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가자지구 지원 안보리 결의안 찬성 시사…“내용 후퇴” 쏟아지는 비판
전문가 “미국 지지 결의안, 의미 없다”
그사이 가자지구 식량 부족 사태 악화
미국이 합의에 난항을 겪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에 대해 21일(현지시간) 사실상 찬성 입장을 밝혔다. 외신들은 앞서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하며 결의안 처리를 막았던 미국이 “당장 적대 행위 중단을 요구한다”는 문구를 삭제하는 조건으로 수정안에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에 직면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는 이날 예정됐던 결의안 표결을 22일로 연기했다. 다만 걸림돌이던 상임이사국 미국이 수정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통과 가능성이 커졌다. 안보리 이사국들은 지난 12일 유엔총회에서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된 이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주도하에 안보리 차원 결의안 마련을 위한 릴레이 논의를 이어왔다. 총회 결의안과 달리 안보리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을 지닌다.
미국은 지난 10월18일과 12월9일 두 차례 결의안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하마스 규탄 메시지가 약하고, 지나치게 이스라엘에 불리한 조건이 담겨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결국 이날 정리된 수정안에는 당장 교전을 중지하라는 요구 대신 “적대행위의 지속 가능한 중단을 위한 조건들을 조성하자”는 문구가 담겼다.
또 다른 쟁점이었던 가자지구 반입 구호물자 조사 주체 선정에도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초안엔 “유엔 사무총장에 육해공 보급로를 통해 가자지구에 제공되는 구호품 운송의 독점적인 감시 권한을 가지는 유엔 기구를 설치하도록 요청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미국은 이스라엘 통제권이 약해진다며 난색을 보였다.
이에 안보리 이사국들은 “안전하고 방해받지 않는 인도주의 접근을 즉각적으로 허용하도록 긴급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는 문구와 함께 유엔 사무총장은 화물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고, ‘모든 관련 당사자와 협의’할 인사를 임명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가자지구 구호품 지급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관여할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어떻게 투표할지는 공개하지 않겠다”면서도 “결의안이 그대로 제시된다면 우리는 이를 지지할 수 있다”고 사실상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이어 “이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인도주의 지원을 제공할 결의안이 될 것”이라며 UAE 등 아랍권 국가들도 찬성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미국의 몽니로 결의안 내용이 크게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동 전문가인 무인 라바니는 알자지라에 “미국이 지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결의안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겐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가자지구 상황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결의안은 모두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미국이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사이 가자지구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유엔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가자지구가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의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유엔은 지난 11월24일부터 12월7일까지 가자지구 인구 90% 이상이 총 5단계 가운데 3단계 이상의 급성 식량 불안 상태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3단계는 위기, 4단계는 비상, 5단계는 참사 수준의 식량 위기를 의미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날 “가자지구 북부에서 수술 등 온전한 의료 기능을 제공하는 병원은 이제 없다”며 “마지막까지 의료 시설로 기능해온 알아흘리 병원이 여전히 환자를 치료하고 있지만, 10명가량의 의료진이 기본적인 응급 처치와 통증 관리, 상처 치료만 할 수 있는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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