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동해의 맛 ‘고것 참 차지다’[지극히 味적인 시장]
마무리다. 한 해를, 5년을 달려온 연재 또한 마무리다. 5년 동안 다닌 시장이 대략 120개다. 앞선 기사에서는 폭설에 막혀 못했던 취재를 했다. 대장정의 마무리는 뭐가 좋을까 고민을 했다. 좋았던 곳, 재미난 곳, 가장 큰 곳 등 몇 가지를 떠올리다가 가장 좋아하는 곳과 시작한 곳으로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시장을 볼 때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흥정 나는 곳과 정만 나는 곳으로 나뉘었다. 사람이 많아야 흥이 난다. 흥이 오가다 보면 정이 쌓인다. 쌓이는 정을 느끼다 보면 내 손에는 봉지가 여럿 들려 있었다. 사람이 없는 곳은 사람에 대한 기억만 남아 있었다. 정에 의지한 기억은 사그라지는 풍경에 대한 넋두리였다. 사그라든다는 것은 슬프다. 전국에서 흥이 사라진 장터를 꽤 많이 만났다. 변하지 않는 사실은 흥이 있든 없든 오일장터는 만남의 광장이었다. 이웃마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120개 시장에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은 어딜까? 동해 북평장이다. 북평(北坪)장을 ‘뒷드르, 뒷드루, 뒷드리, 뒷뚜르 장’이라 부른다고 한다. 북평의 고유어인 ‘뒷들’이라는 표현으로 뒷들은 예전 삼척군의 북쪽, 즉 뒤쪽에 있는 넓은 들판이라는 곳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동해시청 홈페이지 참조). 넓은 들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북평장은 규모가 상당하다. 진천교를 넘어오면 바로 사거리다. 사거리부터 삼척 방향으로 약 400m 거리 좌우에 시장이 선다. 삼척 방향으로 우측 편 골목과 도로와 연결되는 골목에도 장이 들어선다. 기본적으로 한 바퀴만 대충 돌아도 걷는 길이가 대충 따져도 1.2㎞다. 규모가 있음에도 구성은 명확하다. 삼척 방향 좌측은 채소와 과일이, 반대편은 잡화와 주전부리 먹거리가 자리하고 있다. 아래로 내려가면 북평장만의 매력이 넘치는 수산물 코너가 자리 잡고 있다. 가격이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거니와 산지와 가까우니 선도를 말하면 입만 아프다.
너른 들판을 뜻하는 사투리를 따 ‘뒷드루 장’이라고도 불리는 북평장
겨울 제철 생선은 단연 성대…그 차진 식감은 먹어본 사람만 알아
한때 존재했던 우시장은 사라지고 소머리국밥은 남아 오일장 별미로
문어·전갱이·곰치…찬 바람 부는 이 계절 아니면 놓치기 쉬운 ‘진미’
북평장으로 떠나기 전 라디오 생방송을 했다. 방송에서 바로 지금 이 시기에 동해에서 가장 맛으로 빛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겨울이기에 다들 방어 이야기만 한다. DJ의 질문은 “전문가인 당신이라면?”이었다. 나의 선택은 ‘성대’였다. 성대? 이름이 잘 알려진 생선은 아니다. 방어, 광어, 농어, 참돔, 우럭 등 이름이 익숙한 생선은 아니지만 모양을 보면 다들 “아~” 하는 생선이 성대. 화려한 가슴지느러미를 지닌 맛있는 생선은, 특히 겨울에 더 맛으로 빛난다. 아무도 횟감으로 선호하지 않기에 대부분 모둠회를 사면 서비스로 한두 마리 슬쩍 끼워주는 생선 정도로만 안다. 실상은 초겨울에 맛있는 생선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녀석이 성대다.
일전에 포항 오일장에서도 장치회와 더불어 성대회가 맛있다고 했었다. 바닷가 어시장에서 바가지를 안 쓰는 방법의 하나가 무엇을 먹을지에 관해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먹자고 가면 “바가지 씌워주세요”라고 쓰인 목걸이를 차고 다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순간 가격 비교가 쉬워진다.
북평장에서는 성대가 두 마리 1만원이었다. 성대 못지않게 맛있는 말쥐치가 한 마리 1만원이었다. 성대 6마리, 쥐치 2마리 해서 5만원어치를 샀다. 성인 여럿이 먹어도 될 정도의 양이다. 겨울 성대의 차진 식감은 먹어 본 이들은 안다. 북평장의 또 다른 대표 생선은 문어다. 크기에 따라 가격 차이가 좀 난다. 작은 거 몇만원에서 20만원까지 차이가 크다. 문어를 고르면 그 자리에서 삶아서 준다. 성대를 사지 않았다면 문어를 샀을 것이다.
