경제적인 부분뿐 아니라 심리적 차원의 안전망 구축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자살 사망자가 세상을 떠난 후 사회가 자녀들을 돌봐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이들이 기댈 곳은 사회의 돌봄뿐이라는 사실은 명확해 보인다. 사인 간 채무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막다른 상황에서 가족 살해 후 자살을 저지른 만큼, 자살 사망자들은 가족·대인관계에서도 문제를 겪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논문 ‘국내 살해 후 자살의 현황과 특성’ 작성 과정에서 살해 후 자살에 대한 전수조사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행한 최진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심리부검부 자료분석팀장은 “전수조사를 하면서 경찰 변사 기록을 직접 분류했다. 자녀만 살해한 여성은 정신건강 문제가 크다면, 남성의 가족 살해는 경제적 스트레스를 받아 코너에 몰렸을 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큰 빚을 남기고 내가 죽으면 우리 자녀들은 반드시 힘들 것이다’라는 염려가 읽혔다. 여성의 경우는 심리 상담의 접근 문턱을 낮추고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정책 대응이 가능하다고 본다. 남성의 경우는 정부가 개인의 부채 문제를 대신 해결해줄 수 없는 만큼, 자살 자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정책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핀란드는 자살자에 대한 심리부검을 통해 정책을 입안·실행해 자살률을 낮췄다. 단기적인 효과가 나타났던 것이 아니라 10년 이상 꾸준히 진행해 성과를 냈다. 우리 사회도 단기 성과를 두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야, ○○이형! 많이 고마웠고 행복했어. 하늘나라에서 우리 많이 봐줘. 사랑해. 거기에서 행복하게 지내.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안녕!”
지난 12월 18일 전북 익산 팔봉동 주택가에 있는 한 카페를 찾았다. 카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유리문에는 남매의 친구가 쓴 것으로 보이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문고리에는 국화 한 송이가 가로 놓였다. 중학생, 초등학생이던 남매는 지난 12월 13일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남매의 아빠와 엄마도 같은 날 그들 곁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고사나 동반자살이 아니다. 경찰은 아버지 A씨(43)가 가족을 살해한 후 자살했다고 보고 있다.
심각한 범죄이자, 잔혹한 범죄다. A씨는 가장 가까운 이들을 살해했다. 성인이 되지 않은 남매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A씨의 결단에 목숨을 잃었다.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지만 A씨 역시 사망해 가해자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조차 없다. ‘일가족 동반자살’이 아니라 ‘가족 살해 후 자살’이라는 범죄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잔혹 범죄가 심심찮게 반복된다는 데 있다. 지난 12월 1일에는 울산에서 40대 가장이 일가족을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10월에는 부산과 울산에서, 지난 9월에는 전남 영암과 인천, 대전 그리고 서울에서 가족 살해 후 자살 사건이 잇따랐다. 문제적 개인들의 일탈행위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한 달에 한 번꼴로 반복되는 범죄는 사회문제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 그늘에 쌓인 빚…자녀 살해한 아버지
자살은 단일한 원인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익산 가족 살해 후 자살 사건도 그렇다. 다만 경제적 어려움이 여러 원인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주변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2018년 3월부터 집 근처 상가에서 카페를 운영했다. 한동안은 카페 운영에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이 시기 A씨는 지역사회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암이 집단 발병한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을 위해 수익 일부를 기부하는 일일 찻집을 여는가 하면, 독거노인에게 난방비를 지원했다. A씨의 아내는 카페 인근에 사회복지시설을 차렸다. 목회자이기도 했던 A씨는 일요일이면 카페를 예배당으로 활용했다.
대부분의 자영업자가 그랬듯, A씨의 사정은 2020년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면서 완전히 뒤바뀌었다.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A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기록들이다. 2020년 2월 29일에는 하루종일 3800원의 매출을 올렸다. 같은해 11월 28일에는 단 한 잔의 음료도 팔지 못했다. 그다음 달에는 “한 달 매출이 개업 후 가장 적다”고 썼고, 해가 바뀐 2021년 1월 말에는 “매출이 전 달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썼다. 코로나19에 취약하기는 A씨의 교회도, 아내의 사회복지시설도 마찬가지였다. 한번 끊긴 발길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인근 상인은 A씨 카페의 최근 상황에 대해 “손님이 많지 않았다”고 했다.
