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야 했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위안부 피해자 손배소 승소 이끈 변호사들 [플랫]

플랫팀 기자 2023. 12. 2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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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야 하는 싸움이었다. 정말 이길 줄은 몰랐다.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308호 법정. 떨리는 마음으로 법정에 들어선 원고 대리인단은 “1심 판결을 취소한다”는 재판장의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방청석에선 환호성이 들려왔다. 서울고법 민사합의33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이를 각하한 원심판결을 깨고 원고의 손을 들어준 날이었다.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일본 정부 대상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법률 대리인단 (왼쪽부터)김예지, 양성우, 이상희, 류광옥 변호사가 13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지향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플랫]‘합당한 위자료 지급해야’ 위안부 범죄, 드디어 일본의 책임을 묻다

승소 이후 한 달이 흘렀다. 일본 정부는 기한 내에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아 판결은 확정됐다. 재판의 성립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일본 정부는 끝내 무대응 원칙을 바꾸지 않았다.

‘응답 없는 싸움’에서 이긴 원고 측 대리인단은 판결의 의미를 알리며 지내고 있다고 했다. 판결문을 외국어로 번역해 배포하거나 관련 토론회를 진행하는 등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승소로 이끈 원고 측 대리인단 중 이상희(51), 류광옥(50), 양성우(38), 김예지(37) 변호사를 지난 13일 법무법인 지향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들은 7년의 소송 과정을 두고 “피하고 싶었던 싸움이지만, 동시에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었다”면서 “피해자들의 시민권을 인정한 판결의 의미가 더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했다.

홀로 남은 이용수 할머니, 시간이 없었다

소송은 2016년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가 졸속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타결한 지 1년째 되는 2016년 12월28일, 위안부 피해자 11명과 숨진 피해자의 유족 5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일본 정부가 소장 수령을 거부해 첫 재판은 3년이나 미뤄졌으며, 1심 재판부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위법 행위는 한국 법원의 재판권이 미치지 않는다며 2021년 4월 각하 판결을 내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 할머니 11명 중 10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용수 할머니가 유일하게 남았다.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일본 정부 대상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법률 대리인단 김예지 변호사가 13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지향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할머니의 당사자본인 신문 절차를 준비했던 김예지 변호사는 “자꾸 마음이 조급해졌다”고 했다. “할머니 홀로 살아 계시잖아요. 저도 모르게 조급해지더라고요. 1심 결과가 안 좋아서 너무 죄송스럽기도 했고요. (항소심도) 결과가 안 좋으면 어떡하나 내내 마음이 불편했어요.” 대리인단 대표인 이상희 변호사도 “처음엔 할머니께 항소심 선고 때 오시지 말라고 할 정도로 걱정이 컸다”고 했다.

11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유족의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선고 기일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법원의 1심 각하 취소 판결을 받은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들에게 국내 소송은 최후의 선택이었다. 김학순 할머니 등 피해자들은 1991년부터 일본 정부·기업을 상대로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패소했다. 2006년에는 한국 정부의 책임을 확인하는 헌법소원을 냈고, 2011년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놓고 한국 정부가 해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2015년 졸속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가 체결되면서 피해자들은 또다시 소외됐다.

📌[플랫]“살아있는 내가 증거” 김학순의 외침… 위안부 피해의 침묵을 깨다

이상희 변호사는 이번 판결의 의미를 두고 ‘피해자 시민권의 인정’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할머니들은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피해자로 인정받은 적은 있지만 법적으로 그 사실을 인정받지 못했어요. 피해 사실은 선언적 인정보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구체적 인정이 중요해요. 인권이라는 건, 침해당했을 때 국가가 보호해주고 회복되도록 해줘야 비로소 의미가 있거든요. 지금까지는 피해자들이 법의 외부에 존재했던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이번에는 ‘구체적 인권’을 보장받았다는 셈이에요.”

균열 커지는 ‘국가면제론’…“또 다른 변화 기대”

대리인단은 지난 7년의 소송이 ‘큰 산’을 넘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넘어야 할 산은 ‘국가(주권)면제’라는 국제관습법이었다. 이는 한 나라의 주권 행위를 다른 나라 법원이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규칙을 말한다. 성문화된 법이 아니라 말 그대로 ‘관습법’이기 때문에 어떠한 문서에도 명확히 규정돼 있지는 않다. 국가면제가 인정되면 일본에 유리하고, 인정되지 않으면 피해자 측에 유리한 구조였다.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일본 정부 대상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법률 대리인단 양성우 변호사가 13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지향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양성우 변호사는 말했다. “보수적인 학자나 국제법 전문가들은 마치 교과서처럼 받아들이거든요. 처음엔 저조차도 (국가면제론을) 넘을 수 없는 산이라고 생각했어요. 수십 차례 세미나를 하고, 외국 교수들의 서적과 논문도 안 본 게 없어요. 어느 순간에는 확신이 드는 거예요. 국가면제는 고정불변의 법리가 아니구나, 이런 확신이요. 재판은 나 자신을 설득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양 변호사는 “각하 판결을 받았던 1심 선고 당시 가장 좌절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앞서 같은 법원이 3개월 전 고 배춘희 할머니 등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정반대 판결을 한 터였다. 소송을 제기한 시점과 주요 쟁점 등이 모두 비슷했으나 ‘엇갈린 판결’이 나와 논란이 된 바 있다.

류광옥 변호사는 “국제인권의 흐름은 국가에서 개인으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시소가 있다고 비유한다면요. 이전에는 국가만 시소에 오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한쪽에 국가가 있으면 다른 한쪽에 개인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 추세예요. 더는 국가와 국가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개인과 개인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런 맥락에서 법원이 개인의 ‘재판 청구권’을 인정한 거고요.”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일본 정부 대상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법률 대리인단 류광옥 변호사가 13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지향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류 변호사는 판결 이후 손해배상 실현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에 아쉬움을 표현했다. “언론은 이 판결을 토대로 일본 정부의 재산을 ‘강제 집행’할 수 있을 것인가에 다들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판결은 법적 책임을 역사적으로 기록했다는 부분이 가장 중요해요. 판결에 적시된 금액을 어떻게 지급할 것인가, 이것만 논의하는 건 판결의 의미를 너무 미시적으로 좁혀버리는 것 아닐까요.”

그는 우리 정부의 책임을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 이면에는 오랜 기간 이를 외면한 정부의 큰 잘못이 있는데도 좀처럼 조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류 변호사는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덮어버릴 수단만 찾으면서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었다”면서 “판결이 나온 지금도 정부는 입을 다물고 있다”고 했다.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일본 정부 대상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법률 대리인단 이상희 변호사가 13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지향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이상희 변호사는 “우리는 새로운 벽돌을 하나 쌓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면제론을 두고 법정 공방을 벌이는 사례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각 나라의 법원 판결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데, 우리 법원의 판결이 해외 법원의 판단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이번 승소 판결문에는 2021년 8월 브라질 최고연방재판소가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사례가 적시되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위안부 피해가 발생한) 1940년대로 돌아가더라도 할머니들을 변호할 것”이라고 했다. “재판 첫 기일 때 이런 말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오롯이 남아 있는 전시 피해자들이 있다면 그게 언제든 저희는 변호했을 거예요.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분들의 곁에 있을 겁니다.”

▼ 강은 기자 eeun@khan.kr 김혜리 기자 harry@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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