북평장은 다른 오일장과 마찬가지로 우시장이 함께 섰다. 우시장은 사라지고 소머리국밥만 남았다. 북평장의 별미로 꼽히는 소머리국밥이다. 아침 일찍, 거의 첫 손님으로 들어갔다. 식당에 아무도 없었다. 일하는 이는 밥을 공기에 퍼담고 있었다. 다른 표현으로는 밥맛을 죽이고 있었다. 한식당의 최대 단점이 공기에 밥을 담는 것이다. 좋은 쌀로 정성껏 밥을 짓고는 공기에 담아 밥맛을 죽인다. 아침이 이른 덕에 죽지 않은 밥맛을 봤다. 몇 년 전 먹었을 때와는 다른 맛이었다. 밥맛이 살아 있으니 애써 끓인 국물이 빛났다. 공기에 담아도 상관없다. 다만, 뚜껑만 닫지 않는다면 말이다.
북평장은 삼척 번개시장과 일정을 같이하면 좋다. 삼척역 앞에 매일 시장이 선다. 갓 잡아 온 싱싱한 수산물이 가격까지 저렴해 삼척 사람뿐만 아니라 관광객의 사랑까지 받는 시장이다. 시장은 겨울 생선인 미거지(현지에서 곰치)가 많았다. 시커먼 수놈을 비롯해 색이 여린 암놈까지 신선한 미거지가 많았다.
또 한쪽에서는 커다란 전갱이가 있었다. 겨울 초입에서 만나는 전갱이는 맛있다. 웬만한 고등어보다 큰 전갱이의 맛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 마리 5000원, 구이용으로 손질했다. 집에서 오븐에 구우니 겨울 별미로 이만한 녀석이 없었다.
삼척 번개시장이나 동해 북평장이나 미거지가 많았다고 했다. 서남 해안에서 물메기로 파는 생선의 본디 이름은 꼼치다. 꼼치나 미거지나 겨울에 산란한다. 평소에 깊은 바다에 있다가 산란을 하러 얕은 바다로 올라온다. 알을 잔뜩 품은 채로 말이다. 산란 철의 생선은 일단 맛이 없다. 알과 정소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기 때문이다. 맛을 떠나 우리는 산란기의 어족 자원을 보호해야 한다. 우리는 명태의 교훈을 알고 있다. 겨울이 오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명태가 잡혔다. 성어는 성어대로 명태니, 북어니, 황태니 하면서 먹었다. 새끼는 노가리로, 알은 명란젓으로 알뜰하게 먹었다. 그 결과는 우리 바다에서 명태가 사라졌다. 명태나 대구가 잡혔던 시절에 미거지나 꼼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물텀벙의 전설은 잡히면 물에 던져 버렸기에 탄생했다. 명태와 대구가 사라지자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미거지와 꼼치다. 명태를 사라지게 한 이유가 산란기 어족 자원을 보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우린 또다시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산란기의 알을 별미로 삼고 해장국 재료로만 보고 있다. 이렇게 산란기의 미거지나 꼼치를 먹는다면 이들 또한 명태나 대구처럼 우리 바다에서 사라질 것이다.
알배기는 별미나 미식이 아니다. 예전에 많이 잡힐 때는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악식’일 뿐이다. 알배기는 잡지도, 먹지도, 자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슬프게도 시장에는 미거지 알이 차고 넘쳤다. 알배기 먹는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곧 우리 바다에서 사라질 것이다.
북평장을 다녀와서 인천 종합어시장에 잠시 다녀왔다. 처음 갔었던 그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시장은 여전했지만 입구에 있던 포장마차는 사라지고 깔끔한 컨테이너로 바뀌었다. 시장에선 바다의 계절을 무시하는 판매는 여전했다. 한창 맛이 좋은 꽃게 파는 곳은 한산하다. 제철이라 여기는 10월보다 반값이다. 암게는 kg에 2만원, 수게는 1만5000원이었다. 실제 꽃게의 제철은 지금인데 찾는 이가 적다. 맛이 들기 시작하는 방어가 든 모둠회가 몇 만원대다. 방어가 더 든 것은 7만원 정도다. 어시장 중간에 선어 파는 곳이 있다. 민어는 kg에 3만원, 광어는 2만원이다. 5kg 광어를 선택한 이는 모둠회 7만원 정도의 회를 4개 정도 떠간다. 10만원으로 맛이 방어보다 훨씬 좋은 광어로 말이다. 광어는 좀 많은 듯싶어서 준치로 회를 떴다. 마리당 1만원이다. 미디어에서 제철이라 떠들 때 한 달 뒤에 먹으면 된다고 여겨야 한다. 제값으로 제대로 먹을 수가 있다. 시장을 이런 생각으로 다녀야 헛돈 쓰지 않는다.
좋아하는 시장과 처음 연재를 시작한 시장으로 5년 연재의 마무리를 짓는다. 또 다른 맛으로 인사드릴 것을 약속드리면서 5년 동안 지켜봐 주신 데에 감사를 전한다. 고맙습니다.
<연재 끝>
▶김진영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8년차 식품 MD.
김진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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