그사이 채무가 쌓였다. 2021년 말 A씨는 제2금융권에서 사는 아파트를 담보로 5000여만원을 빌렸다. 앞서 아파트를 담보로 한 8000여만원의 대출조차 아직 갚지 못한 상태에서 아파트 시세의 100% 수준까지 추가 대출을 받은 것이다.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 무렵 A씨는 종종 수억원대 채무에 대한 걱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돌파구를 찾으려던 걸까. 2023년 10월에는 전북 전주의 상가에 새로운 카페를 개업했다. 지하상가의 공실을 경매로 낙찰받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데 또다시 수천만원을 썼다. 월세 지출이 있는 익산 카페를 정리하고 전주 카페에 전념하려 했다고 한다. 인근 상인들은 “개업 떡과 샌드위치를 돌리는 등 의욕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2월 초에도 얼굴을 봤는데 이런 사건이 있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A씨는 그러나 지난 12월 7일 카페 인스타그램 계정에 “코로나19 때보다 어려운 이때를 잘 극복해볼게요”라고 썼다.
A씨의 가정은 정부의 위기가구 관리 대상은 아니었다. 주거지의 전기·가스·수도요금이 체납되면 위기가구 관리대상으로 분류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A씨의 집은 체납 기록이 없었다. 다만 A씨가 운영하던 익산 카페의 경우 전기요금 등을, 전주 카페의 경우 상가 관리비를 최근 석 달간 체납했다. 현 제도로는 포착할 수 없었지만, 위기 징후는 있었던 셈이다.
A씨의 지인은 “아이들까지 그렇게 한 것에 대해서 화가 난다. 자신이 떠나고도 남을 빚이 가족에게 전가되는 고통이라고 본 것 같다. 목회자이면서 카페를 운영하는 A씨가 외부적으로는 성공적인 목회자로 비춰졌다. 그랬기에 오히려 더 경제적 어려움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 같다. 익산의 카페가 정리되면 새로 차린 전주 카페에 전념할 생각이었던 듯한데, 익산 쪽 정리가 막히면서 사면초가에 빠진 거로 안다”고 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익산경찰서 관계자는 “사인 간 채무가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채권과 채무가 오랜 기간 쌓인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도 사망해 타살 혐의 부분은 수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한 달에 1.5회꼴…어머니보다 아버지 자녀 살해 많았다
주간경향은 2023년 한 해 언론에 보도된 일가족 사망 사건을 집계했다. 부모나 자녀 한쪽이 가족을 살해한 후 자살한 사건 또는 동반 자살로 추정되는 사건은 18건이었다. 이중 절반인 9건에서 가해자가 아버지였던 걸로 나타났다. 어머니가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은 4건이었고,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나 부모 중 한쪽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이 3건이었다. 나머지 2건은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불분명했다.
가해자가 부모 중 어느 쪽이냐에 따라 사건 양상은 달랐다. 어머니가 가해자인 4건 모두에서는 자녀들만 살해됐다. 아버지는 살아남거나, 따로 생을 마감했다. 반면 아버지가 가해자인 9건의 사건 중 7건에서는 어머니와 자녀가 함께 살해됐다. 나머지 2건은 이혼·별거 등으로 부모가 따로 살고 있는 사례였다. 가해자가 아버지인 경우가 보다 ‘일가족 사망’에 가까운 형태를 띠었다는 얘기다. 이 유형은 익산 사건처럼 사건의 배경에 경제적 어려움이 자리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컨대 지난 12월 1일 울산 북구에서 발생한 일가족 사망 사건도 경제적 어려움이 배경이다. 40대 남성 B씨는 아파트 담보대출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자, 아내와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2명을 살해하고 자살했다. B씨의 집 현관문에는 “경고합니다. 마지막입니다. 이번에는 문 앞에서 끝나지만 다음에는 계고(강제 집행한다는 내용을 문서로 알리는 일)합니다”라고 쓴 경고장이 붙어 있었다.
지난 3월 18일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는 40대 부부와 미취학 자녀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아버지 C씨는 주식 투자에 실패해 수억원대 채무를 졌다고 한다. C씨는 아내와 자녀들을 살해하고 자살했다.
정신질환이 주원인이 되는 일반 자살과 달리, 가족 살해 후 자살은 경제적 요인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변사기록을 바탕으로 살해 후 자살 사망자를 전수조사한 논문 ‘국내 살해 후 자살의 현황과 특성(최진화·박기환, 2022)’을 보면, 2013~2017년 사이 살해 후 자살 사망자는 269명이었다. 이 기간 동안 자녀만을 살해하고 자살한 ‘자녀 살해’ 유형은 82명이었고, 자녀와 배우자를 동시에 살해하거나 그외 가족 구성원을 살해하고 자살한 ‘가족 살해’ 유형은 47명이었다. 자녀 살해 유형은 가해자의 61%가 여성이었던 반면, 가족 살해 유형은 가해자의 87.2%가 남성이었다. 이 논문은 자살의 주원인을 가족관계에서의 문제, 정신건강 문제, 경제 문제로 분류했는데, 두 유형 모두에서 가족관계 문제의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자녀 살해 유형은 이밖에 정신건강 문제의 비중이 높았던 반면, 가족 살해 유형은 경제문제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가족 살해 후 자살 사망자 47명 중 29명(61.7%)이 경제 문제를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경험하고 있던 경제 문제의 세부 내용은 부채와 파산이었다.
경제위기 때 아버지의 가족 살해 후 자살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논문 ‘동반자살에 대한 사회보장 차원에서의 정신보건정책 및 예방프로그램 도입 방안에 관한 연구(김정진·1998)’는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돌입한 1997년 11월 이전과 이후를 나눠 살해 후 자살 사건의 양상을 비교·분석했다. 연구 결과 IMF 체제 이전에는 어머니의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전체 동반자살 사건의 23.1%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어머니의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와 자녀의 장애에 대한 비관이 자살의 주원인으로 조사됐다. 반면 IMF 체제 이후에는 일가족 사망(26.1%)이나 아버지의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19.8%)의 비중이 어머니의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8.7%) 비중을 넘어섰다. 자영업의 실패로 인한 빚과 실업으로 인한 생활고가 주원인으로 나타났다.
자녀 살해 막을 수 있나…“장기적 정책 대응 필요”
가족 살해 후 자살의 동기가 무엇이었든, 무고한 자녀를 희생시킨 반인륜적 범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해자의 사망으로 처벌이 불가능해 범죄통계도 따로 작성되지 않는다. 연도별 증감 현황 등 양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다만 보건복지부 아동권리보장원이 자살을 마음먹은 부모(보호자)에 의해 살해된 아동의 수를 2018년부터 집계하고 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학대로 인해 사망한 아동의 수는 203명이었는데 이중 자살을 마음먹은 부모에 의해 살해된 아동의 수가 56명으로 전체의 27.6%를 차지했다. 연도별로는 2018년에 7명, 2019년에 9명, 2020년에 12명,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14명이 희생됐다. 주간경향이 자체 집계한 2023년 살해 후 자살 아동 희생자는 최소 17명으로 증가세가 계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관련 연구를 진행한 정승민 백석문화대 경찰경호과 교수는 “가족 살해 후 자살에 이르는 사망자들은 경제적 위기나 실업을 경험해 자연적으로 사회와 고립되고 통합도 약화된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로 생각하는 한국사회의 경향성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자녀들이 싫어서 살해한 경우보다 ‘내가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이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자녀들을 살해한 경우가 많았다. 자살자를 피해자인 것처럼 보는 인식이 남아 있는데 ‘오죽하면 저랬겠냐’고 볼 게 아니라 그릇된 가치관에서 비롯된 범죄라는 인식이 보다 확산돼야 한다. ‘카드 대란’이 있었던 그 당시에도 이들을 사회안전망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야 한다는 제안을 했지만, 현재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경제적인 부분뿐 아니라 심리적 차원의 안전망 구축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자살 사망자가 세상을 떠난 후 사회가 자녀들을 돌봐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이들이 기댈 곳은 사회의 돌봄뿐이라는 사실은 명확해 보인다. 사인 간 채무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막다른 상황에서 가족 살해 후 자살을 저지른 만큼, 자살 사망자들은 가족·대인관계에서도 문제를 겪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논문 ‘국내 살해 후 자살의 현황과 특성’ 작성 과정에서 살해 후 자살에 대한 전수조사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행한 최진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심리부검부 자료분석팀장은 “전수조사를 하면서 경찰 변사 기록을 직접 분류했다. 자녀만 살해한 여성은 정신건강 문제가 크다면, 남성의 가족 살해는 경제적 스트레스를 받아 코너에 몰렸을 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큰 빚을 남기고 내가 죽으면 우리 자녀들은 반드시 힘들 것이다’라는 염려가 읽혔다. 여성의 경우는 심리 상담의 접근 문턱을 낮추고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정책 대응이 가능하다고 본다. 남성의 경우는 정부가 개인의 부채 문제를 대신 해결해줄 수 없는 만큼, 자살 자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정책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핀란드는 자살자에 대한 심리부검을 통해 정책을 입안·실행해 자살률을 낮췄다. 단기적인 효과가 나타났던 것이 아니라 10년 이상 꾸준히 진행해 성과를 냈다. 우리 사회도 단기 성과를 두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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